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

2022.04.09 03:00 입력 2022.04.09 03:01 수정

“50여년을 가까이 지냈던 이어령 선생님께서 말기 암 환자로 생을 마감하실 것 같아 문병을 갔었습니다. 드릴 말씀도 물건도 마땅치 않아 내 곁을 떠난 동생의 죽음 이후 평생을 마음 아파하신 어머니의 고통을 화제로 삼았습니다. 이 선생님도 10년 전 따님을 먼저 보내고 괴로워하시기에 동병상련의 공감으로 위로를 드리고 싶었지요. 플로리스트에게 부탁해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연상케 하는 오래갈 꽃을 전해드렸지요. 작은 전구들이 수많은 빛깔로 명멸하는 예쁜 화분이었죠. 또 지난해 8개월에 걸친 나의 암 치료 과정을 소상히 말씀 드렸지요. 제가 태아 때 모친께서 영양실조셨고 저도 오랜 세월 많은 병을 앓았지만 주위에 알리지 않는 습벽이 있습니다. 동생의 죽음 이후 어머니는 제가 조금만 아파도 신경이 과민해지셔서 저는 어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지 않게 해달라는 게 기도제목 중 하나였는데, 그래서 11년 전 어머니와의 영결은 슬픔이었지만 한편 해방감도 있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니 이 선생님께 위로가 된 것 같았습니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한윤정 전환연구자

강대인 배곳 바람과물 이사장이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이어령 선생과 나눈 마지막 교신 내용을 접했다. 강 이사장은 신학자이자 시민사회운동가였던 고 강원용 목사(1917~2006)의 아들로서 청년 시절부터 아버지를 도와 크리스챤아카데미의 여성·농민·노동자 교육을 진행했고 10여년에 걸친 법학계의 대화아카데미 헌법안 작업을 이끌었으며 교육개혁과 생명운동을 해온 시민사회계의 원로이다. 서울 평창동 이웃이기도 했던 두 사람의 문자 메시지에 담긴 병과 죽음을 대하는 품격을 전하고자 많은 원문을 인용하는 데 대해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이어령: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나보다 더 병고와 싸우면서도 아프다는 말조차 할 수 없었던 그 상황을 생각해보니 부끄러워지네요. 결국 승리자가 된 거예요. 의로운 길의 목적지에 이른 거예요. 특히 꽃 선물, 밤마다 나와 함께하고 있지요. 감사기도 드립니다.

강대인: 예상과 다른 선생님의 초연하고 평온한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원숙한 경지에서 들려주신 믿음의 메시지를 마음 깊이 새깁니다. 험난했던 세월 선생님께서는 저희 가족과 아카데미에 비빌 언덕이 되어주셨고 실로 많은 것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오랜 세월 선생님이 함께해주셔서 행복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선생님과의 귀한 인연을 맺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이어령: 너무나 아름다운 선물을 받고 교회에 나가지 못하는 나에게 진정한 산타클로스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바로 곁에 참된 인물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지요. 지금이 내 생애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때이지만 동시에 내가 타자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절정의 시간들이기도 해요. 나보다도 의연하게 그리고 남모르게 암과 싸워 이긴 그 정신, 나의 모델이 될 겁니다. 몸이 성치 않아 오타가 많을 것이니 퀴즈 풀듯이 읽어주세요. 좋은 한 해를 맞이하길 기원하면서. (실제 오타가 많았지만 여기서는 바로잡아 전한다.)

지난 수년간 우리 시대의 지성으로 손꼽히는 이어령 선생의 암 투병 사실과 병상 인터뷰,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임종 직전에 던진 스물네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 형식의 대담집 출간 등 다양한 소식이 전해졌다. 고인은 날로 수척해지는 모습을 대중에게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예고된 죽음으로부터 삶의 의미와 기쁨을 찾으라는 ‘메멘토 모리’의 메시지를 자신의 온 존재로 전하면서 마지막까지 한국 사회의 교사 역할을 다했다. 그러나 내게는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던 죽음 앞의 삶, 그 연약한 아름다움이 두 원로의 대화에서 울컥 마음으로 느껴졌다. 고통으로 고통을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 진심 어린 감사와 축복의 언어가 주는 감동이다.

지난 2년여,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노인들이 요양원, 요양병원, 중환자실에서 자식들의 손도 잡아보지 못한 채 영면했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2020년 기준으로 전체 사망자의 75.6%가 집 바깥에서 죽음을 맞는다.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 등은 삶의 연장이 아니라 죽음의 연장이다. 나 역시 아버지의 임종을 겪으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최근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라는 책을 낸 의사 박중철은 “현대사회가 죽음의 공포를 다루는 방식은 개인 차원에서는 철저히 망각되는 것, 사회적으로는 일상으로부터 배제하는 억압의 전략”이라고 했다. 이어령 선생처럼 존경받는 지성인이 아니더라도 평범한 이들 역시 평생 수고한 대가만으로도 존엄한 죽음을 맞을 권리가 있다. 이런 죽음을 위한 돌봄의 의료와 보건 정책이 절실하다. ‘메멘토 모리’는 개인에게 주는 교훈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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