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경제학과 급진적 삶의 전환

2019.07.14 20:56 입력 2019.07.14 20:57 수정

김종철은 28년 전 산속으로 들어가 칩거하며 명상생활로 들어갈지, 뜻있는 사회적 프로젝트를 시작할지 고민하다 잡지를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1991년 창간호를 낸 그 잡지가 격월간 ‘녹색평론’이다. “이대로 가면 이 세상이 망할 게 눈에 명확히 보이는데, 연구실에서 책이나 읽고 학생들 가르치며 지낼 수는 없”었다고 한다. 그는 줄곧 화석연료에 의존한 경제성장(담론)의 폐해를 비판했다.

[아침을 열며]탐욕의 경제학과 급진적 삶의 전환

김종철의 신간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녹색평론사)는 비판의식의 고갱이를 담았다. “선진화를 향한 사회적,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오늘날 우리의 삶은 갈수록 수렁에 빠지고 있다. 출생, 양육, 교육, 취직, 주택, 의료, 노년, 사망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모든 단계, 모든 국면에서 우리의 삶은 자본과 권력의 논리에 의해 끊임없이 유린되거나 뒤틀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그가 한국 사회를 진단한 이 문장은 지금도 유효하다. 촛불집회와 정권교체 이후 ‘유린되고 뒤틀린’ 것들에 대한 부분적 개선이나 시도가 이뤄졌지만, 자본과 권력의 논리는 본질의 측면에서 크게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면을 채우는 건 여전히 ‘출생, 양육, 교육, 취직, 주택, 의료, 노년, 사망’ 문제다. 잇단 노동자의 죽음 같은 여러 사건·사고 원인을 돌이켜보면, 부와 경제성장, 효율과 비용절감이라는 이름의 탐욕이 드러난다. 이 탐욕은 경제학의 이름을 달고, 집약적으로, 대규모로 나타난다. 두드러지는 게 토건이다.

최근 제2경춘국도 건설 논란이 불거졌다. 자라섬과 남이섬 사이를 가로지르는 대형 교량이 문제가 됐다. 자연경관을 훼손하고, 선박 안전을 위협한다고 이 지역 주민들은 말한다. 청량리에서 춘천까지 1시간 만에 주파하는 열차가 이미 운행 중이다. ‘주말 상습 정체 해소’용 도로라는데, 주말 차량을 유입하려 산을 깎고 강바닥에 교각을 박아 도로를 늘리려는 까닭을 납득하지 못한다.

강원연구원은 경제효과를 강조한다. 이 연구원이 지난 2월 내놓은 ‘춘천 광역교통망의 완성-제2경춘국도와 외곽 도로망 정비’ 정책 자료를 보면, 생산 유발효과는 1조4250억원, 부가가치 유발효과는 6384억원, 고용 유발효과는 1만3883명이다. 사회 간접적 편익도 1조6664억원으로 추산했다. 9000억원짜리 사업이 3조300억원의 경제효과를 낼 것이라고 계산했다. 제2경춘국도는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이다.

정부는 ‘지역산업을 뒷받침할 도로·철도 등 인프라 확충’ 7개 사업도 예타 면제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 중 4개 사업의 경제효과가 언론 등에 나왔다. 석문산단은 ‘생산 유발효과’가 3조5000억원, 대구산업선은 2조2017억원, 울산외곽순환도로는 2조5906억원이다. 부산신항~김해 간 고속도로는 ‘경제 유발효과’ 1조4000억원, 새만금국제공항은 ‘생산·부가가치 유발효과’가 2조7046억원이다. 부가가치 유발효과는 뺀 추정치다.

4개 사업비는 4조6000억원. 토건에다 ‘신성장동력’이니 ‘한류’니 이름 붙은 사업이 투자 대비 서너 배의 ‘경제효과’를 불러온다면 한국은 돈이 발에 차이는 사회가 될 것이다.

40조원. 이명박 정부 초기 나온 4대강 사업 경제효과다. 어느 언론은 ‘강물 따라 돈이 흐른다’는 제목을 붙였다. 감사원은 지난해 7월 이명박 정부에서 31조원을 들인 4대강 사업의 경제효과가 6조6000억원이라고 밝혔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맹렬하게 성장 논리에 매달린다. 거짓 경제효과로 점철된 탐욕의 경제학을 알면서도 속는다. 와중에 생태·노동·인간 존중은 밀려난다. ‘공정 채용법’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때문에 기업들 경영 리스크가 커질 것이라는 보도가 버젓이 나온다. ‘경제성장’과 ‘기업발전’에 경도된 사회를 성찰하지 못하면 ‘아동 노동’을 정당화하는 시대로 역행하지 말란 법도 없다.

김종철과 ‘녹색평론’이 주장하는 바는 예나 지금이나 같다. 세상이 그닥 나아지지 않거나 퇴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농사 같은 순환적 삶의 질서와 시민의회나 추첨 민주주의제 같은 급진적 민주주의, ‘공생공락의 가난’을 주장하는 김종철의 사상은 물질의 풍요와 성장 담론, 대의민주주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 사회에서 무력해 보인다. 그 자신도 언제 닥칠지 모르는 파국보다 당장의 현실이 급하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더 많은 생산과 소비가 더 좋은 삶을 보장해준다는 시스템의 처방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지금 김종철이 강조하는 건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해보겠다는 각오다.

‘급진적 삶의 전환’ 사상을 비현실적 이상론이라 폄훼할 일은 아니다. 핵폐기부터 화폐주권을 거쳐 자연권 헌법까지 김종철이 앞서 소개·주장한 대안들은 지구상 어느 곳에서 이미 시도 중이거나 실현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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