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집중탐구

‘똑부러진 대변인’ 별명… 대중성이 강점

2011.09.01 21:45
조현철 기자

나경원 한나라당 최고위원(48)은 2002년 정계에 입문했다.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76)가 젊은 판사를 정책특보로 발탁한 것이다. 조국·김난도 서울대 교수와 한나라당 원희룡·조해진 의원이 ‘서울법대 82학번’ 동기들이다.

나 최고위원은 미모와 재치 있는 말로 언론의 주목을 받다, 이 총재의 대선 패배 후 변호사로 돌아갔다. 다시 정치권에 나타난 것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되면서다. 그는 강재섭 전 대표(63)부터 2007년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중앙선대위 대변인까지 3년간 대변인을 맡았다. 24시간 전화기를 켜놓고 일일이 받아 ‘똑나대(똑부러진 나경원 대변인)’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때 쌓은 대중성은 정치적 밑거름이 됐다.

18대 총선에서는 지역구(서울 중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재선 성공 후에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간사를 맡아 종합편성채널 출범의 토대가 된 ‘미디업법’을 처리했다. 여권에선 “강단 있다”는 평가를, 야당에선 “독단적 처리”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를 향한 보수층의 주목도가 커진 계기가 됐다.

나 최고위원의 정치 행보에서 질적인 도약대는 2010년 6월 서울시장 선거 후보 경선이었다. 당시 오세훈 후보에게 패배했지만, 3선이던 원희룡 후보(47)와의 단일화 여론조사에서는 승리했다. 그해 7월 전당대회에서는 3위의 성적으로 최고위원에 당선되는 ‘이변’을 연출했다. 당내에서는 공천개혁특위 위원장을 맡아 국민참여형 상향식 공천 채택에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지난 4·27 분당을 보궐선거에서 강재섭 후보를 밀며 정치적 고비를 맞았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 출마를 추진했던 친이계 안상수 대표, 원희룡 사무총장과 부딪쳤고, 결국 강 후보가 나선 선거에서 민주당 손학규 대표에게 진 뒤 지도부 책임론에도 휩싸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7·4 전당대회에서 다시 3위로 지도부에 재입성하는 뚝심을 발휘했다. 여론조사에서 홍준표 대표를 누르고 1위를 한 대중성이 힘이 된 것이다. 나아가 전대에서는 특정계파 후보로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친이계’ 꼬리표를 떼면서 차세대 여성 리더로서의 위치를 구축했다. 나 최고위원은 차차기 대선후보 지지율에서 홍 대표와 함께 여권 내 1·2위를 번갈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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