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디 베어 이야기

2020.11.10 03:00 입력 2020.11.10 03:02 수정

“교수형에 처하라, 총살하라.” 1만명의 시위대가 하르툼 시내를 점거했다. 성난 군중은 거리를 행진했고, 일부는 허공에 칼을 휘둘렀다. 요구는 간단했다. 한 여성을 사형에 처하라는 것이었다.

여성은 영국 출신의 초등학교 교사였다. 수단의 한 초등학교에서 6~7세 아이를 가르치고 있었다. 교실에 비치된 곰인형, 테디베어에 이름을 짓도록 했다. 아이들은 투표를 거쳐 ‘마호메트’를 선택했다. 좋아하는 곰인형에 가장 ‘멋진’ 이름을 주고 싶었던 것일까? 교사 질리언 기번스는 투표 결과를 존중했다. 테디베어는 마호메트로 명명되었다. 이야기를 들은 몇몇 학부모가 격분했다. 30년 경력의 교사가 신성모독죄로 체포, 구금된 이유다.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신경인류학자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신경인류학자

문화적 상호 이해의 절실함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권위상에 대한 존경’은 모든 문화권에서 관찰되는 도덕 규범 중 하나다. 영국 정부는 수단 정부에 강력 항의했지만, 사실 영국에서 신성모독죄가 폐지된 것은 2008년의 일이다. 테디베어 사건 바로 다음 해다.

우리의 도덕 기준은 그리 다종다양하지 않다. 조너선 하이트와 크레이그 조지프는 도덕에 관한 방대한 인류학적 문헌을 조사했다. 수많은 도덕 기준을 고작 다섯 범주로 요약할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권위 대상에 대한 충성’이다. 특정 대상을 존경하며, 기꺼이 복종하려는 마음이다. 다른 이가 존경을 표하지 않으면, 무례하다고 느끼며 깊이 상처받는다.

흔히 이타심이나 공정성을 높은 가치로 생각한다. 불쌍한 이를 돕고, 매사에 공평을 기하는 마음이다. 애집단, 즉 애국심도 이론의 여지가 거의 없다. 다들 동의한다.

하지만 권위 복종에 이르면, 좀 복잡해진다. 신석기 계급 사회가 등장하면서 굳어진 도덕 정서로 추정된다. 지배적 리더나 집단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위계에 순종하는 것이다. 평등 사회에서는 별로 필요하지 않았던 가치다. 집단의 사슬을 단단히 구축하고, 복잡사회를 효율적으로 엮어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알고 보니 각자의 ‘주인’이 모두 달랐다. 영국의 신성모독죄는 오직 성공회에 관한 모독만 처벌했다. 수단에서도 곰인형을 ‘예수’로 불렀다면, 기번스는 40대의 채찍형 위기를 걱정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수많은 인류사의 비극이 대개 이런 식이다. 십자가를 든 구교도와 성경책을 든 신교도가 서로 죽였다. 고향 친구인 회교도와 힌두교도가 서로 돌팔매를 날렸다. 명나라를 섬길지, 청나라를 섬길지 다투며 서로 싸웠다. 광화문에 태극기가 휘날릴 때, 서초동엔 촛불을 밝혔다. 서로가 서로를 ‘나쁜 놈’이라며 미워하는 것이다.

개신교인을 화형시키던 16세기 영국의 군중이나 55세 초등학교 여교사를 총살하라던 수단의 시위대나, 아주 ‘비슷한 사람’이다. 권위에 충성하려는 ‘몹시 도덕적인’ 사람이다. 단지 주인이 달랐을 뿐이다. 도덕심이 강하면 강할수록, 상대에게는 ‘더욱 나쁜 사람’이 되는 역설이다.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도 똑같다. 거울을 보며 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른 주인을 섬기는, 같은 품종의 개가 맹렬히 싸우는 격이다. 결국 개만 손해다.

돌봄·공정·애집단(애국)·권위·정결. 다섯 가지 기본적 도덕 범주다. 종종 충돌한다. 어느 것도 절대적 가치가 아니다. 개인과 집단에 따라,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다. 중생대부터 진화한 대뇌 변연계에서 촉발되는 원시 정서다. 특히 도덕 정서는 신속하고 강력한 반응을 유발하는데, 그렇다고 ‘진정성’의 증거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원시의 정서일수록 맹목적이다. 주인이 아니면 누구에게나 짖는다.

어떤 이가 ‘정말 나쁘다’고 여겨져 분통 터진다면, 다섯 가지 도덕 범주 중 뭐가 켜졌는지 돌아보자. 켜진 걸 꺼보고, 꺼진 걸 켜보기도 하자. 우리가 그토록 미워하는 그들. 대개는 주인이 서로 다를 뿐이다. 그들은 우리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