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대통령’

2014.07.01 20:37 입력 2014.07.02 20:11 수정
김정인 | 춘천교대 교수·한국사

[정동칼럼]‘관심 대통령’

문창극 총리 지명자 논란에 이어 헌정사상 초유인 총리 유임이라는 ‘인사 참사’가 일어났다. 이 비극적 사태의 도발자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끝 모를 국정 공백을 우려하며 헤아려보니, 박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3년 반이나 남았다. 이 세월 동안 국민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관심 대통령’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관심 대통령’을 예의주시할 때, 관심 포인트는 어디에 두어야 할까. 아시아에서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오른 여성 정치인의 행보와 비교하며 짚어보자.

아시아에서 박 대통령에 앞서 최고 권력자가 된 여성은 9명이다. 모두 최고 권력자 혹은 정치 지도자의 부인이거나 딸이었다. 박 대통령 역시 대통령의 딸이다. 이들은 혈통과 가문을 배경으로 최고 권력을 거머쥐었다. 권력의 우산 아래서 안온한 삶을 살던 그녀들을 정치판으로 끌어낸 건 남편 혹은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스리랑카의 반다라나이케는 총리인 남편이 암살당한 후 정치에 뛰어들어 세계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었다.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와 인도네시아의 메가와티는 대통령인 아버지가 쿠데타로 축출되고 죽음을 맞은 후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박 대통령은 부모 모두 총탄에 쓰러진 대통령의 딸로서 정치에 뛰어들어 대권에 도전했다. 영국의 대처나 독일의 메르켈과 같은 자수성가형 여성 권력자가 아시아엔 아직 없다.

아시아의 여성 권력자 중 ‘부인이거나 딸’이란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성공한 지도자로 기억되는 이는 별로 없다. 권력자로서 그들은 구중궁궐에서 극진히 대접받으며 제한적인 대인관계 속에 살아온 까닭에 인적네트워크가 허약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었다. 측근 정치가 협소한 인재풀을 대신했다. 반다라나이케는 가문족벌정치를 했다. 베나지르 부토는 비서관에게 모든 정책결정을 맡겼고 친·인척을 주요 관직에 앉혔다. 허약한 인적네트워크가 낳은 또 하나의 비극은 최고 권력자의 미움만 사지 않으면 ‘돌려막기’ 인사 덕에 무능력해도 고위직을 연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고 권력자 인맥이 전무한 궁 ‘밖’에선 나름 소통령으로 권력을 행세할 수 있으니 베나지르 부토 시절처럼 아첨꾼이 넘쳐나는 무능한 정부가 되기 쉽다. 2014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사 참사’와 무능한 정부 논란이 계속될 지가 첫번째 관심 포인트다.

두번째 관심 포인트는 가족을 비롯한 친·인척과 측근의 비리 발생 여부다. 아시아 여성 권력자 중에는 특히 가족에 의해 정치 행보의 발목을 잡힌 경우가 적지 않았다.

베나지르 부토는 남편과 친·인척이 부패에 연루된 까닭에 물러나야 했다. 필리핀의 아로요는 남편이 부패에 연루돼 망명하면서 탄핵 위기에 처했다. 최근 박 대통령의 인사에 관여하는 비선으로 주목받은 ‘만만회’에 박 대통령의 가족이 있었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으로 측근 권력을 행사하다가 결국 비리로 감옥에 간 이상득을 떠올리게 된다. 박 대통령은 ‘가족의 배신’은 물론 친·인척과 측근의 비리로 곤욕을 치른 아시아 여성 권력자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을까.

세번째 관심 포인트는 민주화의 퇴행 여부다. 아시아의 여성 권력자 중엔 독재자의 딸이 있긴 하나, 자신이 독재자로 각인된 인물은 거의 없다. 혈통과 가문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민주화운동을 통해 권좌에 오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베나지르 부토,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 방글라데시의 베굼 칼레다 지아 등이 민주화 투쟁을 거쳐 국가수반의 자리에 올랐다. 최고 권력의 자리에서도 민주개혁을 추진했다. 코라손 아키노는 6년 단임의 대통령제 헌법 개정에 성공했다. 베굼 칼레다 지아는 군사독재를 막기 위해 대통령중심제를 의원내각제로 바꿨다.

민주화의 기수가 아닌 보수우파의 상징적 아이콘인 박 대통령의 행보는 이들과 다르다. 경제민주화 약속을 저버리고 전교조를 법외노조화하더니 이젠 인사청문회라는 민주적 제도를 손보려 하고 있다. 정말로 세 가지 관심 포인트로 ‘관심 대통령’을 지켜봐야 하는 3년 반이라면, 그건 비극적 역사가 될 것이다. 이 모든 국민적 ‘관심’이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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