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정말 용균이를 위로하고 싶다면···”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2019.12.21 10:17 입력 2019.12.21 21:05 수정

“제2, 제3의 용균이를 만들지 말라”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슬퍼할 틈이 없었다. 아들 용균의 죽음에도 실컷 소리내 울지 못했다. 대신 마이크를 들었다. 김미숙씨(51)의 입에서 나온 수많은 단어의 종착지는 하나였다. “제2, 제3의 용균이를 만들지 말라.”

용균이가 스러지고 1년이 지났다. 사망사고 321일째인 지난 10월 26일, ‘김용균재단’이 출범했다. 재단은 ‘비정규직 없는 세상,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꿈꾼다. 김씨가 이사장을 맡았다. 발전소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김용균은 해당되지 않는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 ‘직접고용 정규직화’ 계획이 빠진 당정의 반쪽짜리 대책은 가슴을 후빈다. 언제까지 슬픔을 미뤄둬야 할지 모르겠다. 엄마는 아직 할 일이 많다. 12월 18일 김용균재단 사무실이 있는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철노회관에서 만난 김씨는 “내가 사람들을 살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좀 더 노력하면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12월 18일 서울 대림동 철노회관 회의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12월 18일 서울 대림동 철노회관 회의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1년 전과 지금, 삶이 180도 달라졌다.

“1년 전은 그냥 회사만 왔다 갔다 하고 보통 가정처럼 그렇게 살았다. 지금은 온 데 다 쫓아다니면서 생전 안 해본 회의에 참석하고, 마이크 잡을 일이 너무 많다. 제일 많이 바뀐 건 내 인식이다. 옛날에는 나라에서 어느 정도 국민을 위해서 해준다, 이만큼 잘산 것도 나라 잘 운영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용균이의 죽음을 통해 알고 보니 우리나라 환경이 좋아진 건 노동자가 열심히 일해서 그런 거고, 그 많은 사람들의 죽음으로, 피로 만들어진 세상임을 깨달았다.”

-수많은 산재 피해자 유족 중 한 명으로 남기를 거부했다.

“나는 평범한 아줌마였다. 용균이가 사고를 당하고 나서 수많은 사람이 용균이처럼 억울하게 죽었다는 걸 알고 너무 놀랐다. 사측은 용균이가 잘못해서 사고가 난 것처럼 덮으려 했고, 누명을 벗기는 게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사람들이 이런 일을 겪으면 자기의 아픔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들어서 숨기고 묻어버리려 한다. 나는 자식을 잃고 더 이상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고 있지만, 이런 활동을 할 수 없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배운 것도 짧고 무식하지만 최소한 사람의 생명·가치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잇따른 죽음, 반성 없는 정부와 기업의 행태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으로 남은 생을 사는 게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피해 당사자의 가족들이 목소리를 낸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잘 몰랐는데 유가족이 나서야만 진상규명도 되고. 책임자 처벌도 좀 더 강하게 할 수 있더라. 현실이 그렇다. 유가족이 힘을 내야만 활동가들도 힘을 내고, 시민들도 공감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나도 내 자리에서 움직여야 모든 게 미진하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나갈 수 있겠구나, 라고 느낀다.”

-아들의 이름을 딴 재단까지 출범했다. ‘김용균재단’의 존재 이유는 뭔가.

“용균이를 기리는 사업도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지 않게끔 하는 것이다. 방치된 안전을 국가가 눈감아준 상황에서 허망하게 가버린 죽음은 국가적 살인이다. 해마다 2400명이 일하다가 죽는다. 앞으로 이 죽음을 절대 받아들여선 안 된다. 어떻게든 확실히 바꿔나가고 싶다.”

-‘용균 엄마’에서 ‘산재 노동자의 어머니’가 됐다고들 한다. ‘김미숙’이라는 이름의 무게도 실감하나.

“그런 표현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재단 이사장도 나한테는 어색하다. 일부러 부담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깨가 무겁다거나 힘들다고 생각하면 일을 추진하는 데 방해가 되니까. 그냥 ‘용균이 엄마’로 초심을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 엄마의 마음으로 억울한 죽음을 막고 싶은 마음뿐이다. 어디까지 해야 할지 정말 막막하지만, 최대한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볼 것이다. 용균이 이름에 누가 되지 않는 엄마, 나 자신한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다. 예전부터 삶의 여유가 있다면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삶이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내가 사람들을 살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좀 더 노력하며 살고 싶다.”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다.

“용균이나 구의역 김군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위험으로 내몰리는 현장이 우리나라에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자신들이 겪고 있는 일이고, 부당한 걸 바꿔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많이 모아줬다고 생각한다. 절대 나 혼자서는 뭔가를 할 수 없다. 많은 시민과 단체가 같이 (문제를) 끌고 가야 정부와 맞설 힘이 된다. 정부와 정치권, 기업이 여태 기업 입장에서만 끌고 왔고, 기득권 세력은 절대 바뀌지 않을 거라고 본다. 같은 마음인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다. 최대한 김용균재단으로 연대하려고 한다.”

김 이사장의 휴대폰.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과 ‘보라색 리본’이 달려 있다. 보라색은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을 추모하는 색이다. 우철훈 선임기자

김 이사장의 휴대폰.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과 ‘보라색 리본’이 달려 있다. 보라색은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을 추모하는 색이다. 우철훈 선임기자

-무엇이 변해야 하나.

“국가가 정말 용균이를 위로하고 싶다면, 국민 앞에서 보여주기식 생색만 내지 말고 앞으로 죽을지도 모를 사람들을 막아주는 게 진정한 위로다. 정부가 특조위 권고안을 받아안고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해야 안전사고를 막고, 고용이 안정돼 노동자들이 권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한 조사결과(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위반사건의 제재에 대한 인식조사’)를 보니 시민 71.1%, 노동자 70.8%가 산안법 처벌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경영자도 절반 가까이(48%)가 강화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정부가 기업 눈치만 보지 말고 국민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해줬으면 좋겠다. 기업이 안전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발생한 사망사고의 책임을 강하게 물을 수 있도록 ‘기업살인법’(중대재해기업처벌)도 제정하길 바란다.”

-또 다른 엄마들,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내 가정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하고 살았지만 결국 아들도 못 지켰다. 주변이 안전해야지, 내가 안전하다는 걸 그땐 모르고 살았다. 이런 일을 겪고 나서야 깨달았다. 보통 사람들이 사고를 겪어보지 않고 안전이 중요하다는 걸 체감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당하고 후회하며 살지 않나.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후회하지 않길 바란다. 미리 주변을 살피고 안전하게 만들면 내 가정이 안전할 수 있다는 걸 가슴속에 새겨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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