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기술전쟁서 살아남는 법

2020.09.29 03:00 입력 2020.09.29 03:02 수정

미·중 간 ‘신냉전’ 또는 투키디데스 함정은 5G를 둘러싼 기술전쟁, 반도체전쟁의 형태로 나타났다. 미국의 화웨이 공격은 가히 1950년대의 매카시 선풍을 연상케 한다. 수많은 정치인이나 예술가가 스파이로 몰렸던 것처럼 화웨이는 5G 설비나 소프트웨어에 ‘안보 구멍’을 만들어 안보상의 비밀이나 기업 비밀을 훔쳐냈다는 것이다. 2013년 스노든이 미국 NSA의 감시시스템을 폭로한 데 비견할 만한 국가 차원의 증거도 없다.

정태인 독립연구자·경제학

정태인 독립연구자·경제학

5G는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중추(back bone) 역할을 한다. 예컨대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려면 인공지능이 엄청난 속도로 돌아가야 하고 사물 인터넷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송신이 끊겨서는 안 되며, 이 모든 작업에 최소한의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물론 전쟁 기획가들은 5G에서 드론이나 무인 자동차 간의 전쟁을 상상할 것이다.

2010년대 들어 화웨이에 대해 미 국방부가 시작한 경고는 이제 각 정부부처와 위원회가 중국의 ‘기술거인’들을 어떻게 제압할 것인가의 경쟁으로 탈바꿈했다. 정쟁의 표본이던 미 의회는 필요할 때마다 초당적 법안을 신속히 통과시키고 있다. 화웨이가 파산할 때까지, 결국 중국 정부가 손을 들 때까지를 목표로 삼은 것처럼 계속 강화된 제재를 내놓고 있다.

화웨이를 중심으로 보면 반도체전쟁은 크게 두 국면을 거쳤다. 첫째는 화웨이 제품에 대한 ‘수요 규제’다. 2019년의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미국의 통신사업자들은 화웨이와 거래할 수 없게 되었다. 두 번째는 지난 9월15일부터 시행된 화웨이에 대한 ‘공급 규제’이다. 미국 기술이 들어간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에 대한 수출을 규제하다가 급기야 외국기업에도 일일이 수출 허가(liscence)를 받도록 했다. 미국의 안보를 위해 외국 정부나 기업도 이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옛 냉전이 그러했듯이 미국의 동맹과 동반자들이 참여해야 이런 봉쇄가 효과를 발휘한다. ‘수요 규제’는 곧 이들 나라의 5G 사업에서 화웨이를 배제시키라는 요구가 된다. 이미 화웨이 설비가 안보를 위협하는지를 검토한 후 화웨이를 사업대상자로 선정했던 영국 정부는 결국 그 결정을 뒤집었다. 하지만 이탈리아나 독일, 폴란드처럼 화웨이와 계속 거래하는 나라들도 있다. 이 첫 번째 요구는 각국이 국익을 바탕으로 결정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공급 규제’는 확연히 다르다. 화웨이의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은 5G의 반도체 칩을 설계하지만 이를 주문생산하는 것은 대만의 TSMC를 비롯한 파운드리 회사다. TSMC는 결국 미국의 압력에 밀려 화웨이에 대한 공급 중단을 선언하고 애리조나주에 파운드리 공장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중국 하이실리콘의 5G 칩 설계에는 소프트웨어인 자동화 설계 프로그램(EDA)이 있는데 이는 미국 회사들이 공급하고 있으며, 초정밀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한 하드웨어로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가 필수적인데 네덜란드의 ASLM이 독점하고 있다. 9·15 규제가 노리고 있는 핵심 목표이다.

하지만 자국의 안보가 아닌 미국의 안보 때문에, 뚜렷한 기준도 없이 외국 기업을 제재하는 것은 정당성이 매우 약하다. 다만 금융 헤게모니를 이용해 금융제재(2차 보이콧)라는 폭력 앞에 굴복하는 것일 뿐이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반도체산업을 탈중국화하려는 트럼프의 시도는 오히려 이 산업의 탈미국화를 초래할 것”(5월22일자)으로 예측했다. 실제로 중국에는 미국 제재를 피할 수 있는 반도체 장비 카탈로그가 돌아다니고 있으며, 화웨이가 아닌 중국 회사에 칩을 수출할 수도 있고 금융규제를 피하기 위해 가상통화를 사용할 수도 있다. 부당한 제재를 받는다면 기업들은 주저하지 않고 갖가지 우회로를 찾을 것이다. 당장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잃어버릴 미국의 장비 및 소프트웨어 전문기업들의 반발도 확실해 보인다.

한국은 미·중 사이의 이 전쟁에서도 ‘이럭저럭 버티기’와 헤징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현실주의의 관점에서 철저한 국익 추구를 표방해야 한다. 삼성은 미국의 5G 산업에 참여하고 우회로로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할 수도 있다. 우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5G와 플랫폼 산업의 공동 규범을 만들어야 한다. 이 산업이 가지는 안보상의 위협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지, 나아가서 개인정보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관한 국제규범 수립에 앞장서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제외한 ‘제3지대’가 모두 이런 목소리를 낼 때, 전쟁을 예방하거나 완화할 수 있다. 한국은 제3지대를 선도할 만큼 이미 강해진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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