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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원로들이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명예원수 추대를 좌절시켰다

2017.02.05 15:30 입력 2017.02.05 20:24 수정
박성진 기자

간도 토벌대 출신으로 ‘6·25 전쟁영웅’으로 알려진 백선엽 예비역 육군대장(97)이 한국군 최초의 명예원수(5성장군)가 될뻔 했으나 이는 오히려 6·25 전쟁에 함께 참전했던 군 원로들의 반대로 무산됐던 것으로 5일 확인됐다.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 2015년 10월 국방대학에서 명예 군사학 박사 학위를 수여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 2015년 10월 국방대학에서 명예 군사학 박사 학위를 수여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백선엽 대장의 명예원수 추대는 어떻게 이뤄졌나

1981년 당시 육군본부 인사참모차장(준장)으로 심일 소령 태극무공훈장의 부당성을 확인했던 박경석 예비역 장군은 육군 군사연구소에 보낸 진술서에서 백선엽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예비역 대장)이 가짜 논란의 중심에 있던 심일 소령을 기념하는 심일상 제정에 찬성할 것을 종용했던 사실을 밝히면서 백 장군이 명예원수가 되지 못했던 과정도 함께 기술했다.

백선엽 장군의 명예원수 추대 움직임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 후 군 출신 등 보수세력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등장했다. 특히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한국전쟁 60주년을 계기로 백 장군은 보수진영의 얼굴마담 격으로 부상했다.

박 장군은 “백선엽 장군이 명예원수로 추대된다는 내용을 접한 후, 대한민국의 건국이념과 우리 군의 건군이념에 배치된다고 판단하여 명예원수 추대가 적합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다”며 “이에 본인은 군사평론가협회 회장 직함으로 2009년 3월 7일과 2010년 4월 19일 1, 2차 성명서를 발표했다”고 밝혔다.

그는 “하마터면 친일파를 한국군 최초의 명예원수로 임명할 뻔 했다”면서 백선엽 장군이 1960년도 일본인 작가와 대담한 기록을 전했다. 이 기록은 1993년 일본에서 출간한 <대게릴라전-아메리카는 왜 졌는가>(原書房, 29쪽)에서도 언급됐다.

이를 보면 “···우리들이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주의주장(主義主張)이 다르다고 해도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전력을 다해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배반하고 오히려 게릴라가 되어 싸웠다고 해서 독립이 빨라졌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

박 장군은 “백선엽 자신은 (명예원수 추대) 당시 김태영 국방장관에게 보낸 공문에서 ”본인은 간도 특설대에 근무한 사실은 있으나 독립군 토벌작전에는 참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며 “그러나 그의 주장은 이러한 기록을 통하여 비추어 볼 때 명백한 허위임이 밝혀졌다”고 전했다.

당시 가장 큰 쟁점은 일제 꼭두각시였던 만주국의 중위로 복무하며 항일유격활동을 진압했던 백선엽 장군의 친일행적이었다. 김태영 전 국방장관은 국방부 인사복지실을 통해 사실 확인에 들어갔고, 채명신 예비역 장군 등도 위의 내용이 진실임을 확인해줬다는 게 박 장군의 설명이다.

전국언론노조 등이 2011년 KBS 건물 앞에서 백선엽 예비역 대장을 찬양하는 다큐멘터리 방송의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등이 2011년 KBS 건물 앞에서 백선엽 예비역 대장을 찬양하는 다큐멘터리 방송의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백선엽 명예 5성 추대는 북한군의 남침 전략 합리화시키는 자가당착의 어리석음”

박 장군은 “백선엽의 명예 5성 장군 추대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우리 국군의 숭고한 건군이념이 훼손될 뻔한 중용한 사안이었다”며 “만일 건국 최초의 명예원수가 백선엽 장군이 되었다면, 세계 군사학계의 웃음거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북한 공산군의 남침 전략을 합리화시키는 자가당착의 중대한 우를 범할 뻔한 사건이었다”고 지적했다.

백 장군의 명예원수 추대 상황에 정통한 군 관계자는 “당시 이희원 청와대 안보특보실에 창군원로들을 비롯한 군 원로들이 수십통의 자필 편지를 보내와 백선엽 장군의 명예원수 추대에 대한 부당성을 지적했다”며 “일부 창군 원로의 편지에는 ‘비열했던 백장군의 과거까지 까겠다’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들어 있어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됐다”고 밝혔다. 일부 한국전 참전 군 원로들은 “백선엽 장군 혼자 싸운 게 아니라 전부 도와서 싸웠다”며 “혼자만 원수 자격이 있느냐”고 반발했다. 군 관계자는 “당시 이 대통령이 군 원로들의 반대가 빗발치자 국방부의 조사보고 등을 종합해 백 장군의 명예원수 추대를 사실상 포기했다”며 “마침 북의 연평도 포격사건이 터지면서 이 추대사업은 유야무야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국방부는 한국전쟁 60돌을 맞아 기념사업의 하나로 백선엽 예비역 대장을 명예원수(5성장군)로 추대하려다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미흡하다”며 태도를 바꿨다. 그후 ‘6·25전쟁 60주년 기념사업’에선 회고록 발간과 참전용사들의 명예를 선양하고, 국민안보의식을 제고시키기 위해 추진했다던 명예원수 추대 등 백선엽 장군 관련 사업이 모두 빠졌다. 이에 대해 국방부 당국자는 “(명예원수로 추대하려다) 지금까지 명예롭게 살아온 분에게 잘못하면 흙탕물을 끼얹는 누가 될 수 있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백선엽 명예원수 추대 이유

그러나 이후에도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참전·친목단체인 육·해·공군·해병대 예비역 영관장교연합회 등은 2013년에도 백선엽 장군의 ‘명예원수’ 추대를 관계기관에 건의하는 등 일부 보수단체들은 이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국방장관 출신인 김장수 주중대사(예비역 육군대장)도 “백선엽 장군은 6.25전쟁 영웅이다. 우리도 이제 군사강국으로서 그를 명예원수로 추대해 군의 명예와 사기를 높이고 국격을 높여야 한다”며 “일본 육사출신이라는 것은 시비꺼리가 되지 못한다. 우리나라를 위해 싸운 분을 어떻게 친일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일본 대학만 나와도 다 친일이냐”고 한 언론과 인터뷰한 바 있다.

백 장군의 원수추대에 나서는 예비역 장성들은 “대한민국은 60만 이상의 대군을 유지하는 군사강국으로 전쟁을 치른 그 세대에 원수가 나오면 어떻게 보면 국격을 높이는 것”이라며 “영국, 미국 등 전쟁을 승리 이끈 나라 중 원수 없는 나라가 없고, 군사강국으로서 원수 한분을 추대해서 우리도 원수가 있다는 것 자체가 국격을 올리는 길”이라는 공통된 주장을 하고 있다.

한국군에서 명예원수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국방부 법령을 바꿔야 가능하다. 현행 ‘예비역 진급 및 장교 임용에 관한 규정’에는 명예진급 상한선을 예비역 대령까지 만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 규정을 고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또 현행 군인사법 제27조는 ‘원수는 국가에 대한 공적이 현저한 대장 중에서 임명한다’고 되어 있어 예비역 대장이 원수가 되려면 이 법령도 개정해야 한다. 원수는 국방부 장관의 추천에 의해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창군 사상 원수는 한 명도 배출되지 않았다.

■‘6·25 전쟁영웅’의 계속되는 친일 논란

백선엽 장군은 해방 후 미군정이 세운 군사영어학교 졸업 후 중위로 임관한 그는 한국전쟁 개전 당시 제1사단장으로 활약했고, 1953년 휴전 당시 대장으로 승진했다. 이어 두 차례의 육군참모총장과 연합참모부 의장(현 합참의장)을 끝으로 1960년 예편했다.

그는 일제 때 만주군에 복무했으며 나중에 간도특설대에도 근무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에 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백선엽 장군은 1943년 2월에 만주 간도성 명월구에 있던 항일무장 독립세력을 탄압하던 간도특설대로 전임되어 해방될 때까지 항일무장세력에 대한 탄압활동과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력한 것으로 돼 있다.

그는 여태 이런 점에 대해 공개 사과한 적이 없다. 오히려 간도특설대 복무 경력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측면이 없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는 <대게릴라전-아메리카는 왜 졌는가> 책에서 “간도특설대는 만주국군 가운데 사격, 총검술, 검도대회에서 매번 우승하는 등 정예부대였으며, 군기도 엄정(嚴正)했다”고 밝혔다.

▶[관련기사]“심일 소령 공적은 허위” 군, 36년 전 이미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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