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공기관 통폐합, 혁신인가 퇴보인가

2022.09.08 03:00 입력 2022.09.08 03:02 수정
신민선 서울여대 교수·(사)한국평생교육총연합회 회장

윤석열 정부가 공공기관 운영 혁신을 위한 닻을 올렸다. 7월29일 기획재정부가 ‘새 정부 공공기관 혁신가이드라인’을 내놓은 데 이어 행정안전부도 9월4일 ‘새 정부 지방 공공기관 혁신 지침’을 공개했다. 방만한 공공기관 운영을 개혁하겠다는 것을 구체화한 것이다. 새 정부가 내세운 혁신 방향은 ‘생산성·효율성 제고’로 유사·중복 기관을 통폐합하고 그 기능을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것이다. 동일 사업 분야에 유사한 공공기관이 존재한다면 혁신 계획에 따라 정리 대상이다.

신민선 서울여대 교수·(사)한국평생교육총연합회 회장

신민선 서울여대 교수·(사)한국평생교육총연합회 회장

유사 분야 기능을 통합해 효율성을 높이고 기관 간 기능 조정 및 협업을 고도화하며 공공부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새 정부의 정책 방향에 깊이 공감한다. 윤석열 정부는 과거 정부와 달리 공공기관의 혁신에 성공하기를 기대한다. 그간 공공기관 혁신의 의도는 항상 좋았지만 과거 정부가 기대했던 성과를 내지 못했던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정책을 실현해가는 과정에서 민주적 절차에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책을 결정하고 밀어붙이는 속도전으로 단기간 성과에 몰입한다. 정책 실현 과정에서 거쳐야 할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

둘째, 숙의 과정 없는 선 집행, 후 분석의 방식이다. 정책의 화려한 레토릭 앞에 조밀한 숙의와 분석은 뒷전이다. 시민은 정책의 종속 변수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퇴행이고 예산의 낭비이다.

이러한 문제가 새 정부에서도 반복될 것으로 우려되는 사태가 최근 발생했다. 지난 8월29일 대구광역시는 (재)대구평생학습진흥원을 해산하였다. 홍준표 대구시장의 공공기관 통폐합, 조직 개편을 위한 구조개혁에 따른 것이다. 대구평생학습진흥원은 대구광역시의 사회서비스원, 청소년지원재단, 여성가족재단 등 산하 출연기관과 함께 통폐합된다. 대구시가 7월29일 ‘대구광역시 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의 설립 및 운영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으니 한 달 만에 통폐합을 단행한 것이다.

대구광역시의 4개 출연기관의 통폐합은 고강도 재정혁신을 이룬다는 시의 취지 설명에도 불구하고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첫째, 절차의 적법성이다. 산하기관 개혁을 위한 공공기관 통합 과정에서 전문 유관 단체나 시민의 여론 수렴을 통한 실질적인 협의나 논의가 무시되었다.

둘째, 통합의 적법성이다. 4개 기관의 통폐합을 위한 조례를 제정할 시에는 이미 통폐합 이후 예견되는 기관 성장 가능성에 관한 엄밀한 분석 자료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독자적 기관 운영에 비해 통폐합되었을 경우 시민의 편익이 증가되고 기관의 전문성을 유지, 상승시킬 수 있다는 것을 평가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통폐합 계획의 적정성과 그 성과를 평가할 분석 자료가 없다.

셋째, 기관의 이질성이다. 성급하게 추진된 통폐합은 기계적인 결합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이질적인 기관들을 한 그릇에 담는다고 저절로 화학적인 결합이 되지 않는다. 4개 기관의 화학적 결합에 대한 비전도 없는 통폐합은 시민 행복이나 삶의 질 향상과 거리가 있다.

(재)대구평생학습진흥원은 ‘평생교육법’에 명시된 광역 단위의 ‘시도평생교육진흥원’이다. 이 기관의 해산과 통폐합으로 다른 시·도에 비해 대구 시민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데에 득보다 실이 클 것이다. 이번 정부가 고강도 공공기관 개혁에 성공하길 바란다. 그러나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갖고 오지 않았던 과거 정부의 경험을 들여다볼 것을 부탁한다. 선한 의도라도 민주적 절차 없이 근거 없는 자신감만으로 개혁을 추진하면 그 의도는 이미 퇴색한 것이다. 이번 (재)대구평생학습진흥원의 해산 과정이 향후 공공기관 통폐합의 반면교사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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