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상시가 문제가 아니다

2014.12.05 20:45 입력 2014.12.05 21:08 수정
전원책 | 변호사

산적한 현안은 태산 같은데 권부(權府)의 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른바 ‘십상시’ 궁중 드라마다. 언론은 속으로 키득키득 웃으며 겉으로는 점잖게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으로 쓴다. 사단은 ‘정윤회’라는 이름 석 자다. 그는 세월호 침몰 훨씬 전부터 너무 자주 ‘비선 실세’로 불렸다. 이번에도 대통령이 화를 냈다. ‘조사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라고 가이드라인까지 쳤다. ‘금방 알 수 있는데도’ 호들갑을 떤 언론이 몹시 불편했을 것이다. 언론이 대통령을 흔든다고 본 것일까? 그래선지 유출된 문건 내용은 별 문제 삼지 않고 그 문건이 나간 ‘국기 문란’을 질타했다. 청와대는 결국 문제를 검찰로 끌고 갔다.

[시론]십상시가 문제가 아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정윤회씨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그가 하는 역할 따위는 궁금하지 않다. 오래전부터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 온 ‘문고리 3인방’이 누군지, 정윤회씨와 그 문고리들이 중국집에서 어울린 게 사실인지 알고 싶지도 않다. 누가 대통령이래도 측근이 없겠는가? 십상시가 있다 한들 그들이 모여 밥 먹은 게 무슨 문제인가? 문건은 비서실장 교체를 거론한 대통령 측근의 동향에 관한 것인데 비서실장의 침묵이 괴이해 보일 뿐, 청와대 문건이라도 이런 문건이 유출된 게 무슨 큰 문제일 수 있겠는가? 청와대가 말한 대로 시중에 떠도는 ‘찌라시’들을 취합한 것이라면 공용기록물이 될 까닭도 없다. 무슨 국가 기밀이 적힌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그게 아니다. 내가 진짜 놀란 것은 문건에 적힌 바로 그 ‘시시한 내용’ 때문이다. 이 사건의 본질은 후진적 민주정에나 있을 법한 천박하기 짝이 없는 권력 ‘암투(暗鬪)’다. 암투란 말은 국가 시스템 안에서 벌이는 정당한 파워게임이 아니라, 밀실이나 커튼 뒤에서 권력이 농단된다는 뜻이다. 언론은 일제히 정윤회씨와 박지만씨의 ‘암투’를 의심한다. 문화부 국·과장이 경질된 것부터 기무사령관이 두 차례나 드라마틱하게 바뀐 것도 두 사람이 벌인 파워게임이 아니냐는 식이다. 게다가 이번 사건에 연루된 박관천 경정과 조응천 전 비서관이 때 아니게 쫓겨난 것도 오비이락이라 하기엔 이상하지 않은가?

사실 ‘환관’ 문제가 거론된 것이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모든 문민정부가 ‘환관’들과 측근 때문에 망했다. 왜 ‘문고리’들과 대통령의 형들, 아들들이 설친 것일까? 대통령의 참모는 각료와 청와대 비서들이다. 참모들은 저마다 역할이 주어져 있다. 대통령이 전지전능하지 않는 한 정부의 성패(成敗)는 이 참모들이 좌우한다. 그런데 장관들은 저 멀리 있고 비서는 조금 떨어진 비서동에 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이들이 바로 문고리를 쥐고 있는 자들이다. 물리적인 환경이 문고리 3인방이든 십상시든 장외의 참모들이 역할을 하게 만든 것이다.

민주정의 권력은 정당하게 행사되어야 한다. 정책을 결정하고 법안을 만들 때 토론과 표결 절차가 겹겹이 있는 것은 바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정책을 집행하는 것도 철저히 견제를 받는다. 입법부의 감시와 사법부의 견제가 그것이다.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런 시스템이 별 탈 없이 돌아간다.

그런데 후진적 민주정일수록 삐걱거린다. 장외의 인물이 정책에 관여하고 인사에 개입한다. 대개 그런 정부는 겉만 민주정이지 절대권력으로 변질되어 있다. 통치자가 한 말씀은 금과옥조가 되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내가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청와대 참모들이나 각료들이 대통령의 말씀을 받아 적는 모습을 걱정하는 이유다.

무엇보다도 권력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역할은 언론이 한다. 언론은 국민들을 대신해 권력자에게 질문한다. 권력자는 국민이 뽑은 공복(公僕)인 이상 그 질문에 성실히 답변할 의무가 있다. 이런데도 청와대는 사건을 검찰로 끌고 갔다. 내 책 머리에 적은 말이다. ‘권력자에게 질문할 수 없거나 권력자가 답하지 않는 사회는 민주사회가 아니다.’ 한마디 더 말씀을 보탠다.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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