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도, 7명의 퇴근길은 무사하지 않습니다

2021.01.04 03:00 입력 2021.01.04 03:01 수정
이한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

몇 주간 밥 반찬으로 ‘죄책감’이 올라왔다. 지인과 식사할 때면, 단식 중이신 아버지를 두고 ‘밥을 먹어도 괜찮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이기도 한 나의 아버지께서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님과 함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본청 앞에서 25일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응원은 마음으로 다하고, 밥은 맛있게 먹자고 되뇐다. 역설적이게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농성은 먹고살기 위해 먹지 않는 것이니, 지지하는 사람들이 잘 먹어서 버티는 것도 중요하다.

이한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

이한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

버텨야 변한다. 하루 7명이 산재로 퇴근하지 못하는 일터는 그대로다. 유가족의 투쟁이라는 비극적인 아이러니도 없어지지 않았다. ‘산재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정부의 공언이 무색하게, 달력만 새로 달았을 뿐 2021년이 될 때까지 바뀐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다.

시민들은 이미 오랜 시간 비극을 경험하고 목격했다. 이천 화재 참사에서 보듯 원청과 발주처의 지시가 사고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산재 발생 가능성을 무겁게 보지 않은 유관 국가기관 공무원의 허가 때문에 씨랜드 사건과 같이 발생하지 않았어야 할 사고들이 일어난다. 사장이 함께 책임을 지지 않으니, 기업 전체가 안전사고를 가볍게 여기고 꼬리 자르기식 미봉책으로만 처리하니 재발한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수십년간 쌓아온 경험을 무시한 채 새로운 논의인 양 공전 중이다. 공무원과 경영책임자 처벌, 위험의 외주화 방지 등이 원점에서 재검토되고 있다.

산재가 사업장의 규모를 가릴 리 없음에도 50인 미만 사업장은 유예할 것인지를 논의한다. 짙게 선팅된 리무진 차창으로 하루하루 사활을 걸어야 하는 농성장을, 시민의 일터를 보고나 있는지 의문이다. 현장의 시간은 급박한데, 국회는 본질을 벗어난 채 ‘부스러기’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국회 본청 앞 농성장엔 ‘사람을 살리는 단식농성장’이라는 문구부터 보인다. 곡기를 끊음으로써 사람을 살리려고 한다. 자식을 떠나보낸 유가족이 자식을 살리기 위해 농성을 한다. 모순이 가득하다. 65세의 나이를 걱정한 만류에도, 아버지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이 전해져야 하루라도 빨리 법이 통과될 수 있다며 강행하셨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몸이 좋아질 거라며 웃지 못할 농담을 남긴 채 집을 나섰고 아직 퇴근하지 못하셨다. 이런 비극과 아이러니를 2021년까지 보고 싶지는 않다.

다시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과 기업의 이권 중에 2021년 국회와 정부가 택해야 할 바는 명확하다. 임시국회가 끝나는 1월8일까지, 누더기가 되지 않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반드시 통과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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