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법원제, 올바른 대법원 개혁 아니다

2015.04.28 21:16 입력 2015.04.28 21:20 수정
이호중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법원이 상고법원제 도입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상고법원제란 대법원과 별도로 상고법원을 설치해 대법원으로 올라온 상고사건을 대법원과 상고법원이 나누어 재판하는 제도를 말한다. 3심제에서 대법원은 최종 재판을 담당하는데, 대법원은 법 해석의 통일을 기할 필요가 있는 사건이나 공익사건 등 중요 사건만 직접 재판하고, 그 외의 일반적인 상고사건은 별도의 상고법원이 담당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상고법원의 판사는 대법관이 아니라 일반 판사들이다. 이런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다.

[정동칼럼]상고법원제, 올바른 대법원 개혁 아니다

대법원이 드는 이유는 상고사건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2014년 상고사건 수는 3만8276건으로, 대법관 1인당 연 3000여건을 처리해야 하는 수치이다. 사건 수가 너무 많으니, 대법원의 재판이 지연되거나 부실해지는 사태를 피할 수 없다. 대법원의 재판이 부실해지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뭔가 해결책을 강구해야 하는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상고법원 도입이 올바른 해결책일까. 대법원의 구상에 따르면, 일반 법관으로 구성되는 상고법원이 대법원을 대신해 3심 재판의 대부분을 담당하게 된다. 상고법원에서 재판할지, 대법원에서 재판할지는 사건마다 대법원이 결정한다고 한다.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제도는 ‘대법원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박탈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재판청구권의 침해로서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 우리 헌법상 대법원장 및 대법관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되므로 대법원의 재판에는 국민주권의 원리가 반영돼 있다. 실질적인 헌법이념에 비추어 보면, 국민의 재판청구권은 대법원의 대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대법원도 위헌 소지를 의식했는지, 특별상고라는 제도를 둔다고 한다. 특별상고란 상고법원의 재판에 대해 제한적으로나마 대법원에 다시 상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현행 3심제를 사실상 4심제로 운영하는 결과가 된다. 국민 정서상 재판을 시작하면 대법원까지 가서 끝장을 보려는 경우가 많다. 상고법원제는 결국 분쟁해결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증대시켜 국민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다.

사건 수가 너무 많아 대법원의 재판이 부실해지는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법개혁의 과제이다. 가장 간명하면서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방안은 대법관 수를 늘리는 것이다. 조금 거칠게 비유하자면, 상고법원 도입방안은 어떤 기업이 인기가 치솟은 제품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교묘하게 ‘짝퉁’을 만들어 파는 것과 같다. 기업 입장에서는 해당 제품의 생산을 늘리는 것이 옳은 길이다. 상고법원제도 마찬가지이다. 대법원의 업무가 과중하다는 이유로 상고법원을 별도로 설치해 사건을 뚝 떼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대법관 수를 늘리는 것이 국민의 재판청구권 보장에도 훨씬 부합한다. 그런 이유로 대한변호사협회도 오래전부터 대법관 증원을 주장해 왔다.

이렇게 간명한 해결책을 굳이 외면하면서, 대법원이 상고법원이라는 짝퉁 방안을 들고 나온 이유는 뭘까. 대법원은 대법관 수가 늘어나면 ‘전원합의체 판결’을 하기가 어려워진다고 주장한다. 대법원은 ‘부’ 단위로 재판하는 게 원칙이며,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과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재판을 말한다. 전원합의체 판결은 연간 20건 안팎에 불과하다. 대법원의 주장은 대법관 수가 늘어나면 모두가 모여서 사건을 심리해야 하는 전원합의체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대법관 수가 100명쯤 되면 그럴 수도 있겠다. 현재 대법관 증원 방안은 25명 주장도 있고 40~50명 수준으로 늘리자는 주장도 있다. 이 정도라면 전원합의체 토론이 불가능하지 않다.

나는 대법원이 대법관 증원에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소수정예로 구성되는 대법원의 관료적 권위주의를 놓지 않으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50대-남성-서울대-법관 출신’으로 상징되는 대법관은 전형적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은 판사들의 승진 종착지이다. 상고법원제도는 대법원의 사건부담을 하위직 판사들에게 전가하면서 대법원은 소수의 엘리트 판사 출신들이 독점하는 폐쇄적이고 관료적인 사법체계의 구조를 더욱 강화하는 꼼수이다. 대법원의 이러한 폐쇄적 권위주의 자체가 혁파의 대상이 돼야 한다. 그 첫걸음은 대법관 수를 늘리고, 다양한 직역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대법원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정도를 외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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