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가슴곰 425마리

2020.09.21 03:00 입력 2020.09.21 03:01 수정

아직도 반달가슴곰 425마리가 전국 29개 농가의 철창 속에 방치되고 있다. 이들의 존재 이유는 단 하나, 인간에게 웅담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문화재청 천연기념물 제329호, 환경부 멸종위기야생생물 I급으로 지정된 국제적 법정 보호종이지만, 보호받지 못하는 처참한 삶이다.

윤상훈 녹색연합 사무처장

윤상훈 녹색연합 사무처장

한국의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만 열 살이 되면 합법적으로 반달가슴곰 도축이 가능하다. 곰 쓸개가 크고 왕성해질 때까지 10년을 키워 잡아먹는 것. 전 세계적으로 웅담 채취를 위한 반달가슴곰 사육이 합법인 나라는 중국과 한국 단 2곳뿐이다.

식용 반달가슴곰 사육의 비극은 1981년부터 시작된다. 국가가 직접 나서서 사육이 쉽고 농가 소득 증대에 도움이 된다며 곰 수입을 장려한 것이다. 지난 40년 동안 멸종위기종 보호,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이 비참한 정책은 멈추지 않았다. ‘반달가슴곰 425마리’는 1981년부터 1985년 사이 대만과 일본 등에서 들여온 반달가슴곰 493마리의 새끼의 새끼들이 지금까지 남은 것이다.

감염병 대유행으로 국제사회는 한국의 웅담용 사육 곰 문제를 다시 주목하고 있다.

세계적인 동물학자인 제인 구달 박사는 “한국이 반달가슴곰과의 관계에서 더 인도적이고 윤리적인 미래로 나아가기를 바란다”며 영상 메시지를 녹색연합에 보내왔다. 국제동물보호단체 WAP(World Animal Protection)는 야생동물과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는 야생동물 국제 거래의 영구적 종식을 제안하며 ‘G20 야생동물 국제 거래 금지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환경부는 내년 예산안에 반달가슴곰 등 멸종위기종 불법증식 개체 몰수보호시설 설계비를 포함시켰다. 보호시설이 없어 방치된 불법증식 반달가슴곰을 국가가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반달가슴곰의 자유’는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책임이다. 비록 야생으로 돌려보내지 못할지라도 ‘곰보호센터’를 만들어 남은 삶을 고통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반달가슴곰 사육은 우리에게 ‘야만이냐 삶이냐’를 본질적으로 질문하고 있다. 사람만이 아니라 자연과 야생의 생명까지 잡아먹는 야만의 시간을 끝내야만 진정한 삶, 생존, 생명의 길을 기대할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전체 감염병의 60% 이상이 인수공통감염병이고 20세기 이후 발생한 신종 감염병의 75%가 야생동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고도 성장과 무한 성장, 산림 파괴와 난개발, 무분별한 식용과 약재 거래 등으로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과 인간의 접촉이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사육 곰과 같은 형태의 야생동물 거래를 멈추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인간은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의 임계점’을 곧 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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