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운동하는 언니들, 예능판을 뒤집다···‘노는 언니’ 방현영 CP “박세리 선수가 이런 기분 처음이래요”

2020.08.25 14:00 입력 2020.08.25 22:06 수정

여자 운동선수들이 뭉친 E채널 예능 <노는 언니>를 기획한 방현영 CP가 지난 13일 경향신문 기자와의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여자 운동선수들이 뭉친 E채널 예능 <노는 언니>를 기획한 방현영 CP가 지난 13일 경향신문 기자와의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출연자 여럿이 엠티를 가고 평소 하지 못한 ‘도전’을 하는 예능이라면 이골이 나게 봤다. 하지만 출연진이 모두 여자 운동선수라면? 씨름선수 출신 강호동·이만기부터 안정환과 서장훈·허재·현주엽 등 남성 ‘스포테이너’(스포츠+엔터테이너)의 계보는 오래됐지만 여성 스포테이너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식빵언니’ 배구선수 김연경 정도지만, 그 역시 고정 출연한 TV예능은 없다.

그렇기에 지난 4일 첫방송 한 E채널 <노는 언니>는 분명 신선했다. ‘여성 스포츠 선수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노는 언니>는 그동안 남성 중심 예능에 가려졌던 여자 운동선수들의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13일 서울 상암 E채널 사무실에서 만난 방현영 CP(총괄 프로듀서)는 “앞으로 평생 운동만 해온 ‘언니들’이 별 것 다하는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 스포츠 선수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노는 언니>는 그동안 남성 중심 예능에 가려졌던 여자 운동선수들의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E채널 제공

‘여성 스포츠 선수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노는 언니>는 그동안 남성 중심 예능에 가려졌던 여자 운동선수들의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E채널 제공

골프 박세리를 비롯해 펜싱 남현희, 수영 정유인, 배구 이다영·이재영 자매, 피겨 곽민정 등 전현직 운동선수들이 출연한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E채널 제공

골프 박세리를 비롯해 펜싱 남현희, 수영 정유인, 배구 이다영·이재영 자매, 피겨 곽민정 등 전현직 운동선수들이 출연한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E채널 제공

<노는 언니>엔 골프 박세리를 비롯해 펜싱 남현희, 배구 이재영·이다영 자매, 피겨 곽민정, 수영 정유인 등 전현직 운동선수들이 출연한다. 3회 방송부터는 현역인 이재영·이다영 자매를 대신해 전 배구선수 한유미가 출연했다. 이들은 제목처럼 제대로 놀았다. 1~2회에선 첫 만남을 기념해 엠티를 떠났고, 3회부터는 스포츠 룰을 변형해 치뤄지는 ‘언림픽(언니들의 올림픽)’이 열렸다.

방 CP는 세간의 관심에 “채널 인지도가 높지 않아 기대 없이 출발했는데, 큰 관심을 주셔서 신기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출연자들도 신이 났어요. 특히 박세리 선수가 세번째 촬영을 마친 뒤에 ‘이런 기분은 처음이라며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본인들이 만들어간다는 느낌이 큰가봐요.”

3회부터 방송한 ‘언림픽(언니들의 올림픽)’의 한 장면. 방현영 CP는 “새롭지 않은 아이템도 이들이 한다는 것만으로 새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E채널 제공

3회부터 방송한 ‘언림픽(언니들의 올림픽)’의 한 장면. 방현영 CP는 “새롭지 않은 아이템도 이들이 한다는 것만으로 새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E채널 제공

펜싱 국가대표 출신 남현희 선수는 박세리 선수에게 ‘컬러링 펜싱’ 경기에서 패배했다. 기상천외한 경기방식에 일부 선수들은 ‘지기 위해’ 애를 썼다. E채널 제공

펜싱 국가대표 출신 남현희 선수는 박세리 선수에게 ‘컬러링 펜싱’ 경기에서 패배했다. 기상천외한 경기방식에 일부 선수들은 ‘지기 위해’ 애를 썼다. E채널 제공

방 CP는 “새롭지 않은 아이템도 이들이 한다는 것만으로 새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선수들에겐 늘상하던 운동조차 놀이가 됐다. 머리로 치는 골프, 상대방 몸에 물감을 묻히는 펜싱 등 기상천외한 경기방식에 일부 선수들은 ‘지기 위해’ 애를 썼다. 방 CP는 “선수들에게 승부에서 해방된 체육은 낯선 경험”이라고 설명했다.

“박세리 선수는 쓰는 근육이 다르다는 이유로 현역 때 다른 운동을 일절 해본 적이 없대요. 휴가를 가도 몸을 다칠까봐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했다는 거예요. 처음엔 운동 말고 해본 게 없으니 하고 싶은 게 뭐냐 물어도 다들 대답을 못했어요. 그랬던 선수들이 이제는 서로 이것 저것 해보고 싶다고 말하고 있어요.”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노는 언니>를 기획했다”는 방현영 CP는 “박세리 선수를 만나면서 추진력을 얻었다”고 말했다. E채널 제공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노는 언니>를 기획했다”는 방현영 CP는 “박세리 선수를 만나면서 추진력을 얻었다”고 말했다. E채널 제공

<노는 언니> 맏언니이자 ‘리치 언니’로 불리는 박세리 선수는 프로그램의 중심을 잡으며 ‘동생 선수들’을 이끈다. E채널 제공

<노는 언니> 맏언니이자 ‘리치 언니’로 불리는 박세리 선수는 프로그램의 중심을 잡으며 ‘동생 선수들’을 이끈다. E채널 제공

방 CP는 2007년 MBC에 입사, 2011년 JTBC로 이직해 <한끼줍쇼> 등을 연출했다. 어느덧 14년차 PD가 된 그는 지난 4월 책임 프로듀서 직책으로 E채널에 새 둥지를 틀었다. 방 CP는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노는 언니>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시청률이나 채널 데이터를 참고하는데, 참고할 데이터조차 없었어요. 평소 관심 있던 문제를 질러 보자. 만약 기존의 방식을 따랐다면 <노는 언니>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건 쉽지 않았다. 일반인만 출연해서 관심을 끌 수 있겠냐, MC가 있어야 한다 등 쏟아지는 조언과 우려 속에 힘을 실어준 사람이 박세리였다. 방 CP는 “불안감이 세리 선수를 만나면서 사라졌다”며 “기획 취지를 듣곤 ‘어떻게 이런 걸 생각했냐, 필요했다’며 먼저 질러주시는데, 그때 추진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나중에 어떻게 그렇게 빨리 수락하셨냐 물으니 같은 고민을 그 전부터 하고 있었다고 말씀하셨어요. 여자 선수들에게 기회를 많이 줄 수 있다고 하시면서 남자 선수들과 맞대결 하고 싶다는 아이디어도 주셨어요.(웃음)”

방현영 CP는 “여자 선수들끼리 있으니 정유인 선수도 자연스럽게 근육을 가리지 않고 드러내더라”며 “유인 선수의 팔뚝이든 세리 선수의 우람함이든 그게 다 이들의 힘이고, 멋이다. 제작진이 오히려 해방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E채널 제공

방현영 CP는 “여자 선수들끼리 있으니 정유인 선수도 자연스럽게 근육을 가리지 않고 드러내더라”며 “유인 선수의 팔뚝이든 세리 선수의 우람함이든 그게 다 이들의 힘이고, 멋이다. 제작진이 오히려 해방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E채널 제공

방현영 CP는 “(예능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건 남자들 몫이라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며 “이전까지 트레이닝 받은 예능 문법이 ‘클리셰’였다는 걸 깨달아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E채널 제공

방현영 CP는 “(예능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건 남자들 몫이라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며 “이전까지 트레이닝 받은 예능 문법이 ‘클리셰’였다는 걸 깨달아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E채널 제공

박세리를 영입한 뒤 ‘동생 선수’들도 줄줄이 섭외가 됐다. 방 CP는 여러 선수들을 만나보며 몰랐던 ‘현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정유인 선수는 SNS에 사진을 올릴 때 포토샵으로 근육을 줄였대요. 운동을 위해 단련한 것인데 팔뚝 굵기를 가지고 ‘너는 여성적이지 않다’고 말하거나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 때문에요. 가슴이 아팠어요.”

막상 촬영이 시작되고 충격을 받은 건 방 CP였다. ‘아, 지금까지 여자들이 이렇게 그려진 적이 없었구나!’ 그는 “여자 선수들끼리 있으니 유인 선수도 자연스럽게 근육을 가리지 않고 드러내더라”며 “유인 선수의 팔뚝이든 세리 선수의 우람함이든 그게 다 이들의 힘이고, 멋이다. 제작진이 오히려 해방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광산을 발굴한 기분이었어요. 성역할 구분이 없고, 키 큰 사람·작은 사람, 운전을 할 줄 아는 사람·못하는 사람… 이렇게 역할이 나눠졌어요. 문제를 해결하는 건 남자들 몫이라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어요. 이전까지 트레이닝 받은 예능 문법이 ‘클리셰’였다는 걸 깨달아가는 중이에요.”

지난 3일 열린 <노는 언니> 온라인 제작발표회에서 방현영CP(맨 왼쪽)가 펜싱선수 남현희, 골프선수 박세리, 수영선수 정유인, 피겨선수 곽민정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E채널 제공

지난 3일 열린 <노는 언니> 온라인 제작발표회에서 방현영CP(맨 왼쪽)가 펜싱선수 남현희, 골프선수 박세리, 수영선수 정유인, 피겨선수 곽민정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E채널 제공

방 CP는 <노는 언니>가 선수들과 자신에게 단순한 TV예능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선수들을 만나보면 TV에 나오는 건 부끄럽지만, 본인이 알려져야 종목이 알려진다는 걸 너무 잘 알아요. 그게 결국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고요. 책임감이 생겼어요. 같은 종목인데 남자 실업팀만 있고, 여자 실업팀은 없어서 본인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사례가 많았어요. 그런 실태도 저희 프로그램을 통해서 알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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