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2020.05.01 20:32 입력 2020.05.01 20:44 수정

독일 친구에게 단전호흡을 가르친 적이 있다. 윗배로 숨을 쉬면 얕은 숨을 쉬게 된다는 설명을 하던 중 ‘얕다’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깊다’의 반대말이 뭐지?” 친구가 대답한다. “높다?” ‘얕다’와 ‘높다’는 완전히 다른 뜻의 단어임에도 각각 자신이 정답임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갖는다. 언어라는 허점투성이 도구로 이뤄지는 우리들의 의사소통은 왜곡되기가 일상이다.

[시선]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삶과 자유를 제약하는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규칙이 바로 법이다. 불완전한 인간이 불완전한 도구로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선출된 대표들이 최선의 의도로 제정한다 해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법의 해석은 시대의 가치라는 문맥 속에서 지속적으로 토론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를 게을리할 때 정의를 지켜야 할 법이 오히려 정의를 억압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군주와 귀족들이 권력을 독점하는 군주제국이었다. 1918년 전쟁이 끝났고, 군주가 몰락하였으며, 민주주의 헌법과 민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독일의 법률가들은 고민한다. “하잘것없었던 평민들이 주권자라고 주장하는 민주주의 헌법을 법 해석을 위한 시대의 질서로 받아들일 것인가?” 그들은 시대의 가치를 거부했다. 법의 해석이란 입법자가 만들어 놓은 문자를 중립적으로 해독하는 것이라 하였다. 민주공화국과 분리된 별개의 사법권력을 지키려고 했던 이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민주공화국을 붕괴시키는 선봉에 서게 되었다.

1948년의 독일. 제2차 세계대전 역시 패전으로 종료되었다. 민주주의 헌법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임을 그제야 깨달은 독일인들은 헌법재판소를 설립하였다.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제도를 도입할 것인지가 문제됐다. 전통적인 법률가들은 법원 스스로 헌법과 기본권을 보호하는 재판을 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반대했다. 이번에는 그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제도는 도입되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강요된 외래 사상일 뿐이라며 민주주의 헌법을 낯설어하던 것이 독일인들이었다. 이들의 신념에 결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이다. 차분한 논리로 권력의 기본권 침해를 제거해 나간 판단들은 민주공화국에 대한 신뢰로 쌓여갔다.

일본제국의 식민지 사법,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 사법의 유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 사법부. 민주화의 시간이 30년 흘렀음에도 대법원의 판례들은 머나먼 과거에 머물러 있다. 최근 사법농단 사태는 사법권력을 자신들의 영토로 생각하는 사법 엘리트들의 전도된 가치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시민들이 민주화 열망으로 헌법을 개정하고 헌법재판소를 설립하였던 1988년, 대법원은 정치권력을 압박하여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금지조항을 만들었다. 이 조항은 지금까지도 우리 사법권이 국민들의 사법으로 다시 태어날 기회를 막고 있다. 기본권이 일상 속에 실현되는 길을 차단해 우리 헌법을 반쪽짜리 헌법으로 만들고 있는 것도 이 조항이다. 헌법을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정치권으로부터 조심스럽게 들려온다. 하지만 때로는 한 개의 법률 조항을 개정하는 것이 헌법조항 여러 개를 개정하는 것보다 중요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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