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의 황당함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수익률이다. 지난달 정부는 국민연금 재정 추계 결과를 발표했다. 국민연금 기금고갈 시점이 과거 추계 때보다 2년 앞당겨졌다. 암울한 전망이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도 곁들였다. 기금수익률을 1%포인트 높이면 고갈 시점을 5년 늦출 수 있는데, 이는 보험료율을 2%포인트 높이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라는 것이었다. 언론은 이를 반기면서, 국민연금 수익률은 외국 연기금보다 낮다고 질책했다. 지난 10년간 캐나다 연금 수익률은 10%인데, 국민연금은 4.7%로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기사가 대표적이다.
우리처럼 대규모 연기금 보유 국가 중 캐나다는 수익률이 최고인 나라다. 1등하고만 비교하는 것은 썩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여러 국가와 비교하면 국민연금의 성적은 중간 정도이다.
어쨌든 국민연금 수익률이 해외 평균보다 높지는 않으니, 좀 더 높이라고 주문할 수는 있다. 그런데 내막을 들여다보면, 국민연금 수익률이 캐나다보다 낮은 이유가 투자 실력이 부족해서는 아니다. 또한, 법규를 바꿔서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한, 월스트리트 최고 전문가를 데려다 앉혀도 1%포인트 높이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공공은 민간보다 비효율적이라고 한다. 경제학 교과서는 정부와 시장이 둘 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시장에 맡겨야 효율성을 높인다고 가르친다. 시장 중에서 가장 이윤에 민감하고 그래서 효율성을 제일 중시하는 곳이 금융이다. 그렇다면 자금 운용은 정부 대신 민간에 맡겨야 수익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퇴직연금 수익 국민연금보다 참담
그런데 실상은 정반대이다. 연금 운용이 그렇다. 국민연금 수익률이 국제 비교로는 시원찮다지만 그래도 2021년까지 5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7%가 넘는다. 같은 기간 퇴직연금 수익률은 2% 미만이다. 퇴직연금 수익률이 국민연금 수익률의 3분의 1에도 훨씬 못 미친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신문(월스트리트 저널)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가축분뇨 냄새가 진동하는 농촌에 있는 탓에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기가 어렵다고 조롱했고 국내에서도 많은 이들이 동조하면서 기금운용본부를 서울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어찌 대한민국 금융의 메카인 서울 여의도에 집결한 유수의 금융기관들이 운용하는 퇴직연금 수익률은 이다지도 초라할까?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9%이다. 퇴직연금 보험료율은 8.3%로 이에 필적한다. 게다가 국민연금에는 소득 상한이 있어서 월 590만원 이상은 모두 590만원을 기준으로 9%를 매긴다. 그래서 월 급여가 900만원인 사람의 실제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5.9%로 퇴직연금보다 훨씬 낮다. 월급쟁이들은 노후 대비를 위해 국민연금에 필적하는 혹은 그보다 더 많은 금액을 퇴직연금에 내고 있다. 그런데도 수익률이 중간 정도인 국민연금한테는 지금보다 1%포인트 높이라고 준엄하게 꾸짖으면서, 왜 훨씬 참담한 퇴직연금에 대해서는 잠잠할까.
국민연금은 공공이니 당당하게 국민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다그칠 수 있지만, 퇴직연금은 민간이 운용하는 것이니 간섭하면 안 된다고? 퇴직연금(퇴직금)은 법정의무이다. 고용주는 무조건 적립해야 하며, 근로자는 퇴직연금 적립 대신 급여에 얹어 달라고 할 수 없다. 강제로 보험료를 내게 했다면, 나중에 받는 급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챙겨야 마땅하다. 외국의 퇴직연금은 대부분 노사 협약에 따른다. 법으로 강제한 것이 아님에도 정부가 개입해서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이런저런 주문을 한다. 우리는 퇴직연금 운용사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한다.
지난 5년간 우리 퇴직연금 수익률은 2%에도 미달했지만, 외국의 퇴직연금은 다르다. 흔히 우리가 비교 대상으로 삼는 선진국(미국·영국·호주 등)의 퇴직연금 수익률은 7%가 훨씬 넘는다. 퇴직연금 운용사도 할 말은 있다. 퇴직연금에는 원리금보장형과 실적배당형이 있다. 전자는 확정된 원리금을 받으므로 안전하나 수익이 박하다. 정기예금과 마찬가지다. 후자는 운용 실적에 따라 받는 금액이 달라지지만, 평균 수익은 원리금보장형보다 높다. 굳이 따지면 국민연금 기금운용은 실적배당형에 해당한다. 그런데 퇴직연금 기금운용의 85%는 원리금보장형이다. 원리금보장형이 압도적이라서 수익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연금으로서의 기능도 전혀 못해
일리가 없지는 않지만 궁색하다.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실적배당형만으로 비교해도 국민연금보다 수익률이 낮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다른 나라 퇴직연금은 대부분 실적배당형이기 때문이다.
남들은 실적배당형으로 높은 수익률을 누리는데 왜 우리만 원리금보장형으로 형편없는 수익률을 감수할까. 대한민국의 주식시장 그리고 그보다 훨씬 위험한 파생상품 시장의 개인 참여율은 세계에서 수위를 다툰다. 그러니 대한민국 국민이 다른 나라 국민보다 위험을 회피하고 안전을 선호하기 때문은 절대 아니겠다. 그렇다면 왜?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를 대비하는 최후의 보루다. 그래서 원금을 많이 불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까먹지 않는 게 더욱 중요하다. 그런 국민연금도 정기예금처럼 운용하지는 않는다. 실적배당형처럼 운영해서 수익률을 높이되,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의 배분으로 중장기적 안전성도 추구한다. 해외 퇴직연금도 마찬가지다.
국민연금도 하고, 해외 퇴직연금도 하는데 왜 대한민국의 퇴직연금만 못할까. 퇴직연금을 강제하면서, 운용은 민간에 맡긴 채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정부의 직무 유기다. 국민연금 수익률이 중간은 가듯이, 퇴직연금 수익률도 중간은 가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퇴직연금이 노후 대비의 일익을 담당하지 않겠는가.
여기까지 읽은 독자 중에는, 웬 자다가 봉창 뚜드리는 소리냐고 혀를 차는 분도 있겠다.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다. “대체 노후에 연금으로 매달 수령을 하는 사람이 누가 있담, 중간에 목돈이 필요하면 빼서 쓰고, 남은 돈은 퇴직할 때 일시금으로 받아서 그동안 진 빚 갚으면 다 없어지는 건데….”
이름이 무색하게 연금으로서의 기능을 전혀 못한다는 것, 이게 낮은 수익률과 함께 퇴직연금의 또 하나의 황당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