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비리와 KF-X 의혹의 차이

2015.11.02 21:23 입력 2015.11.02 21:49 수정

요즘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게 방산비리다. 지켜보는 국민이 다 넌더리가 날 정도이다. 그런데 지난달 초 통영함 납품비리 혐의로 구속됐던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이 1심 재판에서 일부도 아닌 전부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황 전 총장에 대해 씌워진 혐의를 철석같이 믿던 사람들은 충격에 가까운 당혹감을 토로하고 있다.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합수단)이 반박 자료를 내며 “일방적으로 피고인의 변명만 들어준 판결”이라면서 재판부를 비판했지만 방산비리 수사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확산되고 있다.

[경향의 눈]방산비리와 KF-X 의혹의 차이

황 전 총장에 대한 합수단의 수사가 부실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합수단이 무리하게 수사하고 있다는 지적이 퍼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황 전 총장 등 전·현직 해군장교 10명 등 모두 14명을 구속시킨 통영함 수사만 놓고 봐도 그렇다. 합수단이 부실한 수중 음파탐지기(소나)를 문제 삼은 것은 정확한 판단이었다. 부실한 부품을 납품받은 결과 통영함은 어선에서 쓰는 어군탐지기를 사용해야 하는 형편에 이르렀고, 급기야 세월호 참사 때 구조에 나서지 못했다. 그런데 소나의 납품을 결정한 황 전 총장(당시 방위사업청 소장)이 진급할 목적으로 정옥근 해군참모총장의 부탁을 받고 시험평가서를 조작하도록 지시했다는 부분이 무죄가 났다. 함께 구속됐던 장교 7명도 무죄를 받아 풀려났다. 향후 재판 절차가 남아 있지만, 현 상태로라면 무리한 수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객관적 평가일 수밖에 없다.

수사를 둘러싼 새로운 사실도 드러나고 있다.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 도입 사업에 대해 브리핑한 방위사업청 대변인이 청와대로 불려갔다는 것이다. 와일드캣은 대잠수함 작전 강화를 위해 도입하기로 한 기종이지만 원래 해상작전용이 아니다. 해상에서 수중 탐색을 하려면 소나 등을 필수적으로 장착해야 하는데 이를 장착해 제작된 적이 없기 때문에 실물 평가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방사청 평가팀은 육군용 헬기에 모래주머니를 매달아 시험비행을 하는 것을 보고 ‘요구 성능 충족’이라고 보고했는데 이것을 엉터리 평가라고 합수단은 지적했다. 그러자 방사청 대변인이 실물이 없을 경우 그렇게 평가하게 돼 있다고 기자들에게 설명했다가 청와대로 불려들어간 것이다. 당시 그는 청와대에서 “수사를 방해하는 것 아니냐”고 추궁을 당했고, 군에서는 이를 청와대의 ‘함구령’으로 받아들였다는 게 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언급 자제를 요청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청와대가 군을 압박했다고 생각할 여지도 충분하다.

방산비리 액수를 부풀린 정황도 눈에 띈다. 지난 7월 합수단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방산비리액을 9800억원(해군 8400억원)이라고 했는데, 이 해상작전헬기 사업액 전체(5890억원)를 비리액수로 포함했다. 수사도 끝나지 않았는데 사업 전체를 비리라고 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박근혜 대통령이 방산비리를 이적행위로 규정하면서 합수단이 꾸려진 지 1년이 흘렀다. 합수단이 밝혀낸 성과도 적지 않지만 수사상 문제도 드러났다. 방산비리 수사에 대한 판결이나 최근 수사 진행으로 볼 때 수사과정에 대한 문제 제기를 수사에 대한 저항으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군과 무기 구매과정의 특성도 감안해야 하는데 이를 간과하고 있다. 이렇게 전 정권에 대한 수사는 무리할 정도로 철저하게 칼을 대면서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이 사업에 대해 문제가 제기된 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한 달간 조사해놓고 발표하지 않고 있다. 정두언 국회 국방위원장 등 여야 의원들이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18조원짜리 초대형 사업에 대해 점검하겠다고 나섰는데 대통령이 1시간짜리 보고를 받고 사업을 진행하라고 지시해 버렸다. 엊그제는 정부가 깎아서 올려 소관 상임위인 국방위 소위를 통과한 관련 예산 670억원에 대해 김재경 국회 예결특위 위원장이 더 올릴 수 있다고 하자, 정두언 위원장이 “어디선가 오더를 받은 것 같다”며 반발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방산비리에 대한 이 이중적 태도는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까. 통영함, 와일드캣은 이전 정부의 비리이고 KF-X는 현 정부의 고위 안보 책임자가 연루됐다는 차이에 단서가 있을지 모른다. 현 정부의 비리 의혹은 감추고 전 정부의 것은 과장해서, 무리해서라도 들춰내겠다는 게 차이일지 모른다. 그런 이중 기준이라면 방산비리를 척결할 수 없다. 정치적 목적이 개입돼 같은 의혹이 수사 대상과 보호 대상으로 갈린다면 방산비리 구조를 무너뜨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합수단이 정확한 증거로 수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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