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강사, 당찬 강사, 슬픈 강사

2022.07.15 03:00 입력 2022.07.15 03:04 수정

동료연구자가 늦은 밤에 전화했다. 슬프고도 우울한 목소리였다. 그는 ‘다음 학기부터 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여러 대학의 공개채용에 지원해 볼 생각이지만, 자신은 없다고도 했다. 그는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10여년이 넘게 글을 쓰고 강의했다. 대학 강의실에 있을 때, 활기가 넘치던 동료였다. 그의 떨리는 목소리에는 심각한 존재의 위기를 맞이한 이의 불안감이 담겨 있었다. 나의 위로는 그를 더 비통하게 하는 듯했다. 며칠 후에는 동료 여성 연구자에게 전화를 받았다. 직장이 있는 박사학위 소지자인데, 그간 맡아왔던 대학 강의에서 해촉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그에게 대학 강의는 삶의 소중한 영역이었다. 더 이상 가르치지 못하게 되어 그의 마음에도 어둠이 깔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두 동료의 연락을 받고서야 내 주변의 대학 강사들에게 재앙과 같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사람은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세상의 풍경을 다르게 살핀다. 위치가 생각을 바꾸고, 생각이 존재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나도 부끄럽게 자신의 위치에서만 대학 사회를 바라보기에 급급했다. 지난 6월, ‘대학 강사들의 대량 해촉 사태’가 3년 만에 다시 시나브로 벌어졌다. 약자인 대학 강사들이 목소리를 못 내고 있었을 뿐이다.

오창은 문학평론가·중앙대 교수

오창은 문학평론가·중앙대 교수

나는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약 9년 동안 서울, 원주, 인천, 천안, 춘천의 대학에서 강사 생활을 했다. 보통 4학점씩을 했고, 다음 학기의 운명을 알지 못하는 당찬 강사였다. 강의 자리 찾기는 박사논문 쓰기보다 더 힘들게 느껴졌고, 해촉되기는 놓쳐버린 지하철처럼 순식간이었다. 2003년도의 일이다. 강원도 한 대학에서 다음 학기 강의를 늦은 밤 13·14교시와 다음 날 아침 1·2교시로 배정했다. 하룻밤을 그곳에서 보내야만 맡아 할 수 있는 수업이었다. 강철 강사 시절이라 찜질방, PC방, 값싼 여인숙에서 쪽잠을 자고는 아침 강의를 했다. 나중에야 선배에게 들어서 알게 된 이야기였는데, 학과장이 강의 배정을 이틀에 걸쳐 한 이유는 ‘더 이상 강의를 맡지 말아달라’는 암묵적 메시지였다고 한다. 그 대학에서는 3년을 버텼다. 하지만, 정작 대학 강사 시절 내게 가장 큰 상처는 부당한 학과장의 처사가 아니라, 가르치는 학생들이 나를 ‘강사님’이라고 호칭했을 때의 충격이었다. 강단에 선 스승을 학생들이 ‘교수’ ‘강사’로 차별해서 부르자 존재의 위기가 찾아왔다. 차별의 상처는 깊은 내상을 남긴다. 강철은 차별의 언어로도 심각하게 부식되고 만다.

3년 전인 2019년 8월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이 시행되었을 때, 우려는 있었지만 진심으로 환영했다. ‘강사법’ 이전에는 대학 강사는 언제든 해고가 가능한 ‘일용잡급직’이었다. ‘강사법’ 이후 교원 지위가 인정됨으로써 부당한 처분에 대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소청심사 청구권’이 부여되었다. 임용기간도 1년 이상이고, 3년까지 재임용 절차가 보장되었다. 신분 안정성이 훨씬 강화된 것이다. 방학 중에도 임금의 일부가 지급되었다. ‘강사법’ 시행 3년 이후인 올해 6월 다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강사법’으로 대학 강사들이 더 나은 조건에서 연구자와 교육자로서 미래를 개척해나갈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현실은 공교롭게도 팬데믹과 겹치면서 3년의 불안한 신분 보장이 다시 위기를 맞고 있는 양상이다.

3년 전처럼 대부분의 대학에서 대규모 강사 공개채용을 해 ‘강사들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그사이에 전임교수들의 원격강의도 급격히 증가해 대학 강사들의 신분 불안정성이 커졌다. 대학생들은 학습권 침해가 무엇보다 문제다. 상대적으로 젊은 대학 강사들은 새로운 학문에 대한 관심과 활기찬 에너지로 대학사회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학생들의 교과목 선택권 축소도 우려스럽다. 도전적이고 새로운 교과목 운영보다는 기존 교과목을 원격강의로 전환하거나 대형 강의로 운영하여 ‘교과목 운영의 경직화’ 현상이 발생했다. 대학 강사들은 대학교육의 하부구조다. 대학사회의 약자인 대학 강사들에 대한 고등교육 당국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내게 전화를 한 두 동료 연구자처럼 나도 강사 생활을 그만두게 되었다면, 연구자로서의 길을 포기했을 것이다. 나는 운이 좋아 대학사회에 남게 된, 강사들에게는 부끄러운 ‘전직 강사’다. 대학에 있는 전임 교수들은 대부분이 한때는 강철 강사였고, 당찬 강사였고, 슬픈 강사이기도 했던 ‘전직 강사’들이다. 반값 등록금과 학령인구 감소, 학문후속세대 강의 기회제공이라는 현실적 상황 때문에 ‘전직 강사들’이 ‘현직 강사들’에게 상처를 안기고 있다. 슬픈 대학사회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