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시행되면 ‘성범죄자 취업제한’ 무력화된다?

2020.07.03 14:18

“성범죄자 취업제한 제도가 무력화될 수 있다” “트랜스젠더가 여성 안전을 침해하는 것을 묵인한다” “설교에서 ‘동성애는 죄악’이라는 언급만 해도 처벌받는다”. 21대 국회 개원 이후 14년만에 차별금지법 입법이 본격화되면서 법안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다시금 나오고 있다. 이런 주장은 어디까지 사실일까. 경향신문은 지난달 29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안과 30일 국가인권위가 공개한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평등법) 시안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봤다.

2017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준헌 기자

2017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준헌 기자

■성범죄자 취업제한 무력화?

일부 여성들은 차별금지법이 여성들을 위협하는 법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차별금지사유에 ‘형이 만료된 전과’가 포함돼 성범죄자 취업 제한이 무력화될 수 있다거나 ‘성별 정체성’이 포함돼 트랜스젠더의 여성 전용 목욕탕 출입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남성에 대한 역차별을 이유로 여대나 여성할당제가 폐지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장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법 조항으로도 역차별 우려는 충분히 불식시킬 수 있다”고 했다. 장혜영안과 인권위안은 모두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이나 장애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불리하게 대하는 행위를 ‘차별’로 정의했다. 법이 금지하는 차별의 범위도 고용, 재화구입·시설이용, 교육, 행정서비스 등 생존과 직결되는 4가지 공적 영역으로 제한된다. 특정 사람만 수행할 수 있는 직무이거나, 현존하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특정 개인·집단을 잠정 우대하는 행위는 예외로 명시돼있다. 성범죄자 취업제한 무용론이나 여대 폐지론은 이 예외조항에 따라 기각될 확률이 높다.

퀴어퍼레이드 | 경향신문 자료사진

퀴어퍼레이드 | 경향신문 자료사진

만약 어느 대학이 신입생을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만으로 입학 거부한다면, 이는 차별이 될 수 있다. 누구나 동등하게 교육받을 수 있다는 헌법상 원칙을 훼손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학거부가 ‘합리적 조치’라고 주장하려면, 입증 책임은 학생이 아닌 학교에 있다. 학생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데도 학교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괴롭힘’ 행위를 방치한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물론 발의안 문구만으로 개별 사례가 차별인지 아닌지 단정할 수는 없다. 사회엔 다양한 행위가 있고, 무엇이 차별인지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답을 찾아가야 한다. 예컨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한 트랜스젠더 운동선수가 여자 경기에 출전하는 것이 다른 여자 선수에 대한 기회제한인지 등은 법적 논쟁이 필요한 부분이다.

조혜인 변호사(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는 “그동안은 차별을 하는 쪽에서 ‘원래 그렇게 해왔다’고 말한다면 차별을 당하는 쪽은 문제제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당연해 보였던 이 행위가 과연 합리적인지 답해야 할 의무가 차별을 하는 쪽에 발생한다”며 “이 과정에서 차별행위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세울 수 있다는게 차별금지법의 의미”라고 했다.

지난달 29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 발의안.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갈무리

지난달 29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 발의안.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갈무리

■표현의 자유도 형사처벌?

‘동성애는 죄라는 발언을 하는 것만으로도 형사처벌받는다’는 종교계 일각의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장혜영안과 인권위안은 사용자가 차별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행위에 대해서만 유일하게 형사책임을 묻는다. 즉 사장이 “동성애자는 싫다”고 발언하는 것은 처벌받지 않지만, 차별을 당했다고 문제제기를 하는 직원을 징계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

사실 이러한 불이익 조치는 현행 인권위법에서도 금지된다. 하지만 인권위 권고에 강제력이 없다보니, 차별하는 측이 이를 무시하면 피해자를 구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한동대와 숭실대는 ‘건학 이념’을 이유로 학생들의 페미니즘·성소수자 강연회 대관 신청을 불허하고, 강연회를 주최한 학생들에게 징계를 내려 인권위의 시정권고를 받았으나 끝내 불응했다.

▶관련기사 : [단독]페미니즘 강연 준비했다고 학생들 징계 나선 한동대

▶관련기사 : 인권위 권고에도 ‘성소수자 현수막 안된다’는 숭실대..교내 성소수자모임 “차별과 배제가 기독교 정신이냐”

장혜영안과 인권위안은 차별이 ‘악의적’인 경우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손해액의 최대 5배를 가중하는 조항도 추가했다. 인권위는 “차별 피해자에 대한 손해를 메우는 동시에 차별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중적 손해배상은 2006년 인권위 권고법안에 포함됐을 당시만 해도 현행 법체계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하도급법, 공익신고법 등에서 유사한 규정이 도입됐다.

조 변호사는 “종교계 반대에 가려져있긴 하지만 가중적 손해배상은 사실 기업들의 고용차별을 시정하고 예방하기 위한 측면이 크다”며 “한두가지 차별금지사유에 집착하기보다 무엇이 차별인지 더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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