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의 기후리스크 시그널 무시하면 오너리스크

2024.04.15 20:34 입력 2024.04.15 20:35 수정

[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벚꽃의 기후리스크 시그널 무시하면 오너리스크

지금 우리 모두 기후리스크에 대응하지 않으면 벚꽃축제는 국사책 속에서나 볼 것이다
10년 후에 파인애플 축제를 하면 되겠지 위안으로 삼을 수 있겠지만, 벚꽃을 역사에 묻어두기에는 너무 아름답다
우리는 기후리스크를 진정성 있는 자세로 다루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짜 피해를 줄일 수 있게 말이다

얼마 전 한 지자체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광고가 큰 화제가 되었다. 개화 시기를 잘못 예측하는 바람에 지역 벚꽃축제에 벚꽃이 만개하지 않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하늘을 이길 수 없습니다”라는 흥미로운 광고를 게재해서다. 겨울 및 초봄 기온 상승으로 개화 시기가 빨라지고 있어서 많은 지자체가 아마 올해도 개화가 빨라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축제 날짜를 빠르게 잡은 것이 화근이었다. 그런데 올해 실제 벚꽃 개화가 기대만큼 빠르지 않아 지자체들은 벚꽃 없는 벚꽃축제를 할 수밖에 없는 슬픈 봄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문제는 단순히 꽃이 없는 축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곳을 찾은 수십만의 관광객, 준비를 진행한 지자체들의 경제적 손해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게다가 큰맘 먹고 벚꽃을 보기 위해 해당 지역을 방문했던 분들은 내년에 그곳을 다시 찾을지 의문이다. 단순히 개화 시기를 잘못 추정한 것이 경제적 문제를 넘어 정성스레 축제를 준비한 지자체의 지역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온난화에 대한 식물의 반응, 즉 기후변화로 인한 개화 시기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경제, 사회, 지역 문제로 커질 수 있는 사례가 된 것이다.

이번 사례에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식물의 개화 시기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벚나무는 정직하게 자신들이 원하는 조건에 맞추어 개화를 진행하였다. 사람이 잘못 추정한 것이다. 식물은 일반적으로 개화를 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차가운 날과 따뜻한 날을 경험하려 한다. 개화 이후 발생할 서리 피해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 일정량의 추위를 경험하고 그 이후 개화를 위해 본격적으로 열을 축적한다. 그리고 식물마다 반응하는 기온(기저기온)과 필요한 열량(생장도일)이 다르다. 예를 들어 벚꽃은 주로 섭씨 5도 이상의 기온에만 반응하여 열을 축적한다. 반면에 개나리는 섭씨 4도 이상의 기온에 반응한다. 같은 종이라도 식물의 서식지 특성, 나이, 토양 특성 등에 따라 기저기온과 열량이 조금 다를 수 있다. 벚꽃 같은 경우 매일 섭씨 5도 이상의 기온에 반응해 열을 축적하여 열량이 약 106 정도가 되면 꽃이 피게 된다. 즉 오늘 기온이 10도이면 5, 내일이 4도면 0(5도 이하면 축적이 없다, 무조건 0) 그다음 날이 15도면 10, 이렇게 되면 3일간 약 5+0+10 총 15만큼의 열량이 축적된 것이고, 이렇게 매일 5도 이상의 숫자가 더해져 총열량이 106이라는 숫자에 도달할 때쯤 꽃이 피는 것이다. 올해 같은 경우 실제 개화 시기 직전인 3월에 기온이 낮았기 때문에 필요한 열량이 벚나무의 턱밑까지 왔다가 계속 뒤로 밀려버린 것이다. 예를 들어 96 정도까지 아주 빠르게 도달하다가 마지막 10이 채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이다. 여기 숫자들은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판단해 주면 좋겠다, 이 숫자로 내년 벚꽃 개화 시기를 예측하면 안 된다!

기업들 기후리스크 대응 부적절

사실 벚꽃축제 해프닝은 피해를 당하신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아주 시의적절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일반인들이 기후 리스크라는 용어를 이해하기에 아주 좋은 본보기이기 때문이다. 요즘 언론에 기후 리스크란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아주 간단히 말하면 기후변화로 발생하는 직간접적인 위험을 말한다. 유럽과 미국 등 여러 국가에서는 기업들에 재무 공시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비재무 공시인 기후공시를 요구하기 시작해 매일 수십건의 관련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아마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를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이러한 비재무적 공시에 담겨 있는 기후 리스크는 크게 두 가지로, 전환 리스크와 물리적 리스크이다. 전환 리스크는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탄소 가격 변동 및 규제 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금융 손실을 의미하는데, 기업의 정확한 배출량 산정(스코프 1, 2, 3), 목표, 이행 과정 등을 포함하며 국내외의 정치, 경제, 사회 등의 영향을 받아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포함한다. 물리적 리스크는 폭염, 태풍, 홍수 등 이상기후의 증가나 장기적인 기후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기업 자산 피해, 경제적 비용 및 금융 손실을 의미한다. 이번 벚꽃 사례 같은 경우 기후변화의 장기적 변화 및 날씨의 변동성으로 인한 벚꽃 개화 예측 실패로 발생한 금융 손실, 즉 물리적 리스크이다.

지금 많은 분이 법정 의무 공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기후 리스크에 대해 고민한다. 특히 산업계에서는 국제 경제 질서의 변화에 따라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 국내 기업들의 대응을 보면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왜 국제사회에서 기후 리스크를 공시에 담으라고 한 것인지 이면에 숨어 있는 진짜 의미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 리스크가 담고 있는 두 가지 항목인 전환 리스크와 물리적 리스크는 재무 정보처럼 단순히 경제적 가치를 평가하라는 것이 아니다. 각각 기후변화의 원인물질(전환)과 기후변화의 결과반응(물리)에 해당하는 내용을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하라고 맡겨두면 안 되겠기에 공시라는 제도에 담아 버린 것이다. 즉 지금 지구라는 하나의 행성에 거주하는 모든 국가가 동참해서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의 공통된 규범이 필요하고 그것을 우리가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 수준에서만 파리협약을 지키고 배출량 저감을 위한 탄소중립, 기후변화 피해를 줄이기 위한 기후적응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도 이런 움직임에 동참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기업들이 어떻게 동참할 것이냐에 대한 방법이 기후 리스크 평가이다.

탄소배출 정보 대처 진정성 있어야

기후 리스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한다면 단순히 공시 보고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얼마 전 나와 미팅한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임원은 “아직 공시 유예기간이 있으니 좀 여유가 있어 천천히 대응하면 된다. 그리고 유명한 외국 컨설팅 회사에 맡기면 알아서 잘 만들어준다”고 태연하게 얘기했다. 표정으로 드러내진 못했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후 리스크 대응을 일반 업무 처리하듯 넘기면 결국 오너 리스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기업의 존폐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그게 기후변화의 위력이다. 이상기후에 따른 물리적 리스크의 판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도 높은 예측 정보이며 현지에 최적화된 지역 정보이다. 그런데 지금 대부분의 평가는 불확실성이 매우 큰 기후 예측 시나리오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자칫하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지나치게 불확실성이 큰 변수를 이용한 재무적 판단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공시 대응을 위한 보고서는 아주 멋지게 작성되겠지만 바로 올해 여름 집중호우로 입을 피해는 그 보고서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착시효과에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정확한 실시간 감시정보를 이용해서 현실에 맞는 예측 정보를 활용해야 “진짜” 피해를 줄이는 것이다.

전환 리스크도 마찬가지다 정확한 전환 리스크의 산정을 위해서는 기업의 모든 가치사슬의 탄소 배출량 산정이 기본이다. 그런데 탄소배출량이 무엇인가? 바로 그 기업의 경제력이다. 아직은 많은 국내 기업이 탄소와 경제의 탈동조화(우리가 가야 할 미래)를 이루어 내지 못했기에 대다수 기업의 탄소배출 정보는 그 기업의 경제력을 지시하는 지시자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정보를 많은 글로벌 경쟁사가 고객으로 있는 해외 컨설팅 회사에 맡기는 것이 좋은 방법인지 이제라도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물론 절대적으로 다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만큼 중요한 정보이기에 기업 스스로 진정성 있게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올해도 여느 해처럼 꽃이 피기 시작하자 많은 언론에서 앞으로도 계속 꽃이 빨리 피냐고 묻는 전화가 왔다. 내 대답은 항상 같다. 계속 빨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라질 것이라고. 지금 우리 모두 기후 리스크에 대응하지 않으면 벚꽃축제는 국사책 속에서나 볼 것이다. 뭐 10년 후에 파인애플 축제를 하면 되겠지 하며 위안으로 삼을 수 있겠지만, 벚꽃을 역사에 묻어 두기에는 너무 아름답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기후 리스크를 진정성 있는 자세로 다루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짜 피해를 줄일 수 있게 말이다.

■정수종

[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벚꽃의 기후리스크 시그널 무시하면 오너리스크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원,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 연구원, 중국 남방과기대 교수를 거쳐 2018년부터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로 근무 중이다. 연구팀을 꾸려 기후변화의 원인과 영향을 밝히기 위한 관측 및 모델링 연구를 진행 중이며, Global Carbon Project, 유럽 항공우주국 기후 모니터링, NASA 온실가스 및 생태계 모니터링 등 국제 공동연구를 수행 중이다. 2018년부터 서울 남산타워 꼭대기에서 도시의 이산화탄소를 측정한 정보를 매일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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