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할 게 없고, 기댈 게 없다

“기대할 게 없어요.” 지난 2년간 코로나19와 기후위기를 끝없이 마주한 장애인과 부모들, 동료 시민을 만날 때마다 들어온 말이었다. 팬데믹과 재난이 연속되는 현실 앞에서 무엇이 가장 괴로운지 묻는 말에는 어김없이 기대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코로나가 너무 아팠다’거나, ‘소득이 줄었다’거나 하는 하소연이 주를 이루리라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재난 앞에서 삶이 해체되는 고통을 체험한 이들조차 가장 괴롭게 인식하는 것은 기대할 게 없다는 사실이었다.

변재원 작가·소수자정책연구자

변재원 작가·소수자정책연구자

장애인 활동가는 2018년 메르스 사태 때부터 장애인이 대처할 수 있는 방역 지침을 정부에 요구했지만 여태껏 제대로 준비된 게 없어 기대할 것이 없다고 말했고, 발달장애인의 부모는 자녀가 확진되어도 정부로부터 적합한 지원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아 기대할 게 없다고, 장애 당사자는 중증 장애를 가진 이들의 지원책 실무를 두고 부처끼리 책임만 떠넘기다 말 것이 뻔해 기대하는 게 없다고 말했다. 저마다의 사연 속 되풀이되는 문제 속에 더는 기대할 게 없다는 우울한 결론은 더는 기댈 게 없다는 좌절로 들렸다.

재난의 시대 속 힘겹게 남은 한 뿌리라도 지탱하려는 이들은 국가의 사회적 안전망이 자신의 그늘이 될 수 없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문제 앞에서, 구조적 차별 속에서 생존의 책임이 일방적으로 자신에게 떠넘겨졌다는 사실을 사회적 취약계층은 맘 속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침수 속 죽어가는 이를 볼 때 한 번, 자녀를 죽이고 스스로 죽은 부모를 볼 때 한 번, 형용할 수 없는 기구한 참사 사연들 앞에서 또 한 번 떠올렸다. 끝없이 목격한 결과, 죽음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이들은 전망 없는 삶 앞에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것을 선택지로 인식하고 있었다.

내일을 살아야 할 기대를 갖지 못하는 시민들의 호소 너머 마주한, 뉴스 속 국가는 아무런 전망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질병관리청만 보더라도 과학방역을 제시했다가, 자율방역이 더 낫다고 했다가, 아무래도 표적 방역이 좋겠다는 둥 시작이 중요하다며 중언부언하다 말았다. 이제 더 이상 화려한 수사로 점철된 새 정책이 발표된들, 죽음을 고민하는 시민들은 허울 같은 명칭 따위를 고민할 여유조차 갖지 않는다. 사치라 여긴다. 도리어 냉혹하게 현실을 바라보는 이들은 그나마 지금까지라도 제 기능을 한 몇 남은 기존 대책마저 요란 속에서 붕괴될까 맘 졸이고 있었다.

착지의 기약이 없는 채 배제와 죽음의 위협으로 드리워진 망망대해에서 새 파고를 마주하는 승선자의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국민에게 국가는 나침반 같은 존재가 아니라, 폭풍우처럼 인식되고 있다. 기대가 없는 사회, 믿음이 없는 사회는 돌고 돌아 미래가 없는 사회를 종착지로 향하고 있다.

때때로 여당이 화를 내며 치받는 뉴스와 야당이 열을 내며 전당대회를 여는 뉴스가 우리 사회의 에너지가 아직 여전하다는 것처럼 포장했지만, TV 밖 거리에서 만나는 대다수 이웃들은 집단적 무기력감에 드리워져 말을 잃었다. 출구를 찾지 못해 목소리를 잃어간 채 단념한 이들의 현실을 기록하는 나조차 2년간 격려할 힘을 잃었다. 모두들 목메는 슬픔에 잠겼을 뿐이다. 기대할 게 없고, 기댈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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