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은 도박이 아니다

2023.02.14 03:00 입력 2023.02.14 10:40 수정

쿠팡이츠 앱에서 알림이 떴다. 1시간 안에 배달 3개 하면 7500원을 더 준다고 한다. ‘못 먹어도 고!’다. 흥분되는 마음으로 앱 접속 후 두 번째 콜을 수행하러 음식점에 도착했는데, 사장님이 놀라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 했다. 주문 들어왔는지 몰랐단다. 사장님이 부랴부랴 음식을 만들었지만, 20분이 훌쩍 넘었고 손님이 콜을 취소해버렸다. 고스톱에서 ‘고박’을 쓴 것처럼 보너스는커녕, 1시간 동안 고작 6000원을 손에 쥐었다. 터덜터덜 가게를 나오는데 앱이 5000원짜리 콜을 수락하겠냐고 물었다. 배달료가 실시간으로 바뀌기 때문에 거절할지 수락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이 콜을 거절하면 7000원으로 오른 콜이 올 수도, 3500원으로 하락한 콜이 올 수도 있다. 60초의 제한 시간 동안 삶을 건 도박이 벌어진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필 존스는 저서 <노동자 없는 노동>에서 플랫폼 경제와 위탁계약, 건당 임금이 확대되면서 임금이 도박처럼 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웹툰 플랫폼은 작가에게 원고료 대신 최소개런티(MG)라는 이름의 제작비를 선금으로 주는데, 추후 작품 수익이 나지 않으면 몇 배로 갚아야 할 작가의 빚이 된다. 디지털 선대제다. 공연계에서는 관객의 선택에 따라 공연비가 팀별로 차등 정산되는 일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노동의 대가가 얼마인지 알 수 없는 일이 점점 늘고 있다.

최근 한국의 글값이 너무 저렴했다며 제대로 된 값을 쳐주겠다는 플랫폼이 나타나 논쟁이 벌어졌는데 플랫폼은 늘 산업정상화와 정당한 대가지급이라는 깃발을 흔들며 등장한다. 때마침 해당 플랫폼을 통해 고수익을 얻은 사람이 등장하고, 이것이 광고효과를 일으켜 수많은 노동자를 불러 모은다. 유튜브, 우버, 배달앱이 똑같은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시장을 장악한 다음에는 ‘노동의 가치’에 대한 고민은 사라지고 오롯이 플랫폼만의 수요, 공급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하는 가격만 남는다. 글이라는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자료조사하고 사유하고 집필하는 노동에 대한 보상을 얼마나 받을지는 알 수 없다. 플랫폼에서의 반응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플랫폼의 보상은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상품의 시장가치다. 혁신적 플랫폼이 등장해도 사회적 지위와 명성이 없는 대부분의 글 쓰는 노동자의 처우가 달라지지 않는 이유다. 일부 영향력 있는 사람이나 플랫폼으로부터 높은 별점을 받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일감과 부가 집중되는 문제는 플랫폼 산업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선택받지 못한 플랫폼 노동자들은 최저임금보다 못한 소득을 얻는데, 주변 동료를 보상가격을 떨어트리는 경쟁자이자 잉여인력으로 보게 된다. 물론 큰 소득을 얻을 때도 있다. 열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대박이야말로 임금의 도박적 성격을 강화한다. 노동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플랫폼에 중독된다.

글 노동의 정당한 대가는 화물의 안전운임제처럼 근로기준법 바깥 노동자의 적정소득 보장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근거도 있다. 최저임금법 5조 3항에는 도급노동의 최저임금을 별도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노동의 대가를 사람들의 관심에 따라 좌지우지 되도록 방치하면 안 된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고 외치지 못하더라도 ‘노동은 도박이 아니다’라고 외칠 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