여자는 근육

2019.12.30 20:56 입력 2019.12.30 21:01 수정
이지선 뉴콘텐츠팀장

제인 폰다에게 별다른 관심은 없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할리우드 최고 배우였던 그가 기후변화 활동가인 그레타 툰베리에 감화해 기후 변화 전사로 거듭났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폰다는 기후 위기를 “우리 집이 불타고 있어요”라고 표현한 툰베리의 발언에서 착안해 ‘소방 대피 훈련을 하는 금요일(Fire Drill Fridays)’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금요일마다 워싱턴에서 시위를 하더니, 체포돼 끌려가면서도 빨간 코트를 입은 채 허리를 곧게 펴고 걸었다. ‘대박! 이 사람 뭐지?’ 알고 보니 젊은 시절부터 여성운동에 참여했고, 베트남 반전운동에 나섰으며 반핵운동도 벌인 활동가였다.

[기자칼럼]여자는 근육

그런 그에게 ‘좀 튄다?’ 싶은 이력이 있는데, ‘제인 폰다의 워크아웃’이라는 비디오가 큰 인기를 끌면서 1980년대 초 피트니스계의 선두주자였다는 것이다. “여성은 땀을 흘려서는 안된다고 여겨졌던” 그 시절 폰다는 직접 운동 강사로 뛰었고, 레오타드를 입은 채 운동 방법을 알려주는 비디오에 출연했다.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이 아닌 정말 ‘근육’을 위한 운동 말이다. 그는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말했다. “토머스 제퍼슨이 그랬잖아요. 혁명은 근육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그렇다. 여자는 근육이다. 이는 최근 경향신문이 사회적 기업 ‘위밋업스포츠’와 함께 만드는 콘텐츠 ‘언니네 체육관’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언니들’의 운동 목적이 남이 보기에 아름다운 몸, 마른 몸이 아닌 온전히 나의 건강과 체력을 위한 ‘근육’이라는 점에 100% 동의한다.

1980년대도 아닌데 아직 여자가 마음껏 운동하기엔 장애물이 많다. 잉글랜드스포츠협회는 2015년 여성 누구라도 운동을 할 수 있다는 ‘디스 걸 캔(This Girl Can)’ 캠페인을 시작했는데, 이 프로젝트의 조사 결과 여성 대다수가 ‘신체 활동’을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로 타인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을 꼽았다고 한다. 여자가 운동을 하면 어떻게 보일까, 잘하지 못하면 어떻게 보일까라는 두려움. 양민영 작가는 <운동하는 여자>에서 “여성은 운동을 배우면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법까지 함께 익힌다”고 했다. 역도를 배울 때 양 무릎의 방향이 바깥을 향하도록 벌리는 것이 어려웠으며 평영을 배울 때 여성이 뒤따라 와야 안심이 됐다는 예를 소개했다.

여성의 몸을 여전히 보여주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시선도 있다. 폴댄스 1년 반 차로 일주일에 4번은 스튜디오에 나간다는 곽민지씨는 인터뷰에서 수업 영상을 SNS에 올렸더니 모르는 사람이 ‘스트리퍼가 되고 싶은 거냐’는 내용의 쪽지를 보냈다고 한다. 민지씨는 “몸의 움직임이 아니라 몸을 드러낸 것 자체로 이어지는 사고의 회로가 너무 신기하다”고 했다.

맨스플레인(mansplain)을 빼놓을 수 없다. 김혼비 작가는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에서 “세상에는 전 국가대표 선수를 앞에 놓고 축구의 기본기에 대해 논하려고 하는 남자들이 정말로 있다”고 했다. “혹시 선출이세요? (중략) 근데 선출들 중에 너무 멋 부리면서 축구하는 사람들이 꼭 있어요. 그냥 한 번만 꺾어도 될 건데, 왜 굳이 두 번 세 번 꺾어?” 이쯤되면 ‘설명’을 넘어 ‘참견’과 ‘무례’가 된다.

그래도 운동을 한다. 재미있으니까, 이러다 죽겠다 싶어서, 근육이 붙어가는 몸이 기특해서, 성취를 맛보려고,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해 한다. 아직 운동을 시작하지 못한 분이 있다면 ‘디스 걸 캔’에서 제안하는 94가지 운동 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아이와 함께 운동하기’ ‘자녀 등하교’ ‘아이와 디즈니 노래 부르며 춤추기’ ‘집에서 운동하기’ ‘걷기’ ‘공원에서 운동하기’. 거창한 도구가 없어도 의지만 있다면 계속할 수 있다. 몸의 형태가 어떻든, 사이즈가 무엇이든, 능력과 배경에 상관없이 근육은 정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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