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염치

2022.10.11 20:49 입력 2022.10.11 22:35 수정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은 부박(浮薄)하고 무치(無恥)한 대통령의 언행을 각인하는 참사로 길이 남게 됐다. 애초 비속어 발화자인 윤 대통령이 쿨하게 인정하고 사과했으면 비판은 좀 받더라도 넘어갔을 사안이다. 기대는 난망했지만, 대통령 언행의 중함을 벼리고 성찰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더할 나위 없었을 터이다.

양권모 편집인

양권모 편집인

하지만 적반하장, 거꾸로 갔다. 보도된 영상을 통해 비속어가 확인됨에도, ‘이 ××’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윤 대통령이 앞장서 거짓과 억지로 잘못을 덮으려 하면서 사태를 키웠다. 외교 현장에서 비속어를 썼다는 사실보다 이후 대처 과정에서 뾰족해진 몰염치한 태도가 더 분노를 불러왔다. 왜 이리 어이없는 대응이 나왔을까.

윤석열 대선 캠프 대변인을 지낸 이동훈이 지난 5일 SNS에 올린 글에 답이 있다. 주석 없이 그대로 옮긴다. <“나 때문에 이긴 거야. 나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야.” 1시간이면 혼자서 59분을 얘기합니다. 깨알지식을 자랑합니다. 다른 사람 조언 듣지 않습니다. 원로들 말에도 ‘나를 가르치려 드냐’며 화부터 냅니다. 옛일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검사의 단일 유전자가 새겨진 윤 대통령은 고집스럽게 자기 스타일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 이런 성정이라면, 엄연한 영상으로 확인된 비속어조차 부인하며 외려 언론 보도에 진노하는 대통령에게 진실을 확인하고 합리적 대응을 건의할 수 있는 ‘간 큰’ 참모가 있었을까 싶다. 건의한들 수용되었을 리도 없다. 그러니 윤 대통령이 직접 “동맹 훼손” “진상 규명”을 외치며 언론 보도를 공격하고 나섰을 것이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철학은 없이 단편 지식을 앞세운 독단, 남의 말을 경청하지도 조언을 듣지도 않는 불통, 거기에 ‘하늘이 내린 사람’이라는 자뻑에 사로잡혀 있다면 참으로 위험천만하다. 본디 무능하면서 고집 세고, 부지런한(혹은 게으른) 리더가 최악이라고 했다. 조직을 오도하고 구성원을 고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리더십이라면, ‘대통령 리스크’로 불리는 윤 대통령의 깊이 없는 정책 인식,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언행, 넉살스러운 태도가 왜 반복되는지 이해가 된다. 지지율 하락에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일축하고, 복합위기에 대해 “열심히 하면 된다”는 대책 없는 낙관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알 만하다. 철학이 뒷받침되지 않는 깨알지식을 앞세우니 중요한 정책과 인사에 대한 실언과 혼선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식화하면서 “피해호소인 시각 탈피하자는 것”으로 정리하는 용감함(?)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김건희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는 것도 ‘쓴소리’가 통하지 않기 때문일 터이다.

사실 비속어 논란 자체보다 그 대응 과정에서 나타난 이 불통과 독단, 집권 세력의 확증편향이 더 무섭다. 개선되지 않으면 앞으로 4년7개월 동안 국정 운영에서 고비마다 부정적으로 작동할 기제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회 갈등과 고도의 외교 정책, 경제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통령의 부족을 보완할, 유능하고 통합적인 인물로 대통령실과 내각을 꾸렸다면 불안이 덜할 터인데 그것도 아니다. 외려 특정 인맥과 ‘검찰 식구’로 구축된 친위 세력이 대통령을 에워싸고 있으니 ‘집단 사고’의 함정에 빠지기 십상이다. 일련의 순방외교에서 드러난 외교팀의 무능이 우울한 징후다. 윤 대통령은 대선 당시 “무식한 3류 바보들 데려다 정치해서 경제, 외교, 안보 전부 망쳐 놓았다”고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난했다. 지금이야말로 윤 대통령이 거울로 비춰봐야 할 말이다.

‘비속어 논란’은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환기시킨다. 일찍이 정치윤리의 핵심으로 꼽았던 ‘염치’라는 부끄러움의 기제다. 외교 현장에서 ‘욕설’을 내뱉은 대통령으로부터 느끼는 부끄러움보다, 억지로 잘못을 덮으려는 ‘염치 없음’이 도드라진다. 최소한 민망하고 부끄러운 척이라도 해야 하는데 “뭐가 문제냐”고 적반하장이다. 국민 다수가 잘못했다고 비판하는 사안에도 매번 “무얼 잘못했느냐”고 대거리다. 윤 대통령은 숱한 실언과 정책 혼선, 인사 실패에 대해 한 번이라도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한 적이 없다. 부끄러움은 반성과 성찰을 통해 개선의 동력을 마련케 하는 힘이다. 지도자가 떳떳함을 잃고 잘못을 덮기에만 겁겁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신뢰는 땅에 떨어진다. 염치를 잃은 지도자가 정의와 공정을 암만 외쳐봐야 울림이 있을 리 만무하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