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을 넘어서는 기적

2020.11.14 03:00

뒤늦은 성묘를 갔다가 단풍구경까지 하고 해가 져서야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청명한 가을공기는 나뭇잎 색깔만 선명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야경도 또렷하게 비췄다. 서울 강남을 관통하는 고속도로변으로 화려한 야경이 펼쳐졌다. 옛날 사람들이 넓은 들판에서 무수하게 빛나는 밤하늘의 별을 봤을 때 느꼈을 법한 벅찬 감정이 들었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한윤정 전환연구자

문득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은 학교운동장의 인조잔디를 보고 아름답게 느낀다는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아름다움의 감각이란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 따라 변화한다.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인식론의 관점에서 미술사를 서술했는데, 근대 이후 풍경화가 등장한 다음에야 사람들은 그림에서 본 ‘아름다운’ 장소를 찾아 소풍을 즐겼다고 전한다. 찬란한 불빛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낀 건, 내 감성이 전기문명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런 전기가 문제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탄소배출을 줄여야 하고,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꿔야 한다. 디지털경제로의 전환 역시 막대한 전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는 부족하고 불안정하다. 최소한 온실가스는 나오지 않는 원자력을 포기하기 어려운 이유다.

원전이 다시 정치쟁점이 됐다. 월성 1호기 조기폐쇄 문제를 놓고, 경제성을 일부러 저평가했다는 감사원장과 여당이 맞서고 있다. 검찰과 야당은 감사원장에, 시민단체는 여당에 동조하는 모양새다. 보수언론은 평가과정에 부정행위가 개입했다고 예견하고,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공무원에게 소리 지른 것까지 기사화한다. 친원전 세력의 볼멘소리다.

효율을 상쇄하고도 남는 원자력의 위험에 대해서는 많은 경험과 자료가 축적됐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인류 절멸의 공포를 남겼다. 기술발전으로 사고확률이 (0.003%) 낮아졌다고 하지만, 일단 사고가 나면 피해는 거의 영구적이다. 후쿠시마 이후 10년이 지났는데도 방사능 오염수 방류문제로 시끄럽다. 정상적으로 가동되더라도 핵폐기물을 남긴다. 실용화되지 않은 최신기술로도 1000년, 자연상태로는 10만년이 걸린다.

원자력의 본질을 알면 더 섬뜩하다. “방사는 정상적 죽음의 원리다. 자연의 모든 것은 천천히 그 열을 방사함으로써 정상적으로 죽는다. 그에 비해 방사능은 폭발적으로 빠른 죽음의 원리이다. 방사능은 인류가 어떻게 하면 빨리 죽고, 그 종족을 허다한 세기에 걸쳐 퍼뜨릴 수 없게 되는지에 관하여 인간이 발견해낸 것이다.”(월터 러셀, <원자력 자살> 1957)

원래 땅속 방사능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물질이다. 모든 동식물은 지각을 덮은 토양에 의존해 살아가는데, 땅속 방사능은 지하의 암석 형성물에서 무수한 미시적 폭발을 일으켜 부식질, 질소, 탄소가스, 산소와 물 등 생명에 필요한 것들을 만든다. 우라늄광에도 0.2% 들어있을 뿐인 독성 우라늄을 지하에서 꺼내 농축시키면 치명적인 물질로 변한다.

문명사회에서는 원자력을 포기하는 게 맞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탈원전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만 짓는 것도, 문을 닫는 것도 쉽지 않다. 2017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숙의민주주의 실험이라는 성과만 남긴 채 ‘계속 건설’을 결정했다. 위원들은 사고위험과 환경에의 악영향을 인지하고 공감했음에도 경제가 발목을 잡았다. 폐쇄하지 못하는 것 역시 경제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만약 집에 불이 났다면 하던 일을 마저 해놓고 나가겠다고 할까. 결국 원전의 위험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이다.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원전정책은 정권에 따라 계속 표류할 것이다. 진정한 공론이 필요하며 지식사회와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언론은 갈등만 부추기고 인문학자들은 에너지에 대해 발언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2050년 넷제로를 선언했다. 기후위기 대응을 둘러싼 세계적 조류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석연료는 줄이면서 원자력은 계속 쓰는 넷제로는 시늉일 뿐 지속가능한 미래라는 관점에서 의미가 없다. 화석연료도, 원자력도 줄인다면 우리는 어떤 경제시스템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자원이 부족한 국가에서 빠른 생산속도와 경쟁적 교육, 엄청난 폐기물 방출로 이룬 경제가 ‘한강의 기적’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다시 ‘기적’이 필요할지 모른다. 세계에서 가장 밀도 높은 원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일회용 플라스틱 배출이라는 기록을 가진 우리가 구조적 한계 속에서 택할 수밖에 없었던 ‘기후악당’의 길을 벗어나려면 ‘경제성 평가’라는 편협한 잣대는 맞지 않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