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새 길’에 대처하는 법

2020.02.02 20:49 입력 2020.02.02 20:51 수정

냉철하게 현실을 바라본다면, 북한이 주장한 ‘새로운 길’에서 희망과 낙관보다 비관적인 전망을 떠올리는 것이 정상적이다. 앞으로 우리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갈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미국의 북핵 대처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가 발생한 이래 미국은 원하는 것과 가능한 것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합리적인 처방을 제시하기보다는 처방을 먼저 내려놓고 상황을 거기에 맞추려 했다. 처방에 부합하지 않은 신호와 사실은 억지로 무시했다. 현실적 대안을 찾기보다는 북한의 거친 언사에 분노하여 그 뒤에 숨어있는 신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그 결과 북한에 번번이 의표를 찔렸다. 한국은 북핵 문제의 당사자라는 착각 혹은 국내정치적 이용이라는 유혹에 빠져서 사태 해결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 또한 현실인식의 부재에서 기인했다.

[정동칼럼]북한의 ‘새 길’에 대처하는 법

북한이 선언한 ‘새로운 길’은 통상적인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지금까지와 차원이 다른 정책전환을 의미한다. 장거리미사일 한 번 발사하는 것 정도로 보면 곤란하다. ‘정면돌파’와 ‘자력갱생’은 ‘새로운 길’의 실천적 내용이다. 대화와 타협이 아닌 힘과 실력으로 ‘정면돌파’하여 전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여건을 조성하되, 그 이후 돌아오는 어려움은 외부의 도움 없이 ‘자력갱생’으로 감수하고 극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어야 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북한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시나리오를 구상하는 것은 전략적 사고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남북관계는 북한이 이용할 수 있는 시나리오의 한 축이다. 예상할 수 있는 북한의 행동은 다음 두가지 정도일 것이다. 첫째는 금강산 시설 철거를 이용해 긴장국면을 조성하는 것이다. 북한은 2월까지 금강산 시설을 철거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낸 바 있다. 2월이 지나면 자신들이 직접 금강산 시설을 철거할 것이다. 그 경우 폭파와 같은 충격적인 방법을 이용해서 기존의 남북관계를 전면 재조정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려 할 수 있다. 신형 코로나바이러스를 이유로 철거시기를 연기한 것은 극적 효과를 위한 전술로 볼 수 있다.

두번째는 직접적인 군사 도발이다. 북한은 수차례에 걸쳐 한·미연합훈련과 우리 군의 전력증강 사업이 9·19 군사합의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입장에서 3월에 예정된 한·미연합훈련을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 해상이나 지상에서의 국지적 도발로 긴장국면을 조성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9·19 군사합의의 상징적인 성과에 반하는 지상 도발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미국에 대해서는 차원이 다른 도발이 예상된다. 이제까지의 외교적 교섭과 달리 미국민의 심리를 강력하게 타격하여 양보를 강요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도 있다. 2019년 12월31일, 북한은 제7기 제5차 당전원회의에서 ‘새로운 전략무기’로 미국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실제행동’을 감행할 것임을 예고했다. 북한은 2년 전부터 태평양에서 핵실험을 예고했다. 지나간 말이라고 무시하면 안된다. 최근 미국이 항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를 기함으로 한 제9항모강습단을 태평양 지역에 파견한 것은 이런 가능성을 미리 예상했기 때문인 듯하다.

북한이 극적인 정책전환을 예고하고 있음에도, 한·미 안보당국은 아직 그 신호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북한은 원칙 없이 대화와 강압 사이를 널 뛰듯 오간 미국을 더 이상 대화할 수 없는 상대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정부의 불분명한 태도도 북한이 지금 같은 어정쩡한 남북관계에 기대를 접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개별관광 구상에 북한이 어떻게 반응할지 의문이다. 남북관계 발전은 요란한 구호나 약속보다 쌍방의 진정성이 가장 중요하다. 신종 코로나 사태와 관련하여 남북 간 실질적인 협력을 강구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 부족한 방역장비와 물자를 인도적인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이다. 북한을 비난하고 정신승리를 즐기기보다 실천적 노력을 고민해야 한다. 북한도 수틀린다고 도발하면 전략적 이점을 상실할 수 있다.

북한이 선언한 ‘새로운 길’은 한반도 및 동북아 안보질서가 급변하는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북한은 그런 행동을 위한 국내외적 준비를 마친 것으로 보인다. 뼈아프지만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처지를 냉철하게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현실과 희망을 혼동하면 최악의 상황을 자초할 수도 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