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문제에 중립? 가장 위험한 입장"

2020.02.21 07:00 입력 2020.02.21 11:02 수정

루인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 상임 연구원(왼쪽)과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대표가 17일 본사와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루인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 상임 연구원(왼쪽)과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대표가 17일 본사와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트랜스젠더 여성의 숙명여대 입학 포기 전후 벌어진 사건은 한국 사회에 여러 질문을 던졌다. “이미 여대에 다니는 수많은 트랜스젠더들을 더 이상 학교에 올 수 없는 사람으로 규정해낸 사건이다.” 트랜스젠더의 학습권부터 여성 안전 문제까지 걸친 이슈에서 젠더 폭력 연구자인 루인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 선임 연구원이 주목한 건 ‘추방’이다.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대표도 혐오와 배제 문제를 눈여겨봤다. 경향신문은 지난 17일 두 사람을 만나 의견을 들었다.

-이번 사건을 접하고 든 생각은.

루인 연구원(이하 ‘루인’)= ‘여성이 여대에 입학했다는 게 왜 기사화될 만한 내용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트랜스 여성’이 포인트였다. 트랜스 여성이 여대에 입학했다는 걸 볼거리로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미 많은 여대에 트랜스젠더나 젠더퀴어(성별 정체성을 규정할 수 없는 사람) 등 다양한 트랜스 범주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번 사건은 이미 다니고 있고, 다닐 수 있는 사람들을 추방해야 할 사람으로 새롭게 규정한 것이다.

나영 대표(이하 ‘나영’)= 이번 사건은 몇 년 동안 누적된 문제들이 혐오와 배제의 양상으로 드러난 것으로 봐야 한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하고 지역인권조례가 계속 가로막히면서 성평등과 젠더 논의는 후퇴했다. 여성들은 자신이 겪은 불법촬영 같은 피해나 일상의 차별과 불안을 말할 공적 공간이 없었다. 말을 했을 때에도 오히려 당사자가 비난을 받거나 의심받는 상황들을 경험했다. 이런 상황들이 맞물려 벌어진 문제다.

-반발이 과거와 달라진 점은.

루인= 과거 페미니스트들은 트랜스젠더 여성이 생물학적 여성성을 강화한다며 문제 삼았다. ‘생물학적 여성’ 개념은,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여성으로 태어났다며 여성에 대한 차별 논리를 만들 때 쓰인 것이다. 지금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생물학적 여성성을 주장한다. 생물학적 여성에 대한 입장을 이용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나영= 트랜스젠더 반대가 차별금지법 반대로 수렴되고 있다. 하리수가 등장했을 때는 ‘와, 저런 사람이 있구나’라는 충격에 그쳤다. 지금은 해외에서 큰 영향을 가지지 못했던 트랜스젠더 반대 논리가 한국 사회로 들어오고 있다.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집단과 동성애를 반대하는 개신교 집단 양측에서 같은 주장을 한다.

-트랜스젠더에 배제적인 래디컬 페미니스트인 터프(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TERF)의 주장이 균일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영= 참고 자료가 한정돼 있다. 한국 트랜스젠더 배제 집단의 주장은 주로 영국 출신 학자 쉴라 제프리스나 해외의 반 트랜스젠더 주장에 근거한다. 제프리스는 트랜스젠더 배제적인 입장을 보였던 1970~1980년대 래디컬 페미니스트의 일부 조류 중에서도 극단적으로 나아간 학자다. 해외에서는 이런 주장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전개됐다. 제프리스는 트랜스젠더의 다양한 삶의 맥락은 물론, 그간 페미니즘과 트랜스젠더 운동에서 거쳐 온 논의들을 무시한다. 트랜스젠더를 여성에게 위협적인 존재이고 신체 훼손을 부추기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트랜스젠더들을 낙인찍고 이들의 사회적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다. 페미니즘이 그간 진전시키고 확장해 온 젠더 논의를 후퇴시킨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폭력과 혐오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 왔나.

루인= 트랜스젠더들이 사건사고를 겪으면 신고를 잘 안 한다. 신고하면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신분증을 드러내는 순간 의심받는 게 가해자가 아니라 자신이 돼 버린다. 숙명여대 사건처럼 트랜스젠더들은 속이고 기만하는 존재라는 사회적 인식이 존재한다. 피해나 어려움이 생겨 외부 도움을 받아야 할 때 이들이 겪는 어려움엔 초점이 맞춰지지 않는다. 어떤 것도 말해지기 어렵고, 말해지지 못한다. 한국 사회가 성별 이분법과 주민등록제도로 구성된 점도 문제다. 성별 이분법에 위반되는 사람들은 늘 존재해왔다. 하지만 주민등록제도가 들어오면서 트랜스젠더들이 법을 위반하는 존재로 재해석된다. 주민등록제도는 군대 갈 사람을 분리·관리하는 장치다. 이를 위반하는 몇 안되는 트랜스젠더에게 주민등록번호대로 살아야 한다는 주객이 역전된 말이 나온다. 사람을 관리하는 제도가 사람의 존재 근거가 된다.

나영= 혐오 선동이 신념이 되는 게 제일 우려되는 지점이다. (혐오 선동은) 트랜스젠더를 위험한 존재로 상상하게 하고, 누군가를 속여 여성 공간을 침입할지 모르는 사람으로 만든다. 선동은 트랜스젠더들을 공적 공간에서 몰아내는 효과를 낸다. 혐오 선동이 하나의 ‘입장’으로 승인되면 트랜스젠더는 사회적 활동에도 위협을 받을 수 있다. 폭력 등 피해 사실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기도 어렵게 된다.

-터프들은 자신들이 혐오 세력이 아니라고 말한다.

나영= 트랜스젠더 논의에 대해 비평적인 입장을 갖는 것과 트랜스젠더를 배제·혐오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현재 트랜스젠더 배제 집단의 방식은 트랜스젠더의 고민과 삶의 조건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함께 차별과 폭력에 맞서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모색해야 한다. 트랜스젠더 운동은 뭘 해야 하고, 여성 운동은 뭘 해야 하는지 이야기해야 한다. (터프 집단은) 트랜스젠더 집단을 위협이 되는 존재로 상상하고, 배제·분리하기 때문에 비평적인 입장이라고 볼 수 없다.

루인= ‘탈코르셋’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 의제가 트랜스젠더와 같이 갈 것이란 기대가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여성들이 머리를 매우 짧게 자르는 등 탈코르셋을 수행하면서 남성으로 통하는 경험을 하게 될 수 있다. 이런 여성들은 여자화장실을 이용할 때 불편을 겪었을 것이다.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외모, 성 역할 등이 어떻게 규제되는지를 같이 논의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트랜스젠더면 여성 화장실을 써선 안 된다는 방식이어선 안된다. 어떻게 함께 안전한 공간을 만들고, 화장실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야 했다.

-터프들은 입학 반대가 여성의 안전에 대한 요구라고 말한다.

루인= 안전은 중요하지만 한편으론 권력적인 말이다. 2018년 5월 제주에 예멘 난민이 들어오자 한국 사회가 위험해진다고 했다. 한국 사회는 그 이전부터 위험했는데 난민이 들어오면서 위험해지는 것처럼 말했다. 안전은 누구를 추방할지, 배제할지에 관한 이야기다. 사회 구성원 성격을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다. 안전이란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질문해야 한다.

나영= 특정 집단을 잠재적 범죄자 집단으로 강조하면서 ‘모럴 패닉’을 유발하는 방식은 근본적인 문제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반성폭력 운동은 성폭력이 남성의 속성이라는 게 아니라, 성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권력 구조가 있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이를 주장했기 때문에 여성들이 공적 공간을 확보하고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올 수 있었다. 지금 터프는 거꾸로 남성이나 의심받을 만한 존재라는 사실만으로 여성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면서 수십년에 걸친 반성폭력 운동 논의들을 후퇴시켰다.

-터프 집단은 여성을 피해자로 정체화했다. 여성 운동은 피해자 정체성을 띠고 이뤄져오기도 했다.

나영= 사회에서 주목되지 않았던 여성들의 피해 상황·차별적 구조를 가시화하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여성혐오 사건으로 규정한 게 그 예다. 다만 여성이라는 집단 정체성만 핵심 문제가 아니다. 여성으로 겪는 차별은 여성이 가진 다른 사회적 조건과 엮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성 노동자만 봐도 그가 가족이 있는지, 아이를 키우는지, 임신 출산 경험이 있는지, 장애가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여성 집단 안에서도 굉장히 다른 차이가 있다. 여성이 항상 피해자, 약자의 위치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점을 같이 이야기해야 다른 사회적 대안을 요구할 수 있다.

루인= 여성과 남성을 ‘계급’으로 보는 논의는 1960년대 후반, 1970년대 초반 페미니즘에서 등장했던 것이다. 그 전까지는 사회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을 전혀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여성과 남성이 다른 권력적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얘기하기 위해 계급을 말했다. 하지만 모든 여성이 (피해자라는) 동일한 입장과 의견을 낸다는 것은 상상에 불과하다. 여성을 극도로 단순화하는 방식이다. 마치 가부장제가 소수자 집단을 통제하는 방식과 같다.

-최근 3~4년 새 트랜스젠더 배제적인 페미니즘 동아리가 여대에 생겨났다. 이번 사건에서 많은 여학생들이 트랜스젠더 입학 반대 서명에도 동참했다.

루인= 여대 내에는 퀴어 모임도 있다. 이번 사건만 해도 숙명여대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입학생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여대가 트랜스젠더 배제적으로 변했다고 지적하는 건 내부에 있는 복잡한 목소리를 단순화한 것이다. 특정 페미니즘과 트랜스젠더 간 대립인 것처럼 보면 안 된다. 이런 구도를 만들면 이 사건에 개입된 사람들을 책임이 없게 만들고 방관하게 한다.

나영= 최근 몇 년 새에 트랜스젠더 배제적인 집단이 주로 여대에 많이 만들어진 건 사실이다.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재부상) 이후의 경향은 주로 특정 사안별 이슈화와 대응에 집중됐다. 그에 대한 공권력의 개입을 요청하는 방향이 많았다. 이 과정에서 동일한 집단으로 상정되는 여성 집단의 파이와 안전을 요구하는 내용이 대중적인 요구로 모였다. 이런 목소리들이 트랜스젠더 배제적인 입장을 취하는 제프리스 등의 분리주의 주장과 만나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다. 지금 상황이 20대 페미니스트들과 40대 이상 페미니스트들의 경합처럼 상상되는 게 있지만 그렇지 않다. 선동하는 집단과 현실에서 어떤 불안이나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면서 이뤄진 문제다. 선동하는 측과 반응하는 측을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여성의 정의에 관한 논쟁이 등장했다.

루인= 생물학적 여성이란 말은 기존 질서를 문제삼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이 개념은 생물학적 논리를 근거로 가부장제를 유지시키고 억압하는 장치였다. 숙명여대 사건을 트랜스젠더혐오 사건인지, 일부 페미니스트들에 의한 여성혐오 사건인지 달리 볼 필요가 있다. 여성 인권을 생각하는 페미니스트라면 적어도 생물학적 논리를 가져와선 안 된다.

나영= 생물학적 여성에 대한 논의는 오히려 여성 역량을 제한하는 구조에 문제제기할 기회를 놓치게 한다. 신체 등 여러 능력이 뛰어난 남성이 트랜스젠더가 돼서 여성에게 위협과 불공정을 야기할 거란 논리는 여성을 오히려 취약한 위치에 가둔다. 여성에게 남성보다 낮은 기준만을 기대했던 구조를 고착화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트랜스젠더가 들어오는 것을 막을 게 아니라 여성 역량의 한계라고 규정됐던 틀 자체를 바꿔야 하는 시기다.

-페미니즘은 어때야 하나.

나영= 페미니즘은 생물학적인 범주에 대한 주장들이 여성을 어떻게 한계에 가둬 왔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후 이런 주장들이 특정한 사회 구조를 유지시키기 위해 구성돼 온 것이라는 논의로 이어진다. 사회 제도에 대한 질문을 시작하고, 논의를 확장시켜왔다. 페미니즘은 단순히 여성 집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사회가 작동시키는 권력 구조·방식에 대해 문제 삼는 것이다. 여러 차별을 양산하는 이주, 난민, 소수자 문제를 함께 연결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이유다. 페미니즘을 특정한 범주의 여성 집단만의 문제로 만들수록 지금까지 페미니즘이 확장시켜온 것을 협소화할 수 있다.

-남은 과제는.

나영= 지금 상황을 마치 페미니스트 간 대결인 것처럼 다루면서 관전하지 말기 바란다. 지금까지 남성중심적인 사회,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를 방관해 온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한 명의 합격생이 공적 공간에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퇴출당한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하나의 ‘입장’이 될 수 없다는 제도적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이런 주장에 동의하는 여성들에게 배제와 분리 대신 다양한 사회적 대안을 같이 마련해가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해나가야 한다. 혐오와 배제를 선동하는 집단에 대해서는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단호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

루인= 중립이란 이름으로 숨지 않았으면 한다. 공공기관부터 많은 사람들이 ‘나는 중립이다, 잘 모르겠다’며 혐오세력에게 힘을 실어주고 동조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런 태도가 어떻게 폭력과 위험을 생산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필요하다. 잘 몰라서 중립적인 것만큼 위험한 입장은 없다. 여론이 조성되면 나중에 하겠다는 것만큼 비겁한 게 없다. 공공기관 등이 책임을 다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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