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 개혁 연속 기고 (3)

비례대표제 개혁 어떻게 해야 하나

2023.06.07 09:45
한성민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경향신문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선거제도개혁운동본부 전문가들의 기고를 5회에 걸쳐 릴레이 게재한다. 선거제 개혁 방향, 지역구 의원 선출 방식과 규모, 비례대표 의원 선출 방식과 규모, 의원 정수 확대 논쟁, 후보 공천 방식 등 핵심 쟁점을 다룬다.

한성민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경실련 제공

한성민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경실련 제공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논의를 할 때 일반적으로, 대표성, 책임성, 비례성의 원칙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원칙에서 비추어 보았을 때, 한국에서 혼합형 선거제도가 유지되는 이유는 책임성을 보장할 수 있는 소선거구 다수대표제와 기술적 대표성과 비례성(득표율과 의석율의 일치)을 보장할 수 있는 비례대표제의 결합을 통해서 이 세 가지 원칙 모두를 어느 정도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2004년 1인 2표제의 도입은 비례대표제 후보자에 대한 독립적인 투표를 보장해 비례성을 증진시키고 소수정당의 원내진입을 보장해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반영하는 기술적 대표성을 증진하는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제도 도입 이후에도 의석수와 정당 득표율 사이의 불비례성 문제와 특정 성별과 직업 출신이 과다 대표되고 있다는 대표성의 한계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지만, 위성정당의 출현으로 불비례성은 민주화 이후 선거 중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으며 당시 제 1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정당득표율 기준(더불어시민당) 33.35% 득표율로 전체 의석의 60%에 해당하는180석의 의석을 획득하는 등 거대양당이 95%에 가까운 의석을 독점하는 모순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이처럼 현행 제도의 틀 속에서 지속되고 있는 거대 양당의 독과점 정치 구조는 국민 다수가 선거제도 개혁에 찬성하고, 선거제도 개혁의 목소리가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이유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선거제도 개혁의 방향은 무엇일까? 2023년 5월 500인 회의 공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다수는 소선거구 다수대표제에 대한 지지와 동시에 비례성의 증진을 주문하고 있다. 이는 현행 혼합형 선거제도를 유지하면서 비례성의 문제를 보완하는 것이 국민이 원하는 개혁의 방향이며 선거제도 개혁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비례성을 증진시킬 수 있을까? 비례성을 증진시킬 수 있는 제도적 해결책은 크게 보면 두 가지이다. 하나는 연동형 방식의 비례대표제 도입을 통해서 득표와 의석 비중의 불비례성을 개선시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비례대표 의석의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다 2020년 총선에서 시도된 첫 번째의 실험은 위성정당 출현으로 실패했고, 동일한 제도를 유지할 경우 ‘위성정당 방지법’을 통한 보완입법이 필요하다. 두 번째 방법은 누가 보더라도 이해하기 쉬운 비례성 증진 방법이며, 기술적 대표성의 측면에서도 할당제에 대한 적용이 더 용이하기 때문에 그 효과가 크다. 그러나, 비례대표 의석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선거제도 개혁이 이루어진 적은 없다. 오히려 비례대표 의석 비중은 17대 56석 (18.7%) 이후 지역구 의석 확보라는 명분으로 끊임 없이 줄어들었다. 이는, 정치인들 스스로 비례대표 의석 비중 확대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에 나서지 않았고, 국민 여론 역시도 그 동안 비례대표 의석 비중 확대에 부정적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정치권이 비례제 확대를 명분으로 한 선거제도 개혁을 추진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그러나 지난 5월의 공론조사 결과는 그간 국민들이 비례대표제의 확대에 부정적이라는 의구심이 잘못되었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공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례대표제 의원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숙의 이전에는 27%였다가 숙의 이후에는 70%로 늘어났다. 이 사실은 국민들에게 적절한 정보가 주어지고 이를 통해 제도에 대한 이해성이 높아질 경우에는 국민들은 비례성을 직접적으로 늘릴 수 있는 제도 개혁에 부정적이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심지어 공론조사 결과는 3분의 1 정도는 비례대표 확대를 전제로 한 의원정수의 확대에도 동의하는 결과를 보여준다. 그 동안 국민들 사이에서 비례대표제 의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높았던 주된 이유는 비례대표제 제도 자체에 대한 문제보다는 정당들이 보여왔던 공천 과정의 불투명성과 잘못된 공천을 선거에서 심판할 수 없는 제도적 문제 때문이었다. 이는 정당 공천 과정의 개혁과 준개방형, 혹은 개방형 선거제도를 통해서 국민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

끝으로 최근 일부 정치권에서는 주장하고 있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싶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통해서, 지역 대표성이 늘어나고, 일부 정당의 지역 패권이 약화될 수는 있으나, 현행 47석의 비례대표제를 권역으로 나눌 경우에는 비례성의 약화가 불가피하고, 이는 선거제도 개혁의 본질적 목표에 역행하는 일이다. 이미 지역구 소선거구 제도를 통해서 지역의 대표성이 어느 정도 보장받고 있는 상황에서 비례성보다 지역 대표성의 문제가 더 중요한지 의문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대다수의 선진국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독일)를 사용하거나 비례대표제(스웨덴, 덴마크, 스페인 등)만을 선거제도로 사용하기 때문에 비례성의 확보가 이미 전제된 후 지역대표성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진정성 있게 주장하고 싶다면 지역 대표성과 비례성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인 전면적 비례대표제 혹은 비례대표제 비중의 확대를 먼저 추진할 것을 권고한다.

-한성민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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