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복의 사회학

2022.04.08 03:00 입력 2022.04.08 03:04 수정

지난달 한국문화사회학회가 오랜만에 월례 컬로퀴엄을 열었다. 발표자는 사회학자·작가 정수복. 2015년 한국사회학회가 ‘한국 사회학의 사회학’이란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을 때 주제 발표를 했다. 왜 한국 사회학자는 선배 사회학자의 삶과 학문에 그렇게나 관심이 없나? 학문의 자율성을 키우지 않고 미국 사회학장을 기웃거리며 2부, 3부 리그를 자처하는가? 정수복이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해서 선배 사회학자의 삶과 학문을 살폈다. 1년마다 회장이 바뀌는 탓에 일회성 행사로 끝나는가 싶었다. 정수복이 잊지 않고 한국 사회학사를 만들고자 씨름하더니, 마침내 올해 ‘한국 사회학의 지성사’를 4권으로 펴냈다. 한국 사회학자가 남긴 저서와 논문을 ‘기초 사료’로 삼고 선배 사회학자와 나눈 대담을 ‘보충 사료’로 삼아 쓴 한국 사회학의 살아 있는 역사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1권 <한국 사회학과 세계 사회학>은 한국 사회학을 세계 사회학과의 관계를 통해 돌아본다. 한국 사회학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 사회학에서 시작해서 영국·독일·프랑스 사회학의 역사까지 두루 살핀다. 더 나아가 중심부가 소외시킨 주변부 사회학, 예를 들어 라틴 아메리카와 동아시아의 사회학 역사까지 추적하여 한국 사회학의 위상을 상대화한다. 이어 한국 사회학 100년의 계보학을 추적하고, 왜 미국 사회학에 종속된 모양을 갖게 되었는지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2권 <아카데믹 사회학의 계보학>은 한국 사회학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실증주의 사회학의 계보를 추적한다. 일제강점기 진단학회의 활동을 바탕으로 대학에 사회학과를 처음 만든 이상백, 경성제대 사회학과를 나와 대구·경북에 아카데믹 사회학의 전통을 만든 배용광, 미국 사회학의 조사 방법을 도입·활용하여 농촌사회를 조사한 이만갑, 인구학의 물꼬를 트고 정책 사회학의 전통을 세운 이해영, 미국 사회학의 이론과 조사방법론을 도입하고 독특한 한국 사회발전론을 펼친 김경동.

3권 <비판 사회학의 계보학>은 상아탑 안에 갇힌 아카데믹 사회학을 문제 삼으며 당대 현실과 치열하게 대결한 비판 사회학의 역사를 살핀다. 삶 속에서 이론을 구성하고 그 이론을 현장에서 실천하면서 삶과 앎의 순환과정을 몸소 보여준 이효재. 민중사회학을 개척해서 시민사회론으로 가는 길을 닦고 청년 문화론을 펼친 한완상. 자본주의 체제분석을 한국 사회학에 도입하고 민중·민족사회학자로 변혁 운동에 실천적으로 개입한 김진균.

4권 <역사 사회학의 계보학>은 한국 사회의 역사적 경험을 재구성하면서 한국 사회의 특성을 설명하는 역사 사회학의 계보를 추적한다. 한국의 가족과 농촌사회를 대상으로 평생 실증적인 사회사 연구에 몰두한 최재석. 한국의 사회현실과 역사에 바탕을 둔 실사구시적 연구를 통해 자주적인 민족주의 사회학을 도모한 신용하. 새로운 굴대 시대를 창출하기 위한 초월적 가치를 모색하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전통과 현대를 성찰한 박영신.

이제 우리도 한글로 쓰인 한국 사회학사를 갖게 되었다. 선배 사회학자의 글을 읽지 않고, 읽어도 인용하지 않으며, 설사 인용한다 해도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 처참한 현실에 정수복이 정면으로 도전해 이루어낸 성과다. 한국사회학회가 해야 할 일을 정수복이 매일 3시간 글 쓰고 3시간 공부하고 3시간 글 읽는 수도자의 삶으로 홀로 이루어냈다. 그 흔한 ‘특활비’는커녕 제대로 된 연구기금도 없이. 정말 고맙고, 부끄럽다. 지금 대학 밖에 수많은 정수복이 있다. 한국연구재단이 있다지만 대학 밖의 정수복은 눈 밖이다. 그런데도 정수복은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공부한다. 공부란 우리 모두의 문화자산을 창출하는 일이다. 우리 스스로 창출하지 못하면, 우리 후손도 계속해서 우리의 글을 우습게 알고 남의 글을 빌려 살 것이다. 이제라도 정수복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제대로 지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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