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보다 공대가 인기 있는 나라

2020.08.31 03:00 입력 2020.08.31 03:02 수정

몇 년 전 중국의 한 교육 관련 기관이 대입시험인 ‘가오카오(高考)’의 역대 수석(장원)들이 진학한 대학 전공을 조사한 적이 있다. 중국 대륙의 각 성(省)·직할시·자치구에서 배출된 수재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전공은 경제학이다. 이어 공상관리(경영학), 전자정보, 법학, 생명과학, 컴퓨터과학기술, 건축, 물리학 등이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의아한 것은 많은 나라에서 인기가 높은 의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대는 간신히 16위에 올라 있다. 중국에서 의사는 인기 있는 직업이 아니다. 수입도 그리 대단하지 않고, 사회적 지위도 크게 인정받지 못한다. 어찌됐건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데는 이처럼 최고의 인재들이 경제·경영학과와 공대에 몰리고 이들이 사회에 나와 경제와 산업, 과학기술을 이끌었던 것이 큰 기여를 했다. 이 같은 추세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고, 그래서 중국은 앞으로도 더 강하고 무서운 나라가 될 수밖에 없다.

김준기 산업부장

김준기 산업부장

한국에서는 의대가 자연계 학생들의 지상목표가 된 지 오래다. 세계 1위의 메모리반도체 생산 국가이고 세계 1위의 조선 수주를 자랑하는 나라에서 젊은이들은 여전히 공대보다 의대를 최고로 친다. 의대는 모든 대학의 자연계 학과 중 가장 높은 합격선을 자랑한다. 이른바 ‘스카이’라 불리는 상위권 대학에 합격해도 의대를 가기 위해 포기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서울 공대의 경우 매년 100여명의 합격생들이 등록을 포기하는데 상당수가 재수를 해서 의대를 가기 위해서라고 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질병으로부터 인류를 구하겠다는 결심으로 의대를 지망하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의사라는 직업이 안정적인 고소득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대부분의 우수한 인재들을 의대로 끌어들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18년 기준으로 의사들의 월평균 수입은 1342만원(세전)이다. 연봉으로 계산하면 1억6000만원이 넘는다.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선망이 생길 만도 하고, 학생들의 선택을 비난할 수도 없다.

코로나19로 온 나라가 힘든 이때 의사들이 파업을 하고 있다. 이번 파업은 정부 여당이 ‘의대 정원 확충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 방안’을 발표하면서 촉발됐다. 의사들은 여러 가지 명분을 앞세우고 있지만 숨어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의사 수가 늘어나는 것에 대한 반발이다. 의사들의 높고 안정적인 수입은 의사면허에서 기인한 희소성에서 나온다. 국가가 관리하는 면허는 규제이자 특권이다. 면허만 따면 정부의 보호 아래 독점적으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 명의의 대명사인 중국 한나라 때 화타가 지금 환생해도 아픈 사람을 고칠 수 없다. 아무리 병을 잘 고치는 사람도 의사면허가 없으면 의료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신봉하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은 의사면허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내가 싼값에 수술을 받고 싶으면 면허가 있든 없든 그것을 할 사람을 내 마음대로 고를 수 있어야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된다는 것이다. 물론 전 세계의 문명화된 어느 나라에서도 프리드먼의 주장처럼 의사면허 없이 의료행위가 이뤄지는 곳은 없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의료에서 개인의 계약의 자유보다 국가가 관리·감독하는 안정된 운영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의사들은 면허제도 속에서 희소성을 확보하고 그에 따른 독점적 수입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의사 수가 늘면 특권은 희석되고 독점의 혜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의대에 대한 과도한 쏠림은 국가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최고의 인재들이 자연대나 공대에 가서 과학기술과 산업을 발전시키는 인력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사회 구성원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우 중요한 사람들이긴 하지만 사회적 부와 가치를 실질적으로 늘리진 못한다. 무엇보다 의사와 같이 면허와 희소성으로 보장받는 직업에 집착하는 사회에서는 창조적 도전을 통한 혁신과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공대를 나온 중국의 수재들이 최첨단 의료기기를 개발해 막대한 이문을 붙여 팔면 이를 자신의 병원에 비싼 값에 들여놓은 의대를 나온 한국의 수재들은 투자비를 건지기 위해 더 많은 수입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그러려면 의사들의 수는 계속 적어야 한다. 이런 참담한 가정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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