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눔의 집 민관합동조사단 조영선 공동단장 “사태 본질은 나눔의 집의 ‘사(寺)유화’”

2020.09.07 16:59 입력 2020.09.07 21:02 수정

조영선 나눔의집 민관합동조사단 공동단장(변호사·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처장)이 지난 4일 서울 서초구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나눔의집 사태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조영선 나눔의집 민관합동조사단 공동단장(변호사·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처장)이 지난 4일 서울 서초구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나눔의집 사태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복지시설 나눔의집의 실태가 공익제보자들의 고발로 세상에 알려진지 100여일이 흘렀다. 경기도 민관합동조사단이 17일간 조사해 지난달 발표한 결과는 그간 제기된 의혹 상당수가 사실임을 드러냈다. 그러나 나눔의집 법인은 이 결과가 ‘왜곡’이라며 저항하고 있다. 공익제보자들에 대한 공격도 계속되고 있다. 나눔의 집은 어디로 가야 할까.

지난 4일 조영선 민관합동조사단 공동단장(변호사·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을 만나 나눔의집의 현 상황과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해 들었다.

서울 서초구의 사무실에서 만난 조 단장은 인터뷰 시작과 함께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2011년 나눔의집 전 직원인 일본인 무라야마 잇페이가 낸 ‘나눔의집 할머니 인권문제 개선요구서’였다. 할머니들의 생활 환경 개선과 후원금의 투명한 운영 등에 대한 요구가 담겼다. 조 단장은 “10년 전 일본인 직원이 지적한 문제가 지금까지 똑같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라며 “심각하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조영선 공동단장은 이날 인터뷰 시작과 동시에 나눔의 집 직원이었던 무라야마 잇페이씨가 2011년 쓴 ‘나눔의 집’ 할머니 인권문제 개선요구서를 꺼내보였다. 그는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똑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었다”며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조영선 공동단장은 이날 인터뷰 시작과 동시에 나눔의 집 직원이었던 무라야마 잇페이씨가 2011년 쓴 ‘나눔의 집’ 할머니 인권문제 개선요구서를 꺼내보였다. 그는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똑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었다”며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조 단장은 사태의 본질이 나눔의집의 ‘사(寺)유화’에 있다고 지적했다. 3분의 2 이상 조계종 승적자로 구성된 법인 이사회가 나눔의집의 정체성을 무시한 채 후원금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조사단에 따르면 나눔의집은 2015~2019년 후원금 약 88억원 중 2억원만 할머니들을 위해 썼다. 조 단장은 “나눔의집의 시작과 끝은 모두 ‘위안부’ 할머니이고, 시민들의 후원금 또한 사실상 국민기금의 성격이 있다”며 “공익적 성격에 맞춰 미래를 설계해야 함에도 일반요양시설로의 전환을 계획한 것은 결국 나눔의집을 ‘사유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눔의집에 대한 이사회의 ‘철학 부재’는 곳곳에서 드러났다. 조 단장은 단적인 예로 화장실 등 시설과 건축 방식 등을 꼽았다. “매년 1만~2만명이 찾는 곳이지만 사무실과 생활관에 화장실이 있을 뿐이고, 심지어 남녀공용입니다. 또 생활관에서 역사관으로 가는 길이 경사가 져 할머니들이 산책하기도 힘들죠. 인권에 대한 고려 없이 디자인한 겁니다.”

조사단은 지난달 중간보고를 통해 법인 이사진의 전원 해임과 시설장 해임 등 처분을 경기도에 요구했다. ‘강수’였다. 그러나 나눔의집의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불교계 매체는 조사단의 조사가 왜곡됐다는 보도를 쏟아냈고, 이사회는 최근 종합일간지 2곳에 같은 취지의 전면광고도 냈다. 조사단은 이사진들의 조사 참여도 요구했지만 한 명만 응했다.

조사단은 조사 과정에서 할머니에 대한 법인 측 직원들의 그루밍도 있었다고 판단했다. 나눔의집 거주자인 이옥선 할머니는 지난 7월 불교계 언론에 출연해 “스님들을 나무라지 말라”고 말했다. 조 단장은 “우리가 분개하는 이유는 할머니가 스님들에 대한 (옹호) 의견을 밝혀서가 아니다. 할머니들의 불안을 이용해 어느 입장에 서게 한 것 자체”라고 말했다. 공익제보자들에 대한 공격도 계속됐다. 지난달에는 나눔의집 건물에 일본인 공익제보자를 겨냥한 인종차별적 문구의 현수막이 붙었다.

회계부정과 후원금 사적 남용 의혹을 받고 있는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위치한 ‘나눔의 집’.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회계부정과 후원금 사적 남용 의혹을 받고 있는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위치한 ‘나눔의 집’.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조 단장은 “할머니들이 ‘위안부’ 피해자가 아닌 평범한 할머니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평생 아픔을 반복적으로 증언해왔습니다. 할머니들의 삶을 박제하고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며 또다른 학대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9월 현재 나눔의집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5명이 있다. 모두 90세 이상 고령이다. 조사단은 환경 변화에 따라 할머니들이 받을 정서적 영향과 이들을 위한 의료 서비스 등을 고려해 향후 할머니들의 거취를 결정할 계획이다. 조 단장은 “할머니들의 몸 상태를 고려하면 전문요양시설이 더 나을 수도 있지만, 갑작스런 변화로 느낄 할머니들의 어려움, 나눔의 집이 가지는 상징성 등을 고려해 현실적인 방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사단은 조만간 나눔의집 실태와 처분, 향후 나아갈 방향 등을 담은 최종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경기도는 이 보고서를 기반으로 법인 및 시설에 대한 최종 처분을 결정한다.

할머니가 사라진 나눔의 집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조 단장은 “사회복지시설로는 결국 자연소멸하고, 역사관으로서 본격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말했다. 흩어져있는 ‘위안부’ 관련 자료를 모으고 전시하며 교육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 단장은 “‘위안부’ 문제는 식민지시대에 국한되지 않는 전쟁 범죄의 역사”라며 “인류의 전쟁 역사에 주는 메시지가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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