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다시 읽기

2009.10.23 18:11
이해영|한신대 교수 국제관계학부

[시론]안중근 다시 읽기

10월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지 100년 되는 날이다. 안 의사의 거사 100년을 맞아 새로이 그 의미를 추념하기 위해 사상과 행위에 대한 좀 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의 평가가 긴요하다. 이는 ‘지금, 여기’의 눈높이에서 안 의사에게 있어 진정 ‘죽은 것과 살아 있는 것’을 가려내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엄격한 논증이 필요하지만, 여기서는 그의 사상적 내면의 풍경을 그려볼 때 어찌할 수 없이 부대끼게 되는 질문 몇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사상과 행위의 객관적 평가 필요

첫째, 안 의사와 동학의 불편한 관계를 들 수 있다. 안 의사는 자서전에서 동학을 일컬어 ‘좀도둑’이라 표현하고, 청년기에 그들과 전투를 벌인 사실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그 시대 아래로부터의 민족운동을 대표한 흐름인 동학운동과 안 의사가 가까웠던 개화파 지식인 등 진보적 지식인들이 연대하지 못했던 사실이다.

둘째, 안 의사의 다분히 ‘인종주의적’인 세계관이다. 이는 비단 안 의사뿐만 아니라 한·일 강제병합 이전 주요 언론, 지식인들이 대개 공유하던 바다. 그래서 안 의사 스스로 기록하기를 1905년 러·일전쟁은 황·백인종간의 ‘인종’전쟁이었고, 그런 만큼 ‘같은 인종’인 일본을 지지, 성원했다 한다.

셋째, 안 의사에게는 ‘제국주의론’이 결여되어 있다. 안 의사는 공판과정에서 이토를 사살한 15개의 절절한 이유를 들고 있다. 하지만 우리를 참 곤혹스럽게 하는 것이 그중 13번째와 15번째다. 곧 이토가 “위로 천황을 속인 죄”와 “현 천황의 아버지 고메이선제를 죽인 죄”가 그것이다. 안 의사의 거사 배경에는 일본 천황의 “거룩한 뜻”(선)과 이토의 ‘간계(奸計)’(악)라는 묘한 대립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15가지 이유를 든 뒤 안 의사는 말한다. “내가 죽고 사는 것은 논할 것 없고 이 뜻을 속히 일본 천황 폐하께 아뢰어라. 그래서 속히 이토 히로부미의 옳지 못한 정략을 고쳐서, 동양의 위급한 대세를 바로잡도록 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천황제가 빠진 제국주의 일본은 상상할 수 없다. 1909년의 안 의사에게는 ‘제국주의적’ 본질에 대한 철저하고 과학적인 인식은 ‘아직’ 발견되지 않는다.

넷째, 안 의사의 ‘현재성’과 관련해 좀 과장되게 언급되는 것이 ‘동양평화론’이다. 최근 유행하는 각종 동아시아 공동체론과 관련해서 특히 그렇다. 그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고,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동양평화를 입버릇처럼 달고 있던 이토류 동양평화론에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한계까지 정면돌파한 위대함

하지만 일본계 미국 사학자 스테판 다나카가 논구하듯, ‘동양’이란 말은 서양의 반대말로 원래부터 있었던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사학이 ‘발명’한 개념으로서, 여기에는 중국을 지나(支那)라 불러 그 중심성을 부정하고, ‘동양’이라는 새로운 지리, 문화적 공간을 창출해 이를 ‘맹주’ 일본의 패권 아래 재배열하고자 하는 의도가 전제된 것이다. 일제의 대륙 진출을 위한 길잡이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뭐라 부르건 각종 동양평화론을 신채호가 단호히 거부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래서 새로운 국가 건설 주체로서 단재가 호명한 그 의미에서의 ‘민족’ 개념이 안 의사에게 ‘아직’ 보이지 않는다.

안 의사의 한계는 한·일 강제병합 이전 그 시대 진보적 지식인 일반의 한계였다. 안 의사의 위대성은 하지만 한계를 핑계삼아 친일로 우회하지 않고, 이를 정면돌파하면서 병합 이후 독립운동의 옳은 방향을 제시한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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