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안전 사각’ 소규모 현장…곳곳이 ‘지뢰밭’이었다

2019.11.28 06:00 입력 2019.11.28 09:41 수정

공사현장 불시점검 르포

경기 성남시의 한 택지지구에서 진행 중인 다세대주택 건설현장에 지난 8일 뾰족한 못이 나뭇조각에 박힌 채 방치돼 있다(왼쪽 사진). 나뭇조각과 벽돌, 노끈 등 자재들이 정리되지 않고 바닥에 널려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경기 성남시의 한 택지지구에서 진행 중인 다세대주택 건설현장에 지난 8일 뾰족한 못이 나뭇조각에 박힌 채 방치돼 있다(왼쪽 사진). 나뭇조각과 벽돌, 노끈 등 자재들이 정리되지 않고 바닥에 널려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야, 내려오지 마!”

지난 8일 지상 4층 규모의 교회가 지어지고 있는 경기 성남시의 한 택지지구 공사장. 현장소장 ㄱ씨가 2층 슬래브(바닥) 끝부분에서 거푸집 유로폼을 사다리 삼아 1층으로 내려가던 노동자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는 안전모 대신 카키색 야구모자를 쓰고 있었다. ㄱ소장은 “너 왜 안전모 안 썼어?”라고 재차 소리쳤다. | 관련기사 2면

이곳은 수년 뒤 4000여가구의 보금자리가 될 ‘미니 신도시’라 불리는 곳. 다세대주택, 상가 등 소규모 공사가 곳곳에서 한창이었다. 고용노동부 산하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산재예방 순찰차(패트롤카)’가 공사장에 불시 방문하자 ㄱ소장이 현장을 안내했다. 2인1조로 구성된 181개 점검팀은 패트롤카를 타고 지난 7월부터 전국 산업현장의 안전관리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공사장에는 ‘○○인력-형틀목수 전화 주세요 010-XXXX-XXXX’ ‘○○사다리차 24시간 대기’ ‘최저가 철근!’ 등 눈길 닿는 곳마다 최저가를 강조한 광고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중국어·영어 위험 표지도 눈에 띄었다. 대형 건설사가 짓는 아파트 건물 외벽에선 사람 몸집만 한 현수막이 “추락은 사망!”이라는 경고를 보냈다.

교회를 짓는 이곳 현장은 지상 3층 철골조 작업 중이었다. 전체 공정의 3분의 1이 이뤄졌지만 난간대 등 시스템 비계 내부의 추락방지시설은 대부분 비어 있었다. 현장을 살피던 점검팀 정경환 부장(54)이 “비계 안쪽에 왜 난간대가 없냐”고 ㄱ소장에게 묻자 “이제 설치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비계는 높은 곳에서 작업할 때 노동자의 발판 역할을 하는 구조물이다. 시스템 비계는 발판 폭이 좁고 통로 설치가 곤란한 기존의 강관비계보다 안전성이 높아 사용이 권고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은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의 건설현장에 시스템 비계 설치비용을 지원한다.

아찔한 장면은 계속 포착됐다. 교회 1층 작업장 한가운데선 한 형틀공이 보호구도 없이 이동식 비계 위에 쪼그려 앉아 거푸집 작업을 하고 있었다. 1단짜리 비계 상부에는 발판이 절반만 설치돼 있었다. 비계가 넘어지지 않게 중심을 잡아줄 아웃트리거(지지대)도 없었다. 형틀공의 다리 힘이 풀리거나 지나가던 동료 작업자가 잘못 부딪치기라도 하면 영락없이 중대재해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인부들이 위·아래층을 이동하는 모습도 위험천만했다. 가설 계단이 없어 동선이 긴 외부 비계 대신 거푸집 등을 짚고 그냥 오르내렸다.

◆비계는 부실…뾰족한 공구 나뒹구는데…소장님은 어디 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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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본 공사장 5곳 모두
4~5가지 지적사항 쏟아져

대부분의 시스템 비계 안쪽
작업하는 데 불편하단 이유로
발판·난간대 없이 뻥 뚫려


교회, 성당 등 종교시설은 특히 까다로운 현장이라고 정경환 부장은 말했다. “예배당 천장이 높고 또 첨탑도 만들어야 해 추락사고가 발생하기 쉽습니다. 더 조심해야죠.” 점검팀은 이날 현장 노동자들을 모아 5분가량 안전교육을 실시한 뒤 노동부에 행정조치를 요청했다. (닷새 뒤인 지난 13일 점검팀은 근로감독관과 교회 건설현장을 다시 찾았다. 비계, 난간 등 추락방지 조치가 개선돼 사법처리 없이 종결됐다.)

■ 곳곳이 ‘지뢰밭’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소속 산재예방 순찰차(패트롤카)팀이 지난 8일 경기 성남시의 택지지구 교회 건설현장에서 한 형틀공이 안전모와 난간 없이 이동식 비계 위에서 거푸집 작업을 하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김영민·김지환 기자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소속 산재예방 순찰차(패트롤카)팀이 지난 8일 경기 성남시의 택지지구 교회 건설현장에서 한 형틀공이 안전모와 난간 없이 이동식 비계 위에서 거푸집 작업을 하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김영민·김지환 기자

이날 돌아본 공사장 5곳에서는 모두 4~5가지 지적사항이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의 현장에서 시스템 비계 안쪽이 발판이나 난간 없이 뻥 뚫려 있었다. 발판은 추락을 막는 데 필수적인 장치이지만, 현장 관계자들은 자재를 올리고 내리는 데 불편하다는 이유로 비워뒀다. 정 부장은 “안쪽에 비계가 설치된 곳은 거의 없다”며 “소규모 현장에서 이것까지 요구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했다. 전체 건설업 사망사고의 62%가 추락에 의한 것이고, 이 중 상당수가 소규모 건설현장에서 일어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전동톱, 드릴 등 공구의 날카로운 부분이 그대로 방치된 것도 공통적이었다. 이날 점검한 5곳 중 2곳에서 목재 가공용 둥근톱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별도의 보호장치 없이 톱날이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짠 덮개를 씌운 경우는 그나마 나은 수준이었다. 한 공사장은 톱 스위치의 위치가 위험천만했다. 까딱 잘못 움직였다간 신체 일부가 스위치를 건드려 톱이 작동할 위험이 있었다. 점검팀은 현장소장에게 “톱날을 모두 덮는 형태의 접촉예방장치를 설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떨어지고 깔리는’ 사고가 아니더라도 노동자들을 위협하는 요소는 많았다. 나뭇조각, 벽돌, 시멘트 자루 등 각종 자재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어 걸려 넘어지기 쉬웠다. 곳곳에 박힌 날카로운 못을 요리조리 피해야 했고, 내부 조명이 갖춰지지 않아 볕이 들지 않는 구간에서는 스마트폰 조명에 의지해 한 발 한 발 내디뎌야 했다. 정 부장은 “요즘은 특히 고령 노동자들이 많기 때문에 순발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며 “조금만 삐끗해도 크게 다치기 쉽다”고 말했다.

■ 소장 한 명이 2~3곳 관리

다가구주택 공사장에서 목재 가공용 둥근톱 톱날이 보호장치 없이 노출돼 있다. 김영민·김지환 기자

다가구주택 공사장에서 목재 가공용 둥근톱 톱날이 보호장치 없이 노출돼 있다. 김영민·김지환 기자

전동톱·드릴 방치도 공통적
나뭇조각·벽돌 등 널브러져

저가 입찰로 돈 버는 건설사들
안전 비용을 ‘지출’로만 생각
“안전도 결국 돈, 투자로 봐야”

일부 현장에서는 관리자 없이 작업이 이뤄졌다. 4층 근린생활시설 공사장에서는 바닥 시멘트 작업자 2명이 개인 보호구 없이 물청소를 하고 있었다. 10여분 뒤 전화를 받고서야 나타난 ㄴ소장은 이날이 ‘쉬는 날’이라고 했다. 그는 노동자들이 왜 안전모를 쓰지 않았느냐는 점검팀 질문에 대답 대신 “하하…” 멋쩍게 웃었다.

소장의 부재를 증명하듯 현장에서는 각종 문제점이 발견됐다. 시스템 비계 안쪽은 자재 운반에 불편하다는 이유로 난간이 없었다. 안전보다는 작업효율이 우선이었다. 1층 계단 입구에 위치한 임시 분전반(두꺼비집)은 별도의 절연 조치 없이 외부에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최상층에서는 난간 없이 방치된 계단 참(계단 끝부분에 위치한 수평면)이 문제로 지적됐다. 조도가 낮아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면 2m 아래 콘크리트 바닥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점검팀은 “계단 참에서 떨어지면 높이가 굉장해 중대재해 가능성이 크다”며 “공사 가장 마지막 단계까지 끝내고 (난간을) 해체해야 하지만 이를 갖춘 소규모 현장이 잘 없다”고 설명했다.

한 건설현장 노동자가 2층 슬래브(바닥) 끝부분에서 거푸집 유로폼을 사다리 삼아 1층으로 내려가려 하고 있다.  김영민·김지환 기자

한 건설현장 노동자가 2층 슬래브(바닥) 끝부분에서 거푸집 유로폼을 사다리 삼아 1층으로 내려가려 하고 있다. 김영민·김지환 기자

이곳 ㄴ소장은 “혼자서 현장 3곳을 관리한다”며 “여기랑 ○○공사 현장을 왔다 갔다 한다”고 했다. 소규모 건설현장의 경우 시공사가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소장 한 명에게 서너 곳의 현장을 맡기는 경우가 흔하다. 점검팀 오세종 차장(42)은 “소장이 자리를 비워 만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공단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2012년 보고서에 따르면 공사금액 20억원 미만의 소규모 건설현장에서 현장소장이 2곳 이상의 공사를 맡는 비율이 25%에 달한다.

“준공 막바지에 사고 제일 많이 나는 거 아시죠? 지금 상주하셔야 해요. 소장님이 지켜보셔야 (작업자들이) 안전모도 쓰고 하지요.” 정 부장은 ㄴ소장에게 당부했다.

■ 외국인 노동자만 있는 공사장도

인근에서 4층 빌라 건설을 맡고 있는 ㄷ소장은 관리자가 없는 주변 현장에 대한 불안을 호소했다. “다른 회사 보면 소장도 없고, 외국인 노동자끼리만 일하고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진짜 관리 안되죠. 사고 나는 것도 자주 보고요. 관리자 있는 거랑 없는 건 차이가 큽니다. 여기 분들 제가 (안전모) 안 쓰면 안 쓰거든요.” 실제 소장이 자리를 비운 옆 현장의 최상층에서 노동자 5~6명이 안전모 없이 거푸집 조립 작업을 하고 있었다.

소장이 없는 현장은 주변 정리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ㄷ소장은 “옆 현장은 (소장이) 콘크리트 타설 때만 오거나 아침에 잠시 오는 정도”라며 “그 옆옆(현장)은 (소장) 얼굴을 한 번도 못 봤다”고 말했다. 그는 자리를 비우는 관리자들과는 ‘협의’도 어렵다면서 옆 현장을 가리켰다. 현장 입구 앞 도로에는 거푸집 유로폼 150여개가 얇은 나무판자 10여장 위에 위태롭게 쌓여 있었다. 지나가는 차량이 건드리기라도 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ㄷ소장은 걱정은 되지만 말할 상대가 없다면서 “솔직히 나도 어떻게 (건물이) 올라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 부장은 그래도 이 지역 공사장의 관리 상태가 다른 곳보다 양호한 편이라고 했다. “이 지구는 건설현장들이 밀집된 곳이라 그나마 안전 수준이 높은 편이에요. 단독으로 작업하는 곳들, 예컨대 개인업자가 지붕을 수리하거나 외벽을 칠하는 경우는 관리 수준이 훨씬 떨어져요.”

■ “안전은 지출 아닌 투자”

근린생활시설 공사현장의 꼭대기층 계단 참이 난간 없이 방치돼 있다. 김영민·김지환 기자

근린생활시설 공사현장의 꼭대기층 계단 참이 난간 없이 방치돼 있다. 김영민·김지환 기자

공단은 패트롤 점검을 통한 사고 예방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31일 기준으로 패트롤팀이 점검한 전국의 사업장은 3만1691곳(건설업 2만3568곳·제조업 등 8123곳)에 달한다. 이 중 2.3%인 861곳의 사업장에 대해 노동부의 감독을 요청했다. 패트롤 점검은 당초 10월 말 마무리될 예정이었지만 불시 점검 방식에 따른 효과가 커 연말까지 점검을 지속하기로 했다. 공단 측은 “사업이 본궤도에 오른 9월부터는 전년 대비 사고 사망자 감소폭이 점차 확대되는 추이를 보였다”며 “9월 말 기준으로 산재 사고 사망자는 671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730명)과 비교해 59명이 줄었다”고 밝혔다.

소규모 현장에서 사고가 반복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정 부장은 “안전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을 ‘투자’가 아닌 ‘지출’로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작은 건설사들은 저가 입찰로 빠르게 ‘치고 빠지는’ 방식으로 돈을 번다. 그렇다보니 당장 주머니에서 나가는 한 푼이 아쉽다. 정해진 공사 기간이 있어도 발주처가 “당기자”고 요구하면 무리해서 맞추기도 한다. 정 부장은 말했다. “안전도 결국 ‘돈’이지요. 안전을 투자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안전 사각’ 소규모 현장…곳곳이 ‘지뢰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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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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