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연금개혁 새 흐름

공적연금은 인류가 만들어 낸 사회연대의 멋진 작품이다. 서구에서 노인들은 은퇴 후 생활비를 젊은 세대의 재정에 의존하고, 또한 지금 청년들은 나중에 자신도 후세대의 부양으로 노후를 보낼 거라고 믿는다. 이처럼 공적연금은 인류의 노후 역사에서 가족 부양을 사회적 부양으로 전환한 위대한 제도이다. 그래서 공적연금은 노동시장의 불평등 구조에서 개인적으로 불안한 노후를 사회가 책임지자는 진보의 가치와 부합한다. 복지국가 형성에서 공적연금은 복지동맹의 핵심 의제로 여겨질 만큼 진보가 자부심을 가질 만한 제도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우리나라에서도 공적연금에 대한 진보의 관심은 무척 높다. 양 노총을 포함해 진보적 단체들은 가입자를 대표하여 활동해 왔으며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이란 연대기구까지 결성해 의견을 내고 있다. 연금개혁은 어느 사회정책보다도 사회적 합의과정을 중시하므로 가입자와 사회단체의 역할은 계속 클 것이다.

그런데 근래 진보 안에서 연금개혁을 두고 두 시각이 논쟁하고 있다. 작년 대선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연금개혁 공약을 내놓자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참여연대, 민주노총, 한국노총은 일제히 이 공약이 국민연금의 재정안정에 치우쳐 공적연금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반면 역시 진보적 단체로 활동하는 청년유니온,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현세대의 책임을 강화해 세대 간 형평을 도모하는 공약이라고 지지 논평을 발표하며 전면적인 시민사회 토론을 제안했다.

올해 들어서는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작업과 국회 연금특위 활동이 진행되면서 진보 내 논쟁도 가열되는 양상이다. 기존 가입자 단체들과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연금개혁 논의과정마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4월3일에는 이들과 다른 목소리를 내기 위해 청년, 프리랜서, 노동옹호단체 등이 참여하는 새로운 연금개혁 연대조직으로 ‘미래세대·일하는 시민의 연금유니온’이 출범한다.

무엇이 진보 내 의견을 갈리게 하는가? 결국 보장성과 지속 가능성이라는 연금개혁의 두 과제를 달성하는 방향에 대한 차이이다. 기존 입장은 공적연금에서 노후소득 보장의 핵심 방안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이라고 강조한다. 국민연금이야말로 시민 다수가 가입한 공적연금이기에 노후소득 보장 강화를 위해서는 소득대체율 인상이 필요하고 미래 재정은 당시 세대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반면 새 흐름은 국민연금은 노동시장 격차를 반영하기에 소득대체율 인상이 노후 빈곤 대응에 효과적이지 않으며 미래세대 부담을 더욱 가중시킨다고 우려한다. 대신 노후소득 보장은 기초연금·국민연금·퇴직연금 등 의무연금을 조합해 계층별로 적정 급여를 설계해야 하며, 특히 노동시장 주변부에 있는 연금약자의 보장성을 중시한다.

주목할 점은 현 단계 공적연금이 추구할 ‘연대’에 대한 다른 시각이다. 우선 ‘세대 간 연대’에서, 기존 입장은 공적연금은 현세대가 후세대에 의존하는 제도이며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공적연금 계약의 기본축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새 흐름은 노년부양에서 변화된 시대 지형을 직시하자고 말한다. 20세기 중반에는 미래도 갈수록 노년부양 환경이 우호적이어서 후세대가 공적연금의 추가 부담을 감당하는 세대 간 계약이 가능했지만, 21세기에는 노동시장 불안정과 빠른 저출생·고령화로 갈수록 노년부양이 무거워지는데 국민연금의 적자 부담까지 후세대로 넘기는 건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당시에 지출 총량이 결정되는 부과방식 재정의 의료비, 기초연금 등은 후세대에 의존하더라도 현세대가 사실상 기여와 급여 수준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가진 국민연금에서조차 천문학적인 재정 불균형을 방치하는 건 곤란하다는 자성이다.

보장성에서도 새 흐름은 ‘연금약자 연대’를 강조한다. 국민연금 보장성은 추가 보험료율 인상이 수반되는 명목 소득대체율 인상 대신 여성, 실업자, 군복무자, 저임금노동자, 도시지역가입자 등에게 연금크레딧 혹은 보험료를 지원해 가입기간을 늘려주는 실질 소득대체율 강화가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나아가 시민의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선 국민연금에 한정된 시야를 넘어서자고 제안한다. 국민연금, 기초연금, 퇴직연금 등 ‘의무연금 삼총사’를 조합해 소득 수준에 따라 적정 급여를 보장하는 ‘계층별 다층연금체계’의 구축이다.

연금개혁 논의가 오랫동안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어디서든 출구가 필요하며, 최근 진보 내 논쟁도 그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는 연금개혁에 활력을 부여하며 진보의 노후소득 보장 전략을 점검하는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치열하게 생산적으로 토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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