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실용주의’와 ‘중단 민주주의’

2009.10.25 18:15
박호성/ 서강대 정외과 교수

예수님과 사탄 사이에 어떠한 중도가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사람이 죽어 가는데 반만 살리자는 것이 과연 중도가 될 수 있을까.

[시론]‘중도 실용주의’와 ‘중단 민주주의’

우리가 잘 알다시피 벼는 익으면 머리를 숙인다. 하지만 고개를 너무 숙이면 흙에 파묻혀 죽어버린다. 거문고 줄 역시 너무 팽팽하면 끊어지고 너무 느슨하면 소리가 떠나버리지 않는가. 이처럼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행동양식을 중도라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 실증주의란 진리평가의 기준을 사물의 궁극적인 ‘본질’이나 ‘원천’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유용성이나 가치 또는 성과에서 찾는 가치체계다. 따라서 유용한 성과를 가져다주는 가치만을 참된 것으로 인식한다.

용산참사 모르쇠도 ‘중도’인가

‘중도실용주의’가 이명박 정부의 철학적 토대로 기림받고 있다. 정부·여당에서 흘러나오는 주장을 종합해보면, ‘경제 중심주의’, ‘실적 중심주의’, ‘강자 중심주의’가 바로 그 핵심으로 기려지는 듯하다. 하지만 경제 제일주의는 기업가 최우선주의로, 실적 최고주의는 박정희 시대에나 볼 수 있었던 전시행정 고수주의로, 그리고 강자 찬양주의는 약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를 외면하는 반 복지 경향으로 전락할 위험성을 시한폭탄처럼 안고 있다.

현재 ‘이명박 표’ 중도실용주의로 인해 ‘경제 살리기’ 깃발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의 생계가 제자리걸음을 되풀이하거나, 아니면 더욱 악화되고 있다. 온통 뒤죽박죽이다. 천지개벽에 버금가는 4대강 사업이 과연 ‘실용주의적’일까. 그뿐만 아니라 ‘십 년을 하루같이 이웃과 사회의 이익을 위하여 나름대로 열정을 불살라온’ 박원순 변호사에 대한 국정원의 고발사태, 피의자·피해자·참고인 수사기록 등의 개인정보를 사실상 ‘무제한’ 보관하고 있어 갈수록 ‘빅 브러더’가 돼가는 경찰의 전횡, 방송인 김제동씨의 전격 축출 등등, 이 모든 현상이 실용주의 정신의 발로라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용산참사로 피멍든 국민의 가슴 속 상처를 나 몰라라 하는 태도가 과연 ‘중도’인가. 예컨대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를 가리기 위한 문건 검증을 ‘우 편향’된 기관에 맡겨 무차별적으로 ‘빨갱이’ 딱지를 붙여온 경찰의 획일성은 어떤 ‘중도’일까. 특히 잊을 만하면 한번씩 재래시장을 둘러보는 이른바 ‘친 서민 민생 쇼’를 바라보는 돈 없고 힘 없는 서민들은 이러한 ‘중도실용주의’를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눈치만 살피는 정치와 행정

물론 참여정부의 과오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이 대통령의 실사구시적 태도는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말만 잘하고 능력, 경험, 책임감은 없는 3무(無)세력 대신 일 잘하는 실용주의 세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역설한다. 자기 속눈썹은 보지 못하고 만리나 떨어진 바깥 세상 일에만 목청을 드높여온 진보적 ‘이념주의자’들의 허장성세에 비한다면 이 얼마나 진지한 품새인가.

그러나 이 정권이 지향하는 ‘중도’는 사실상 ‘중단’과 다를 바 없다. 여권은 대들지 않고 고분고분한 자세를 중도로 이해하는 듯하다.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냥 입 닫고 조용히 눈치만 살피는 정치와 행정이 지배하게 되었다. 나아가 가치보다는 가격을 더 중시하는 실용주의가 판치면서 결국 값어치보다는 싸구려만 찾아 헤매는 풍조가 정가를 휩쓸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중도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지난 수십년 동안 수많은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과 희생으로 이룩한 민주주의가 ‘실용적으로’ 폐기처분 당하는 현실이다. 국민은 어찌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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