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여성을 흥미로 소비하는 문화 버려라, 그러지 않으면 n번방은 또 태어난다”

2020.04.28 06:00 입력 2020.04.28 06:02 수정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는 감이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왼쪽)와 현경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가 지난 16일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는 감이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왼쪽)와 현경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가 지난 16일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발견한 60여개 텔레그램 성착취 대화방의 참여자를 모두 더하면 26만여명이 나온다고 했다. 공대위는 대화방에 들어가 성착취물을 구매·시청·소지·유포하고, 피해자를 품평하며, 가학 행위를 부추긴 참여자 모두가 가해자라고 했다. ‘박사’ 조주빈(25), ‘부따’ 강훈(19), 갓갓 등 일부 운영자로 축소해 분노를 쏟아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공대위와 시민의 외침에 따라 수사기관은 대화방 개설·운영자는 물론이고 이용자까지 전원 수사해 엄벌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공대위는 지난 2월14일 출범했다. 2018년 10월부터 텔레그램 성착취 대화방을 모니터링하고 피해자 상담·지원 활동을 해오던 여성단체들이 지난 1월부터 힘을 모았다.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의전화 등 9개 여성단체가 공대위를 운영하고 24개 여성단체가 연대한다. 지난달에는 피해자 공동변호인단을 구성했다. 지난 16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감이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와 현경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를 만났다.

발견된 성착취 대화방 60개
참여자 모두 더하면 26만명
이용자 전원 수사해 엄벌을

두 활동가는 이번 사건이 ‘신종 디지털 성범죄’가 아니라고 했다. 감이 활동가는 “대학생·기자 단톡방 사건, 가수 정준영 사건 등 여성을 재화처럼 취급하고 흥밋거리로 소비하는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있다”며 “디지털 성범죄가 계속 재생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현경 활동가는 “지금은 n번방이 과잉대표돼 있지만 텔레그램에는 초창기부터 성착취 판이 만들어져 있었다”며 “한 방에 2만~3만명이 모여 불법촬영물을 이모티콘 보내듯이 올리고 미성년 여성을 그루밍하는 방법 등을 공유했다”고 말했다.

디지털 성범죄는 반복되지만 그 피해는 가볍게 여겨졌다.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를 해도 경찰은 ‘해외에 서버가 있다’ ‘국제공조가 안 된다’며 수사를 주저했다. 지난해부터 n번방 사건 피해자들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텔레그램에서 이뤄진 범죄는 추적이 힘들다’며 고개를 내저은 일선 경찰서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달라졌냐는 질문에 두 활동가는 “많이 달라졌지만 앞으로 더 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시민의 분노가 들끓자 경찰은 지방청마다 디지털 성착취 특별수사단을 꾸렸다. 대검찰청은 조직적 성착취 영상 제작에 관여하면 주범은 최고 무기징역까지 구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기존 판결보다 무겁게 처벌하기로 뜻을 모았다. 관계부처는 아동·청소년 대상뿐 아니라 성인 대상 성착취물 소지도 범죄로 다루기로 했다.

경찰 특별수사단 조직하고
양형 기준 상향된 건 성과
피해자 언어 담는 수사 촉구

감이 활동가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면서도 “수사과정에서 피해 내용을 ‘성착취물 몇 개, 피해자 몇 명’이라는 통계로 축소하지 말고 피해자의 언어로 기록해야 한다”고 말했다. 텔레그램 대화방에 드러난 가해자들의 언어로 피해 내용을 채우는 게 아니라, 피해자가 안전하게 진술하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삭제 지원을 받아도 재유포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자의 직업을 드러내는 보도가 이어지자, 포털사이트에 조씨 연관 검색어로 ‘연예인’ 등이 떴다. 현경 활동가는 “피해자들은 재유포될 거라는 불안 때문에 ‘미투’를 하지 못한다”며 “피해자를 궁금해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감이 활동가는 “포털사이트에 뜨는 텔레그램 연관·자동검색어 때문에 힘들어하는 피해자들이 많다. 포털과 연락해 검색어·영상·이미지를 한 차례 삭제했지만 여전히 댓글로 재유포된다”며 “포털사업자들의 윤리의식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 재유포를 막을 책임을 제도적으로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도 신고 못하는 분들
도움 받을 수 있습니다
절대 혼자서 힘들어 마세

피해자들을 두렵게 만드는 건 재유포뿐 아니라 ‘피해자에게 문제가 있다’는 시선이다. 성범죄 사건에서 비난의 화살을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돌리는 일은 잦았다. 이번 사건에서는 ‘일탈계’(얼굴이나 신상정보 없이 자신의 노출 사진이나 글을 올리는 일탈계정의 줄임말)를 운영하거나 조건만남을 한 여성들에게 2차 가해가 이어졌다. 현경 활동가는 “2차 가해 때문에 가해자들이 ‘소문 내버린다’며 협박할 수 있었고 피해자들이 신고조차 주저한다”고 했다. 두 활동가는 마지막으로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아직 신고하지 못하신 분들은 1366, 경찰청이나 검찰청, 주변 상담소에 전화라도 한 번 주시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본인이 드러나지 않는 제도가 마련돼 있으니 꼭 신고든, 상담이든 받으셔서 혼자만 힘들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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