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무시’ ‘자본 존중’한 판결

2014.11.18 21:12 입력 2014.11.18 23:46 수정
이호중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1월13일 대법원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정리해고를 무효라고 본 항소심 판결은 파기됐다. 쌍용차 사태는 2009년 5월 회사 측이 전체 인력의 37%에 해당하는 2646명의 정리해고를 단행한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쌍용차 노조의 파업과 경찰특공대의 무자비한 진압에 이어 일부는 희망퇴직 등으로 회사를 떠났고 최종적으로 165명이 해고됐다.

[정동칼럼]‘사람 무시’ ‘자본 존중’한 판결

5년이 흘렀다. 정리해고의 부당함에 맞선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은 실로 눈물겨웠다. 170여일간의 철탑농성, 대한문 앞의 노숙농성 등 정말 안 해 본 것이 없을 정도다. 이렇게 5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해고노동자와 가족 25명의 소중한 생명을 먼저 떠나보내는 슬픔도 겪어야 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공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면서 많지 않은 월급이라도 받아 가족과 오붓한 행복을 나누는 것을 소망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은 이들을 끝내 기약없는 고통의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요건으로 한다. 이 요건은 엄격하고 또 엄격해야 한다. 정리해고란 기업의 경영위기를 이유로 해서 아무런 잘못이 없는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대거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취지에서 지난 2월 서울고법의 항소심 판결은 정리해고의 요건을 비교적 엄격하게 판단했다. 서울고법은 쌍용차 회사의 경영상 위기가 부풀려졌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쌍용차의 2008년 재무제표는 ‘기존 차종은 2009년 또는 2010년 단종을 전제로 예상 매출 수량을 추정하면서 신차는 2013년까지 하나도 출시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유형자산 손상차손(가치 하락에 따른 손실)이 과다하게 계상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법원의 답변은 너무도 단순하다. “미래에 대한 추정은 불확실”하니 회사 측의 추정이 “다소 보수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합리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기업의 경영상 판단은 그 자체로 인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회사의 입장을 너그러이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으로 쓰여 있다.

쌍용차는 모답스(MODAPTS) 기법 등을 활용해 인력 구조조정 규모를 산정했다고 하는데, 서울고법은 그 합리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모답스 기법은 근무자의 동작을 21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시간치를 부여해 작업시간을 산출하는 것이라고 한다. 재판과정에서 쌍용차는 모답스 기법을 활용해 어떻게 구조조정 규모를 산정했는지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회사 측의 주장을 ‘그냥’ 인정했다.

기업은 그저 열심히 일하던 노동자들을 한순간에 정리해고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무한한 자유를 얻었다. 정리해고의 문제는 근로조건의 핵심적인 부분이건만 노동자는 그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단다. 왜냐하면 ‘경영상의 판단’이니까. 회사 경영진의 잘못으로 초래된 위기인데도, 그 위험을 전가해 아무런 잘못도 없는 다수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쫓는데도, 대법원은 ‘경영상의 판단’이니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판결은 결코 정의롭지 않다. ‘사람의 생존권’과 ‘기업의 돈벌이’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 가치로 자리매김돼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누가 뭐래도 이 땅의 주인은 ‘사람’이지 ‘돈’이 아니다. 어디 이 판결뿐이랴만 나는 이 판결에서 ‘사람의 존엄함’과 ‘생명의 엄중함’이라는 소중한 가치가 사라졌음을 느낀다. ‘사람’의 인권이 삭제된 판결이다. ‘자본’의 영락(榮樂)을 위해 노동자, 사람을 마치 기계부품처럼 내팽개쳐도 좋다고 말하는 판결이다. 그 결과는 ‘사법살인’이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연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2000배를 올렸다. 2000일에 이르는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멈출 수 있는 대법원 판결을 기대하면서 그리했다. 그 앞을 지나는 판사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신성한 법원 앞에서 무슨 짓이야’ 이런 생각이었을까. 생존의 벼랑에 몰린 노동자의 고통이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이나 해 보았을까. ‘사람’을 생각하는 고뇌의 손때로 얼룩진 판결을 과연 현재의 사법부에 기대할 수 있을지 참으로 암울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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