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테크, 탄소중립 세상으로 이끌어 줄 게임체인저

2023.02.14 03:00 입력 2023.02.14 10:40 수정

[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 기후테크, 탄소중립 세상으로 이끌어 줄 게임체인저

증기기관 개발이 산업혁명이란 새 인류 문명을 태동시켰듯, 기술의 진보는 인류 역사의 중요한 변곡점을 만든다
작은 출발이 결국에는 인류의 미래를 바꾼 것처럼 기후테크도 어쩌면 그럴지 모른다
산업혁명 불 지핀 증기기관처럼 탄소중립혁명의 불 지필 기후테크가 미·일이 아닌 한국서 나오길 진심으로 기대

며칠 전 인공위성을 이용한 대기 중 탄소(이산화탄소, 메탄) 측정 자료 확보를 위해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와 국립환경연구소(NIES)를 방문하였다. 아직 우리는 국토 곳곳에서 발생하는 ‘실제’ 탄소배출을 파악할 수 있는 위성이 없기에 온실가스 위성 2개를 보유한 일본에 자존심은 조금 상하지만 자료 동냥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그래도 다행히 오랫동안 연구를 함께해온 신의를 통해 앞으로 한국에 더 많은 측정 자료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매우 기뻤지만 사실 부러운 마음이 더 컸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최근 들어 경제력이 많이 약해졌다고 평가받는 일본이지만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과학기술의 수준은 그 어느 국가보다 앞서 있기 때문이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이어진 긴 토론과 협의를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호텔로 들어와 TV를 켜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TV에서 갑자기 “당신의 회사는 탄소를 얼마나 배출하나요?”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기업의 탄소중립을 도와주겠다는 회사의 광고가 흘러나왔다. 늦은 밤 케이블도 아닌 공중파 방송에 이런 광고가? 잠이 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다음날 공항까지 가는 동안 지하철역, 기차역, 택시 등에서 제로탄소, 탄소중립, 탄소흡수 등등의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운 다양한 형태의 기업 광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가 아니기에 잘은 모르겠지만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과학자인 내 눈에는 희망의 메시지로 보였다. 많은 이들이 일본 경제는 지난 30년을 잃어버렸다고 하지만, 앞으로의 30년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탄소와 관련한 다양한 광고들은 결국 그들이 변하고 있다는 ‘시그널’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 시대의 흐름에 아주 딱 맞게 변하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다.

광고를 통해 나타난 민간 시장의 변화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앞으로 다가올 기후변화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민간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어쩌면 우리는 모두 공기, 물, 토양, 나무 등 지구시스템 내 기후요소들을 대부분 공공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너무 강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결국 국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리라 믿는 것이다. 미세먼지로 공기질이 나빠지면 미세먼지가 심각해질 때까지 내가 무엇을 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미세먼지가 심해질 때까지 국가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불만부터 제기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왜 국가는 빨리 해결 못하냐며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숨 쉬는 공기가 사유재면 어떨까? 아마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결국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탄소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자연 생태계의 탄소 흡수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국가뿐만이 아니라 민간의 적극적 참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유재로 인식하고 개인의 활동으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면 엄청난 속도의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기술 ‘기후테크’에 주목해야 한다.

기후테크 활성화 관건은 이익 창출

2022년 2월 국가간기후변화협의체 IPCC가 6차 보고서(AR6)를 발표한 후 유엔환경계획(UNEP)의 유엔환경총회에서는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기후위기에서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 쉽게 말해 기후기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강력히 대두되었다. 기후기술은 크게 3가지 분야로 구성되어 있다. ① 기후완화(mitigation)기술 ② 기후적응(adaptation)기술 그리고 ③ 기후완화와 적응을 함께 고려한 기술 등이다. 기후완화기술은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 배출을 직접 줄이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연소 시설의 굴뚝에서 대기로 나가는 탄소를 바로 포집 및 처리하는 기술,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여서 배출량을 줄이는 기술, 풍력과 태양광 같은 탄소배출이 없는 재생에너지를 개발하는 기술 등이다.

그리고 기후적응기술은 현재 직면하고 있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부터 피해를 최소화하는 기술이다. 온난화로 가뭄이 심해지고 있으므로 가뭄에 강한 농작물을 길러 식량위기를 막는 기술, 수자원 낭비를 막기 위해 물 사용을 줄일 수 있는 기술, 반대로 폭우가 빈번한 지역에는 홍수대응기술, 다가올 미래 기후변화를 정확히 예측해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기후변화 예측기술 등이다.

마지막으로 기후완화와 적응을 동시에 고려한 기술은 말 그대로 온실가스를 저감하면서 동시에 기후변화 피해를 최소화하는 기술이다. 아주 쉬운 예가 나무를 심는 것이다. 나대지에 나무를 심으면 탄소를 흡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땅속 물의 함량도 높이고 여름에 증산을 통해 주위 기온을 낮추어 폭염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단기적으로는 폭염에 대한 피해를 저감하고(적응기능), 장기적으로는 그 지역의 탄소 배출량 저감 또는 흡수량을 증진하는(완화기능)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기후산업이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

앞에서 본 예들처럼 기후테크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이다. 그리고 지금 중요한 점은 앞으로 기후테크가 산업의 한 분야로서 얼마나 잘 성장할 것인지다. 민간에서 기후테크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결국 이런 기술들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해야 할 것이다. 지구를 지키고 인류를 구원한다는 대의명분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그런데 다행히 지금 세상 분위기가 아주 좋다. 많은 국가의 다양한 투자기관들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기술과 그 기술의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다. 막대한 자본을 앞세워 전 세계 여기저기 돈을 뿌려대는 세계의 큰손들도 기존의 석탄 기반 산업이 아닌 저탄소 산업, 즉 기후위기를 일으키지 않는 산업 또는 기후위기로부터 우리를 구해줄 산업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돈으로 1경이 넘는 세계 1위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수장인 레리 핑크 회장은 2020년부터 지속해서 저탄소 시장 투자에 대해 언급해왔으며, 2022년 신년사에서는 기후위기에 대한 투자는 사회적이거나 이념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자본주의 그 자체라면서 환경과 같은 비재무적 가치를 강조했다. 다시 말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산업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라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2021년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COP26 이후 전 세계 45개국 약 450개 이상의 금융기관들이 넷제로를 위한 글래스고 연맹(GFANZ: Glasgow Financial Alliance for Net Zero)이라는 거대 금융연합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자산의 40%에 이르는 금융자본 약 130조달러(약 17경원)를 탄소배출이 많은 기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고 탄소중립을 촉진하는 산업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물론 이 거대한 금융연합에는 우리나라 주요 금융사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 정도면 누구라도 기후테크에 뛰어들 만한 충분히 좋은 환경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듯하다.

기술의 진보는 인류 역사의 중요한 변곡점을 만든다. 증기기관의 개발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여 생산성의 향상을 가져와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인류 문명을 태동시켰다. 지금 우리가 전자제품을 쓸 때 흔히 쓰는 단위인 와트, 이 와트의 근원인 제임스 와트가 산업혁명의 아버지이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실제 제임스 와트가 처음 증기기관을 개발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은 증기기관과 산업혁명을 얘기할 때 제임스 와트를 떠올리지만, 실제 증기기관을 개발한 사람은 세이버리다. 와트는 세이버리에서 뉴커먼으로 이어졌던 증기기관을 더 개량하여 세상의 변화까지 끌어낸 것이다. 그것도 단순히 의자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도중 끓는 주전자에서 나오는 증기를 보고 그것을 이용하겠다는 작은 출발이 결국 인류의 미래를 바꾼 것이다.

기후테크도 어쩌면 그럴지 모른다. 지금 당장 온전히 새로운 기술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가진 기존의 기술로 탄소 배출량을 줄이거나, 흡수를 증진하거나, 또는 우리가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기술로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좋은 출발일 것이다. 산업혁명의 불을 지핀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처럼 탄소중립혁명의 불을 지필 기후테크가 일본, 미국, 유럽이 아닌 한국에서 나오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정수종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원,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 연구원, 중국 남방과기대 교수를 거쳐 2018년부터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로 근무 중이다. 연구팀을 꾸려 기후변화의 원인과 영향을 밝히기 위한 관측 및 모델링 연구를 진행 중이며, Global Carbon Project, 유럽 항공우주국 기후 모니터링, NASA 온실가스 및 생태계 모니터링 등 국제 공동연구를 수행 중이다. 2018년부터 서울 남산타워 꼭대기에서 도시의 이산화탄소를 측정한 정보를 매일 공개하고 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