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작전권을 넘긴 비밀협정

2022.07.20 03:00

한국전쟁에서 쓰던 수통이 오래도록 국군 보급품으로 남아 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수통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한국전쟁에서 유엔군 사령관에게 양도한 국군작전통제권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송기호 변호사

송기호 변호사

지난 15일, 서울 양재동 행정법원에서 작전통제권의 국제법을 묻는 재판이 열렸다. 국방부 장관이 작전통제권 비밀협정 공개를 거부한 사건에서 재판은 시작했다. 국제법적으로 한국은 미국과 협정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작전통제권을 한미연합군 사령관에게 이양했다. 온전하고 주권적으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국제협정을 미국과 맺은 것이다. 1978년의 일이다. 그런데 이 협정자체가 비밀이다. 현재 알려진 것은 이 협정의 이름뿐이다. ‘군사위원회 및 한미연합군사령군 관련 약정.’ 이 글의 첫번째 문제 제기이다.

대한민국 국회도 이 비밀협정을 알지 못한다. 그 어떠한 국회의원도 이 협정을 보고받지도, 심의하지도, 찬성 반대의 의사표시를 하지 못했다. 한국전쟁 때의 수통은 그래도 대부분 신형으로 교체되었다. 그러나 이 비밀협정은 그 어떠한 빛도 이르지 못하는 깊고 깊은 심연에 영구적으로 웅크리고 있다. 마치 한국 민주주의의 빛나는 성취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래서 나는 국방부 장관에게 군사기밀해제 신청을 했다. 소심한 성격이라, 조심스럽게 비밀 협정의 오직 한 부분에 대해서만 공개신청을 했다. 그것은 한국이 작전통제권을 다시 돌려받는 데에 미국이 국제법적으로 동의권을 가지고 있는가이다. 한 번 더 풀어쓰면, 미국이 동의를 해 주어야만 한국이 작전통제권을 환수할 수 있는 내용의 조항이 있는지만이라도 공개하라고 국방부에 요청했다. 이것이 이 글의 두 번째 문제 제기이다.

미국은 작전통제권 환수에 국제법적 동의권을 갖고 있는가?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나는 미국이 동의하지 않는 방식으로는 한국이 작전통제권을 환수할 수 없는 국제법적 구조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 까닭은 이러하다.

먼저 1994년, 당시 노태우 정부 시절 한국이 휴전 시의 작전통제권 일부를 돌려받을 때, 한국과 미국은 ‘교환각서’를 체결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위 비밀협정의 개정 ‘합의’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합의라는 것은 양 당사자가 모두 동의해야 성립한다. 한국은 1994년에 미국이 합의를 해 주었기에 비로소 평시 작전통제권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애초의 비밀협정에 작전통제권 환수에 미국 동의가 필요하다는 조항이 있을 것으로 본다.

둘째, 이미 사례가 있다. 1954년 미국과 체결한 또 하나의 작전통제권 이양 협정에 미국의 합의가 있어야 협정을 변경할 수 있다는 조항이 뚜렷하게 존재한다. 이 사실은 이 1954년 협정이 외교부 누리집에 공개되어 있기에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여, 나는 미국이 문제의 1978년 작전통제권 이양 비밀협정에 자신의 동의권을 규정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짧은 글이지만, 나는 제기한다. 작전통제권을 한미연합사령부에 이양하는 비밀협정이 있다. 그리고 그 협정은 미국이 동의하는 방식이 아니면 한국이 작전통제권을 환수할 수 없는 국제법적 구조일 것이다. 그래도 한국에 좋은가?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는 법은 그저 법일 뿐이고, 냉정한 국제 안보 현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한미연합사 작전통제권 체제가 더 튼튼하다고 믿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안보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다. 작전통제권은 민주주의를 위한 도구이며 민주주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미국에서는 중국과 대만 사이에 군사 충돌이 있을 경우 한국군의 대만 지원을 요구하는 주장까지 나온다. 그 배경에는 바로 한미연합사 작전통제권 체제가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미국과 안보 협력을 하는 방식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그럴 정도로 발전했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군을 통수한다고 규정했다. 그리고 1990년 대한민국 국회는 국군조직법을 개정하여 합동참모의장이 국군을 작전지휘한다고 명확하게 규정했다.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에 그 어떠한 법적 근거도 없는 한미연합사가 영구적으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체제라면 이는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한미연합사 체제가 유일하며 필연적인 안보협력 방식은 아니다. 작전통제권 비밀협정을 밝은 대낮의 광장으로 나오게 하자. 민주주의의 통제를 받게 하자. 진정한 안보를 위해서는 한국전쟁에서 쓰던 수통만 바꿀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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