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나간 복지 논쟁

2015.03.01 20:37 입력 2015.03.01 20:49 수정
이진석 | 서울의대 교수

2030년대 국가재정 파산 위기, 2040년대 잠재성장률 1%대 진입, 2050년대 인구경쟁력 세계 최하위, 2060년대 잠재성장률 0%대 진입…. 국내 연구기관들이 전망하는 한국의 미래다. 마치 국가부도를 향해 달려가는 모양새다. 이런 암울한 미래의 뿌리는 저출산과 고령화, 그리고 양극화이다. 사회의 구조와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국가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지도 오래다.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도 구조조정의 한 줄기다.

[정동칼럼]엇나간 복지 논쟁

이런 위기의식의 발로인 듯,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여야 후보 모두 복지국가를 약속했다. 국가부도를 피할 희망이 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희망은 실망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보수 집권세력은 지금의 복지를 과잉 복지로 진단하고, 복지를 구조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더 이상의 기대를 접는 편이 좋을 듯하다. 그렇다면 진보 야권세력은 희망의 대안으로 인정받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과거의 낡은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 크다. 변화와 혁신은 진보의 핵심 가치지만, 진보의 복지는 여기서 비켜나 있었다.

복지 영역에서 우선적으로 극복해야 할 진보의 낡은 관성은 무상복지 담론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무상복지의 원조는 진보정당이다. 그리고 2012년 민주통합당이 3무1반 정책을 채택하면서, 범야권의 복지 비전을 담는 그릇이 되었다. 2000년대 초반, 진보정당이 제시한 무상복지 정책의 파장은 컸다.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은 복지를 국민의 보편적 권리로 인식하는 전기를 마련해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무상복지가 진보의 복지 비전을 담는 그릇이 아니다.

국가가 국민의 삶을 보호하는 수단은 다양하다. 서비스 이용 시점에서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수단의 전부는 아니다. 보육에서 이미 입증된 것처럼 보육비용을 줄여주는 것만으로는 안심하고 아이를 키울 수 없다. 의료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병원비 걱정은 여전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높은 질의 의료, 안전한 의료, 친절한 설명, 진료과정에서의 인간적 존엄성, 환자의 자기결정권, 지역 접근성에 대한 요구도 크다. 무상의료라는 그릇으로는 이런 국민의 요구를 담을 수 없다.

무상복지는 복지에 소극적인 보수 집권세력의 좋은 먹잇감이다. 반복지 정서를 확산시키고, 복지를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게다가 국민의 다수는 무상복지를 공짜 복지, 퍼주기 복지, 획일적인 균등 복지로 이해하고 있다. 보수의 악의적인 왜곡 탓이다. 그러나 원인이 무엇이든 국민의 다수가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우리가 말한 무상복지는 그런 것이 아니라거나, 무상복지를 복지 비전으로 명시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고 항변해도 소용없다. 이 역시 국민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대표적인 복지국가이다. 그리고 사민당이 복지국가를 만드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1950년대 중반 이후, 사민당은 매우 중요한 이념적 전환을 단행했다. 우파 정당의 슬로건으로 어울릴 법한 ‘자유선택 사회’를 자신의 복지국가 이념으로 확립한 것이다. 이전까지 사민당의 복지정책은 수직적 재분배와 양적 평등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그러나 복지 확대로 국민의 삶이 향상되고, 화이트칼라층이 부상하면서, 과거의 균등주의 정책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얻기 어렵게 되었다. 용어만 놓고 보면, ‘자유선택 사회’는 우편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자유선택 사회’에서 말하는 복지국가의 역할이란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삶의 가능성과 기회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 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만큼 복지국가의 궁극적 비전을 잘 묘사한 표현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념적 혁신과 균등주의 정책에서의 탈피를 통해 사민당은 블루칼라층에 더해 화이트칼라층의 지지까지 얻어내며, 더 높은 차원의 복지국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사람도 몸이 커지거나 계절이 바뀌면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진보의 복지 담론도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화하고 혁신되어야 한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열정과 희망만 남겨놓고, 이제는 무상복지에 작별을 고할 때이다.

굿바이! 무상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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