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공포 VS 권력의 공포

2013.09.03 21:28
남재일 | 경북대 교수·신문방송학

사람들이 정치적 행동에 나서는 이유는 무얼까? 정치의 보편적 동인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정치철학의 오랜 과제다. 하지만 그 누구도 모두가 납득할 만한 명쾌한 이유를 제시하진 못했다. 정치를 빈자와 부자의 물질적 소유를 둘러싼 투쟁으로 정식화하는 좌파는 빈자가 부자정당을 지지하는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보편적인 자유와 인권을 위해 정치적 행동에 나선다는 자유주의자의 진단 역시 인민들이 타자의 자유와 인권을 유린하는데 앞장선 파시즘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들은 정치적 행동의 주체인 ‘계급’ 혹은 ‘인민’을 이성적이고 통일된 집단적 정체성으로 가정했다. 하지만 역사적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스피노자는 좀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정치의 주체를 추상적인 인민이나 계급이 아닌, 현실 속의 대중에서 찾았다. 그에 따르면, ‘대중이 권력에 대해 갖는 공포’와 ‘권력이 대중에 대해 갖는 공포’가 정치의 근원적 동력이다. 정치는 다름 아닌 대중과 통치자가 각각 공포를 완화하기 위한 행동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런 접근방식은 물질적 소유나 보편적 가치의 추구로 설명되지 않는 심리적 차원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 이 시각으로 보면, 민주주의는 고상한 가치를 추구한 결과가 아니라, 대중의 공포와 권력의 공포가 타협을 통해 절묘한 균형점을 이룬 결과이다. 다른 정치 행태도 같은 방식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권력에 대한 대중의 공포가 지나치면 권위주의 통치행태가, 그 반대는 포퓰리즘적 대중운동이 발생하게 된다.

[정동칼럼]대중의 공포 VS 권력의 공포

한국은 권력에 대한 대중의 공포가 지배적인 정치적 동력으로 작용해 왔다. 전쟁체험과 분단이라는 특수한 사정 때문에 공포의 대상이 되는 권력도 두 개의 형태로 출몰했다. 첫째는 전쟁이라는 전면적 폭력으로 대중을 위협하는 북한이고, 둘째는 반공을 특권화한 권위주의 정권이다. 평균적인 대중은 “북한이 또다시 전쟁을 일으켜 나를 해치지 않을까”와 “경찰이 나를 빨갱이로 알고 잡아가지 않을까”란 두 개의 공포를 동시에 가져야 했다. 전자는 공공연하게 가져야 하는 공포였고, 후자는 혼자서 감내해야 하는 공포였다. 이 상황에서 공포를 완화하기 위한 대중의 정치적 행동이 어디를 향할지는 자명하다. 전자의 공포를 스스로 내면화해서 후자의 공포를 잊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대중이 권력에 대해 갖는 공포는 반공이데올로기에 의지한 권위주의 통제를 강화하는 불온한 힘으로 작용했다.

지금은 반대할 공산당이 멸종되고, 북한의 현실적 위협도 현저히 완화됐다. 그럼에도 ‘종북’이란 언명 자체가 현실정치에서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다. ‘종북’사건이 터지면 대중은 합리적 의사소통을 중단하고 자기검열의 강박에 빠진다. ‘후자의 공포’가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두려움의 내용이 ‘잡아가지 않을까’에서 ‘손해 보지 않을까’로 바뀌었을 뿐이다. 야당이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 ‘선 긋기’부터 하고 대응하는 것도 ‘권력에 대한 대중의 공포’가 되살아나는 것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당이 이럴진대, 개인 어느 누가 ‘종북’이란 딱지가 불러내는 공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지금 국정원과 관련된 두 개의 사건이 있다.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의 심리가 진행되는 가운데 통합진보당 내란 음모사건이 터졌다. 언론에 보도된 녹취록의 내용이 진실이라면, 통합진보당은 ‘종북’ 낙인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당사자들은 왜곡과 조작이라고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진실 여부는 나중에 가려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 분명히 짚어야 할 것은 두 사건이 별개라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당사자가 유죄 판결을 받는다 하더라도, 이 사실이 민주주의를 농락한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논리적으로 정당화해주지는 못한다. 반공(反共)은 반민주(反民主)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의 국제정세는 반공보다 민주주의가 더 우선적 가치가 되어야 할 시대가 아닌가.

‘대중에 대한 권력의 공포’와 ‘권력에 대한 대중의 공포’는 상대적이다. ‘권력에 대한 대중의 공포’가 깊으면 권력은 대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성숙하려면 대중의 공포는 줄어야 하고, 권력의 공포는 늘어야 한다. ‘대중에 대한 권력의 공포’는 시민의식으로 무장되고 권리주장에 익숙한 다수 시민의 존재에서 비롯된다. 통합진보당 사건에 대한 시민사회의 주목과 시민공론장의 각별한 분별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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