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의 생김새가 다르듯이

독일 방송에서 성교육을 하는 학교 교실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교사는 교실 중앙에 빨랫줄을 여러 겹으로 설치하더니 성인 남자와 여자의 성기 사진들을 줄줄이 걸어놓았다. 잠시 후 교실 밖에서 기다리던 아이들이 들어온다. 12~13세 남짓의 소녀와 소년들. 처음엔 멋쩍게 웃던 아이들이 곧 익숙해져 교실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감상한다. 선생님이 질문했다. “무엇을 생각하고, 알게 되었니?” 한 아이가 대답한다. “성기들의 모습이 서로 많이 달라요.” 친구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중요한 발견이다.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다르게 생긴 것처럼 성기의 모습도 다르지. 어떤 것이 정상이고, 비정상인 것이 아니라 모두가 정상적인 성기란다.” 자신의 성기를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해 평생 사랑을 두려워하거나, 파트너 성기의 모습에 놀라 사랑을 회피하려 했을 아이들의 인생을 비춰주는 환한 빛이 느껴졌다.

김진한 헌법전문가·독일 에어랑엔대 방문학자

김진한 헌법전문가·독일 에어랑엔대 방문학자

나의 중학교 시절. 어느 날 수업 중이던 선생님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아래에서 보고 있는 것 가지고 나와.” 한 친구가 앞으로 나왔다. 그 아이 손에는 여성의 나체 사진으로 가득한 외국 잡지가 들려 있었다. 그 아이는 교실 모든 아이들 앞에서 여러 차례 뺨을 맞아야 했다. 청소년들이 호기심과 욕구를 주체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을 때, 우리 교육은 성에 대한 죄의식과 혐오, 그리고 공포심을 주입했다. 무지의 강제, 모든 성적인 것에 대한 폭력적인 금지는 오늘도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성을 다루는 우리 사회의 유일한 처방이다.

2019년 전문가들이 정부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성평등 교육을 위한 양서를 선정했다. 전국 초등학교에 배포된 100여권의 선정도서 중 1970년대 출판된 덴마크의 한 그림책이 있었다. 교사들로부터는 유익하다, 어린이들로부터는 재미있다는 평가를 받는 보기 드문 양서이다. 하지만 보수 교회와 정치인들이 그 선정성을 비난했다. 여성가족부는 이 책을 비롯한 7권에 대해 양서 선정을 취소했다.

대한민국의 기성세대는 아이들의 성을 자신들이 갇혀 있었던 어두운 골방과 죄의식 속에 가두려 한다. 부모들도 이 작업에 적극적이다. 자녀들이 더 자유롭고 건강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남보다 더 출세하는 사람이 됐으면 하는 일그러진 욕심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파렴치한 이들의 성범죄의 사냥감이 돼버린 아이들의 처지를 걱정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성이 침해당하는 본질적인 영역은 더욱 일상적인 곳에 존재한다. 건강하고 공정한 성교육을 받을 권리를 비난하는 극단적 종교인들의 시대착오적인 주장, 그에 편승하는 보수 정치인과 언론, 형식적이고 구태의연한 학교 성교육, 비합리적인 비난에 쉽게 굴복하는 당국의 안이함과 비겁함이야말로 아이들의 성과 인격, 삶과 자유를 침해하는 근원적인 폭력이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자유와 사랑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폭력적 침해인 것이다.

성기의 형태가 다양한 것처럼 사람들의 삶과 방식도 다양하다. 성교육은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과 사랑을 자신의 방식으로 대면하고 결정하는 방법을 배우고 가르치는 과정이다. 아이들이 서로를 혐오하고 억압하는 세상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세상에서 살게 해야 한다. 그러기에 이제는 가르쳐야 한다. 이제는 해방시켜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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