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신화와의 전쟁

2017.08.10 14:20 입력 2017.08.10 20:36 수정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학

[정동칼럼]부동산 신화와의 전쟁

8·2대책 이후 부동산 시장은 눈치 보기로 돌아섰다. 강력한 대출 규제가 과연 부동산 과열을 잠재울지는 미지수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신화의 영역에 속하므로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다. 부동산에 관한 한 온갖 신화가 활개를 친다.

‘부동산 불패’ 신화, ‘시장 이기는 정부 없다’는 신화, ‘세금으로는 부동산 투기 못 잡는다’는 신화, ‘참여정부 부동산정책은 실패’라는 신화 등등.

참여정부는 임기 내내 부동산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당시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도입,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등 좋은 대책을 연달아 내놓았으나 부동산 투기의 열은 좀처럼 식지 않았다. 임기 말에 DTI(총부채상환비율)라는 대출 규제를 도입하고서야 비로소 열이 떨어졌다. 문재인 정부가 6월, 8월에 발표한 부동산 대책은 좋았던 DTI의 추억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선후관계가 곧 인과관계는 아니다. DTI 이후 부동산이 잡힌 것은 오비이락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DTI를 특효약이라고 과신하면 안된다. 특효약은 언제 어디서나 토지 보유세다. 언론에서 8·2대책을 참여정부 시즌2라고 명명하는데, 틀린 말이다. 보유세라는 핵심이 빠져 있으니.

요즘 온 세계가 부동산 투기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한국만큼 부동산 투기 열병에 시달리는 나라도 드물다. 부동산 투기는 소수의 승자가 웃고, 다수의 패자가 우는 제로섬 게임이다. 빈부 사이의 경제적 격차를 극단적으로 확대하고, 천문학적 불로소득의 유혹 때문에 생산적 활동을 저해해서 경제성장도 방해하니 한마디로 망국병이다.

역대 정부는 부동산 과열이 심하면 고강도 투기 억제책을 발표했으나 조금 잠잠해지면 습관성 건망증이 발동하여 부동산을 경기부양의 불쏘시개로 쓰곤 했다. 그러다 보니 정부 정책이 도무지 일관성 없이 온탕과 냉탕을 반복했다. 부동산정책에 관한 한 그래도 일관성 있는 정부는 참여정부뿐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인위적 경기부양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 이 말은 역대 정부가 애용하던 부동산 경기부양이란 마약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런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참여정부는 부동산 마약을 쓰지 않은 유일한 정부이고, 숙원이던 보유세를 강화했고, 실거래가 관행을 정착시킨 예외적 정부였다. 그러나 현실에서 참여정부는 부동산정책 실패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정책 효과는 시차를 두고 나타나므로 전후를 살펴야 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부동산 경기부양의 악습을 부활시켰지만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은 참여정부 부동산정책이 뒤늦게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때의 가격 앙등도 실은 그 원인이 이전 정부의 전면적 부동산 경기부양에 있었다. 만일 참여정부 때의 종부세 기준 설정과 양도소득세 중과를 둘러싼 정부, 여당 내부의 혼선만 없었더라면 참여정부 부동산정책은 임기 안에 성공했을 것이다. 관료와 여당 내 보수파의 무원칙한 언행 때문에 참여정부는 부동산정책 실패라는 누명을 덮어썼지만 사실은 그만하면 성공적인 정책이었다.

부동산 투기에 대한 근본 대책은 토지 보유세다. 보유세는 공평으로 보나, 효율로 보나 최선의 세금이다. 한국은 보유세는 낮고 거래세 중심인 나라여서 오래전부터 학자들이 보유세 강화를 주장했으나 역대 정부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참여정부가 도입한 보유세인 종부세는 한국 정책사의 역사적 쾌거였다. 종부세는 헌법재판소의 납득하기 어려운 위헌 결정으로 형해화하고 말았으나 보유세 강화 없이는 부동산 투기라는 망국병을 치유할 수 없다. 세금으로는 부동산 투기 못 잡는다는 신화는 틀렸다. 보유세가 근본 처방이다. 정부는 내년 4월 이후 양도소득세 중과를 예고하면서 그 전에 팔 것을 권고하지만 글쎄요, 부동산 부자들은 정부 말보다 ‘부동산 불패’ 신화를 더 신봉한다. 보유세 강화라는 압박이 있어야 부동산 팔 생각을 할 것이고, 그래야 천정부지의 땅값, 집값이 떨어질 것이다.

시장 이기는 정부 없다는 신화, 물론 틀렸다. 시장이 항상 옳고 시장에 다 맡길 거면 애당초 정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시장의 투기와 불공정, 불평등을 시정하라고 정부가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 정부는 참여정부 때의 ‘세금폭탄’ 운운하는 ‘언론폭탄’의 악몽 때문인지 보유세에 대해 침묵하는데, 이렇게 기백이 없어서는 부동산 신화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어렵다. 과감히 보유세 깃발을 올리고 전진해야 한다. 보유세 강화는 문재인 정부 부동산정책의 화룡점정이 될 것이다. 그래서 ‘부동산 불패’ 신화를 깨뜨린 최초의 정부가 되기 바란다.

이 명예는 참여정부가 가장 근접했지만 일관성 부족 때문에 못 이룬 비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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