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사이에서 선택할 필요가 없다

2014.07.03 21:13
이근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싱크탱크 미래지 원장

[정동칼럼]미·중 사이에서 선택할 필요가 없다

한국, 미국, 중국, 일본이 그리는 미래 구상은 서로 너무나 다를까? 서로 자신들의 미래 구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무력 사용을 불사할까? 그래서 흔히 동북아시아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전쟁 가능성이 상존하고 불안한 지역인가?

현재와 미래의 동북아시아를 진단하고, 그에 부응하는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 우리는 위의 질문에 반드시 답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답에 따라 우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선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향후 상당 기간, 한국 외교안보 정책결정권자들은 미·중 간에 한국이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로 골머리를 앓을 것이다.

지금의 동북아시아를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눈으로 보면 매우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라 하면 자본주의 근대화가 먼저 시작된 서구 국가들이 전근대적 국가들을 자신들의 시장에 무력으로 포획, 접합하던 시절이다. 그 과정에서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이중 무력도발이 있었는데, 하나는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라틴 아메리카 등지의 전근대적 국가들을 자신들의 국내시장에 강제적으로 접합하는, 소위 식민지화를 위한 무력도발이고, 다른 하나는 식민지 획득 경쟁에서 발생한 제국주의 서구 근대국가들 간의 무력충돌이다. 동북아시아에서는 근대화에 뒤처진 중국이 무력으로 갈기갈기 찢기면서 서구 제국주의 국가의 희생물이 되었고, 일본은 다른 아시아의 전근대 국가들과 달리 재빠르게 자본주의 근대국가 체제를 정비하여 한국, 동남아시아, 중국의 만주 일대를 무력으로 식민지화하였다. 당시의 상황은 자본주의 근대국가 체제를 빨리 정비하여 강해지면 먹고, 그렇지 않으면 뺏기고, 먹히는 상황이었다. 이른바 현실주의 국제정치에서 말하는 군사력에 의한 권력정치가 횡행하던 시기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19세기 제국주의 시대가 다시 한번 21세기 동북아시아에서 재현할까?

현재 동북아시아에서는 강력한 중국이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미국은 부상하는 중국에 대응하여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천명하면서 정규군을 보유하려는 일본의 정상국가화 노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얼마 전 일본 아베 정부의 집단자위권 허용이라는 각의 결정에 미국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중국에 대응하여 일본과 함께 재균형을 하겠다는 계산에 다름이 없다. 이러한 움직임으로만 보면 이곳 동북아시아는 강력한 중국과 이에 대응하는 미국·일본 간의 대결구도다. 그래서 한국은 중국과 미국·일본 사이에서 한쪽을 선택해야만 한다는 얘기들이 자꾸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과연 양쪽에서 한쪽을 선택해야만 하는가?

다시 맨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 보자. 미국과 중국과 일본의 미래구상은 과거 제국주의로 돌아가는 것일까? 아니면 그보다 더 과거인 전근대 중화질서로 돌아가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들의 구상은 기존에 그들이 그 안에서 부유하고 강해질 수 있었던 현재의 국제질서를 대안이 없는 한 보수,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이 질서의 대안에 대해서 이미 과거에 많은 실험을 하였고 또 실패하였다.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천재도 나오지 않고 있다. 즉 공통분모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래 구상을 위해 무력사용을 할 가능성은 이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세력과 움직임에 대해서일 뿐, 대량살상능력을 가진 서로 간에 자살공격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세계화로 인해 거의 모든 국가가 자본주의 근대화를 이룬 현재, 그리고 다자주의를 기반으로 한 세계시장이 열려 있는 현재, 과거 제국주의 시대와 같은 땅따먹기 무력충돌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한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할 이유가 없다. 다 함께 공동의 미래 구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택하면 된다.

중국이 이 질서로 들어온 역사가 짧지만 중국 역시 이 질서 속에서 강해졌고 또 다른 질서라는 대안이 없다. 따라서 우리의 대중정책은 중국이 역방향으로 역진하지 않도록 국내외적인 안정을 이루게 도와주는 것이다. 물론 군사력은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여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공통의 이익은 무력 사용이 아니라 중국의 안정적인 발전에 의해서 달성된다. 중국의 안정적인 발전이 과거 전근대 질서인 중화 질서로 귀결된다는 상상력도 너무 나간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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