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를 점령하라” 시위 그 후 10년…경제 불평등 해소 못했지만 ‘목소리’의 힘을 봤다

2021.09.14 21:43 입력 2021.09.14 21:47 수정

2011년 9월26일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대가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뉴욕 | AP연합뉴스

2011년 9월26일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대가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뉴욕 | AP연합뉴스

실업자·대학생 등 거리 나와
‘소득 양극화’ 문제 수면 위로
“기업 규제까진 못 이뤄 실패”

포퓰리즘 정치 역효과냈지만
“BLM의 뿌리엔 월가 시위”
SNS 시민운동 기틀 마련도

“우리는 99%다(We are the 99%).”

2011년 9월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대 1000여명이 외친 슬로건은 미국을 넘어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독일 베를린 등 82개국 900여개 도시로 퍼져나갔다. 미국 소득계층 최상위 ‘1% 경제·엘리트’의 탐욕이 가져온 금융위기 피해가 나머지 99%에 돌아갔다며 월가를 점령한 시위는 세계의 소득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려놓았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21년 세계는 과연 변했을까. 경제를 무너뜨린 상위 1%는 합당한 의무를 지지 않은 채 더 배를 불렸고, 코로나19 대유행은 가난한 자들의 주머니를 더 가볍게 만들었다. 세계에서 100만달러(약 11억원) 이상 자산을 보유한 백만장자는 매년 늘어나 올해 5610만명을 기록했다. 성인인구 대비 백만장자 비율은 처음으로 1%를 넘어섰다. 1일 생활비 1.9달러(약 2200원) 이하로 살아가는 극빈층은 백만장자 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특히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은 조사 이래 극빈층이 가장 많이 증가한 해였다. 지난해 극빈층은 약 1억1400만명이 늘어 7억2900만명으로 조사됐다.

경제적 불평등은 10년 전보다 더 심화됐지만 월가 시위를 실패라고만 단정지을 수는 없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완전히 실패한 운동이었다는 평가가 있지만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M)’ 등 좌파 시민운동의 기반을 닦았다는 상반된 평가도 나오고 있다”고 지난 12일 전했다.

시위의 발단은 2011년 7월13일 캐나다의 한 시민단체가 발간하는 ‘애드버스터스’라는 잡지에 ‘월가를 점령하라’라는 제목의 글이 실린 것이었다. 월가의 부조리와 탐욕을 비판하기 위해 그해 9월17일 월가에서 시위를 시작하자는 취지의 성명에 동조한 1000여명이 월가에서 시위를 시작했다. 일부는 월가 근방의 주코티 공원에서 텐트를 치고 노숙을 이어갔다.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 그 후 10년…경제 불평등 해소 못했지만 ‘목소리’의 힘을 봤다

당시 미국은 거대 금융회사들의 투자 실패가 경제위기로 이어진 상황이었다. 초대형 모기지론 대부업체들이 부실 주택담보대출을 늘리다가 2007년 파산한 것이 시작이었다. 금융시장 붕괴를 막기 위해 미국 정부가 약 700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쏟아붓는 와중에도 금융회사의 최고경영자(CEO)들은 거액의 연봉과 퇴직금을 챙겼다. 월가 시위에는 실업자, 화이트칼라, 참전용사, 대학생, 노조 등이 합류해 다양화됐다.

하지만 시위의 동력은 점차 약해졌다. 유토피아와 무정부주의를 내세운 시위 주창자들은 수평적 구조를 유지하며 지도부를 세우지 않았다. 겨울이 오면서 텐트로 노숙을 하는 것은 점차 힘들어졌고, 그해 11월15일 뉴욕시가 주코티 공원에서 텐트를 강제로 철수하며 시위 또한 사실상 끝이 났다. 이후 월가 시위 정신을 이어가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시위 불꽃은 다시 피어나지 못했다. 월가나 대기업을 변화시키지도 못했고, 정부의 기업 규제 정책을 바꾸지도 못했다. 표면상으로는 사실상 ‘실패’한 것이다.

이는 세계에서 일어난 다른 시민운동의 실패와 맞물려 좌절감을 주기도 했다고 가디언은 설명했다. 2010년 튀니지에서 아랍·중동 국가와 북아프리카 일대로 확산된 반정부 시위운동 ‘아랍의 봄’에도 점차 실패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게다가 99% 슬로건이 부각시킨 불평등 문제는 포퓰리즘의 양분이 됐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된 배경에도 백인 노동자 계층이 느낀 불평등과 박탈감이 자리했다. 99%의 분노가 포퓰리스트 정치 지도자를 탄생시키는 역효과를 낳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 그 후 10년…경제 불평등 해소 못했지만 ‘목소리’의 힘을 봤다

그럼에도 가디언은 월가 시위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있다고 전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기반으로 조직된 풀뿌리 사회운동의 기틀을 닦아 이후 2017년 성범죄 피해 사실을 고발하는 미투운동, 2020년 인종차별 문제를 제기한 BLM의 성공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미투, BLM 모두 지도부가 없는 SNS 기반 풀뿌리 사회운동이다. 2016년 월가 시위 과정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한 마리사 홈즈는 “BLM에 적극 참여한 사람 중에는 월가 시위에 나섰던 사람도 많다”면서 “BLM의 성공은 월가 시위 유산이기도 하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당시 애드버스터스의 수석 편집인이던 마이카 화이트는 “월가 시위는 사람들에게 아주 적은 자원으로도 사회운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면서 BLM은 월가 시위 모델을 그대로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월가 시위가 미 민주당에 진보 바람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원조 진보’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비롯해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와 같은 사회주의 정치인들이 민주당 주류로 올라선 것은 월가 시위가 가져온 긍정적인 효과라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계의 요구는 정치권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의제가 됐다.

99% 이론에 반박하는 학자들도 있다. 미 브루킹스연구소 경제학 분야 선임 연구원 리처드 리브스는 저서 <20 VS 80의 사회>에서 상위 1%와 나머지 99%의 대결 구도를 고수하는 기존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상위 20%를 중심으로 불평등 구조를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불평등에 실제 책임이 있는 상위 20%와 나머지 80%의 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며 논의의 초점을 상위 1%가 아닌, 20%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99% 이론 주창자에 대해서도 무정부주의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등 다양한 학자들이 거론되는 만큼 99% 이론은 완성형이 아니다.

월가 시위 10년이 지난 지금 시위는 실패로 종결됐고, 99% 이론에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월가 시위는 불평등한 사회를 바꾸는 씨앗을 뿌렸다. 미 시사주간지 디애틀랜틱은 “월가 시위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러 대의명분을 중심으로 분열되고 재결집됐다”면서 불평등 문제는 미국 민주당뿐 아니라 공화당에서도 관심을 갖는 정치 중심 의제가 됐고, 부자 증세와 대기업 독점 규제 등 가시적인 정책도 나오고 있다고 평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