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존엄성 침해”지만…‘그때의 판결은 옳다’는 대법

2021.03.11 20:52 입력 2021.03.11 22:04 수정

‘특수감금 무죄, 바로잡아달라’ 문무일 전 총장 비상상고 기각

대법관 전원일치 의견…“과거 판결, 법령 해석에 오류 없어”

당시 수사 검사 “과거의 잘못 인정 않으려는 집단무결주의”

대법원이 11일 형제복지원 원장 고 박인근씨의 특수감금 혐의 비상상고를 기각하자 한 피해자의 가족이 법정 밖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영민 기자

대법원이 11일 형제복지원 원장 고 박인근씨의 특수감금 혐의 비상상고를 기각하자 한 피해자의 가족이 법정 밖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영민 기자

형제복지원 운영자 고 박인근씨의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과거 판결을 바로잡아 달라며 낸 비상상고를 대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헌법의 최고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된 것”이라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등을 통해 피해자 구제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11일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박씨에 대해 신청한 비상상고를 대법관 4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했다. 비상상고는 판결이 확정된 뒤 해당 사건의 심판이 법령에 위반된다는 것을 발견하면 검찰총장만이 대법원에 요청할 수 있다. 문 전 총장은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2018년 11월과 2019년 2월 비상상고를 냈다. 당시 특수감금 무죄의 근거가 된 내무부 훈령 자체가 위헌·무효라고 봤다.

앞서 박씨는 부산 형제복지원 수용자들을 울주작업장에 감금해 강제노동시킨 혐의로 1987년 6월~1989년 7월까지 총 7차례 재판을 받았다. 그는 최종적으로 수용자들의 노역일당을 착복한 혐의(횡령)만 인정됐다.

대법원은 “당시 법원이 박씨의 특수감금을 무죄로 보면서 적용한 법령은 검찰총장이 (비상상고에서) 문제 삼은 내무부 훈령만이 아니라 (법령에 의한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는) 정당행위에 대한 형법 제20조”라며 “내무부 훈령은 형법 제20조 적용의 전제로 삼은 여러 사실 중 하나(일 뿐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검찰의 주장과 달리 법 적용을 잘못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대법원은 “비상상고 제도의 주된 목적은 피해자 구제가 아니라 법령 해석의 오류를 바로잡아 법 해석과 적용에 통일성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당시 판결의 법령 해석에 오류가 없었기 때문에 비상상고를 기각한다는 것이다.

다만 대법원은 지난해부터 활동을 시작한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언급하며 “정부의 적절한 조치를 통해 피해자들의 아픔이 치유돼 사회 통합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유린이 국가의 책임이라는 언급은 이날 주문에는 없었다.

형제복지원 수사 검사로 외압 사실을 폭로했던 김용원 변호사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대법원이 비상상고 제기 이후 2년4개월 동안 시간을 끌며 논리를 만들어냈다”며 “과거 판결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은 대법관들의 집단무결주의 때문이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판결 선고가 이뤄지자 소법정에서 방청하던 한 피해자가 “재판장님, 질문 있습니다”라고 소리치다 끌려나갔다. “형제복지원은 인권유린 사건이지만 판결은 똑같다고? 30년 전 판사들도 똑같은 말을 했다” “국가가 우리를 두 번 버렸다”는 분노 섞인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대표는 “최근 2기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생겨 형제복지원이 조사 대상에 올랐다”며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와 규명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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