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 기자메모

기억하라, 죽임을 ‘당한’ 그들을

2019.11.28 06:00 입력 2019.11.28 09:42 수정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1주기 추모 분향소 앞에서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발언을 듣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1주기 추모 분향소 앞에서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발언을 듣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눈을 감으면 기어이 재생되고 말았다. 떨어져 죽고, 끼여 죽고, 깔려 죽는 노동자들의 마지막 장면 말이다. 재해조사의견서를 들여다본 날이면 어김없었다.

증상은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기획팀원 모두에게 나타났다. 팀원들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2018년 1월~2019년 9월 사고성 산업재해에 대해 작성한 재해의견서 1305건을 전수조사했다. 재해자 정보와 사고 개요, 원인 등을 엑셀 시트에 입력하고 분류하는, 한 달이 꼬박 걸린 작업이었다.

의견서는 건조했다. 1692명의 죽음의 원인이 단어 몇 개로 정리됐다. ‘개인 보호구 미착용’ ‘작업계획서 미작성’ ‘방호망 미설치’…. 하지만 읽는 마음까지 메마를 순 없었다. 안전모만 썼어도, 지게차 시동만 껐어도, 관리자만 있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기 때문이다. 사고는 원시적이었고, 죽음은 허망했다.

지난 21일자 신문 1면에 실린 노동자 명단은 1200명이었다. 총 사망자는 1692명이지만 재해자가 개인사업자·특수고용노동자이거나, 개인질병·단순 교통사고로 분류된 경우 조사와 의견서 작성이 이뤄지지 않았다. 명단 가운데 100여명은 N○○, Y○○ 등으로 표기된 이주노동자들이었다. 젊고 건장했을 그들은 코리안드림을 안고 한국에 왔지만 결국 한 줌의 재로 돌아갔다.

내년 1월부터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시행된다. 이른바 김용균법이다. 김용균법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한정됐던 보호 대상을 특수고용직, 배달 종사자까지 확대했다. 원청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 강화, 원청 및 사업주 처벌 강화 등의 내용도 담겼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는 고용 불안정성 탓에 일터의 위험에 관한 문제제기 자체가 쉽지 않다. 발전소의 한 하청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작업중지 요청하라고 하는데 누가 해요. 3개월 단위로 계약을 연장하고 있어요.”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 기자메모]기억하라, 죽임을 ‘당한’ 그들을

영국은 기업의 주의의무 위반으로 노동자가 숨지면 ‘살인’으로 규정하고 상한 없는 벌금을 물린다고 한다. 2011년 영국 법원은 노동자 1명을 매몰사고로 사망케 한 토목기업 코츠월드 홀딩스에 38만5000파운드(약 5억8000만원), 당해 매출의 115%에 이르는 벌금을 매겼다. 판결을 내린 판사는 거액의 벌금 때문에 영세기업인 코츠월드가 파산할 수 있다는 우려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불행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국 사회가 지금껏 사업주가 아닌, 산재 노동자의 죽음을 향해 반복해온 메시지가 바로 이것 아니었을까.

재해의견서 입력 작업을 끝낸 지 한 달이 돼간다. 한동안 눕기만 하면 눈앞에 펼쳐지던 장면들은 부끄럽게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때 감각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오늘도 3명의 김용균들이 일터에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감각을 기억하기로 한다. “불행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말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한다. 나도, 당신도 김용균이 될 수 있으므로.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 기자메모]기억하라, 죽임을 ‘당한’ 그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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