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엔과 방사능 오염수

2023.03.29 03:00 입력 2023.03.29 03:01 수정

왜 그들은 일본에 돈을 돌려주지 않을까? 문재인 정부 시절에 외교부 고위 관료들을 만났을 때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물음이었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한다며 10억엔을 주었을 때, 그 돈을 직접 받은 당사자는 화해치유재단이었다. 그런데 재단은 2019년 1월21일자로 해산했다. 한·일 협의가 위안부 피해자의 뜻과 다르고 국제인권법과 어긋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외교부 관료들은 돈을 일본에 돌려주라는 할머니들의 요청을 거절했다. 그들은 화해치유재단 해산이라는 국내절차까지만 동의했을 뿐이었다. 돈을 일본에 돌려주는 본격적인 국제 관계에는 요지부동이었다.

송기호 변호사

송기호 변호사

10억엔은 어디에 있는가? 여전히 재단 계좌에 있다. 해산된 지 4년이 넘은 재단의 청산 관리인은 아직도 잔여 재산분신청을 여성가족부에 하지 않고 있다.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 해결 징표인 10억엔이 한국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일본의 의도는 관철되었다.

윤석열 정부의 이른바 강제동원 해법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관철된 일본의 구상이다.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했다고 집단적으로 굳게 믿고 있는 일본 우익들의 일관된 계획이다. 나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한국 대통령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위안부 합의를 이행하라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이번 한·일 정상회담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10억엔을 받은 후, 한·일관계는 역전되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역사정의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한국의 대통령 스스로 이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조차 그저 ‘과거’라고 말할 뿐이다.

10억엔 이후, 일본에 한국은 ‘국제법을 지키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한국 민주주의가 성취한 2018년 강제동원 위자료 대법원 판결에 대하여, 일본은 한국을 국제법을 위반하는 나라로 항상 낮추어 불렀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한국을 국제 수출통제 규범을 지키지 않는 나라로 취급했다. 일본은 이를 고쳐준다는 명목으로 한국에 수출규제를 하였다. 그러자 마침내 한국 대통령 스스로가 대법원 판결이 잘못이라고 말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이 먼저 수출통제규범을 정비했고, 일본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를 스스로 취하했다. 그리고 일본의 조치를 기다리게 되었다.

해제되지도 않은 일본 수출규제를 ‘해제’라고 하는 한국 대통령의 거짓말은 이제 새롭지 않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이제 한·일관계는 구조적으로 역전되었다. 일본에 한·일관계는, 국제법을 지킬 줄 아는 일본이 국제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한국을 고쳐주는 관계가 되었다. 이 틀은 일본의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출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일본은 자신의 계획대로라면 4월에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을 시작하고, 5월에 이를 국제원자력기구(IAEA), 주요 7개국 회의(G7)에서 국제적으로 승인을 받으려 한다. 5월에 일본을 찾겠다는 한국의 대통령으로부터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중단을 들어줄 일본 총리는 없다. 한국이 방사능 오염수의 가장 큰 이해관계 당사국이면서 방사능 오염수 방출에 이의를 제기하면 일본은 국제규범에 맞게 행동하라고 한국에 요구할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환경정의를 저버린 오염수 방출 국가인 일본이 오히려 한국을 가르치려 들 것이다.

일본과 미국은 전쟁을 통해 성장한 나라들이다. 일본은 미국에 철저하게 항복을 했지만 미국이 쇠퇴하면 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려고 할 것이다. 왜 일본은 끊임없이 독도를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는가? 일본이 독도를 강점한 1905년 러일전쟁 시기 일본의 아시아 패권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본 우익의 미래 구상에 한국은 ‘동맹’을 하려는 나라가 아니다. 지금 한국의 대통령은 이 모순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능력이 없다. 그는 한국이 미국에 지나치게 가깝게 갈 경우 한국이 일본의 밑으로 들어갈 위험을 모른다. 누군가 그의 머리에 심어 놓은 단어 ‘북한 핵’이 그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재임 중 북한 핵 능력은 더 강화되었고 핵위협은 더 악화되었다. 그의 이른바 ‘핵무기 평화론’이 오히려 핵전쟁의 위험을 키우고 있다.

다시 외교부에 요구한다. 역사정의야말로 한·일관계의 초석이다. 안중근 의사의 표현을 빌리면 ‘동양평화’의 토대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로 받은 돈 10억엔을 돌려주어야 한다. 대일관계에서 강제동원 문제가 아니라 위안부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국력에 걸맞게 역사정의를 세우고 국제평화에 이바지해야 한다. 10억엔을 돌려주고 일본을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제소할 준비를 착실하게 진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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