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장년층 이주노동 떠나 대부분 조손가정… 마을 인구 해마다 줄어

(2) 그들은 왜 사람을 사고파는가

지난달 22일 미얀마 꼬따웅 시내에서 울퉁불퉁한 황토색 흙길을 덜컹거리며 30분간 차로 이동하자 작은 마을이 나왔다. 아웅뚜카 마을이다. 적갈색 벽돌 골조가 그대로 드러난 집들이 길 옆에 띄엄띄엄 서 있다. 나뭇잎을 엮어 엉성하게 만든 지붕을 모자처럼 쓰고 있는 집들도 눈에 띄었다. 폭우가 온다면 내려앉아도 이상하지 않을 모양이었다.

잠시 뒤 마을 외관보다 특이한 점이 발견됐다. 젊은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얼굴에 미얀마 전통화장품인 ‘다나카’를 하얗게 칠한 아이와 노인들뿐이었다. 가끔씩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을 지나가는 청년들만 목격될 뿐이었다. 마을 외관이 1970~1980년대 한국 농촌과 닮아 있었다면, 젊은 사람들을 찾기 힘든 것은 지금의 한국 농촌과 비슷했다.

아웅뚜카에는 할아버지·할머니, 어린이들로만 이뤄진 가정이 많다. 젊은이들은 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일자리를 찾아 태국 등 외국으로 떠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태국에서 미얀마 사람들이 주로 하는 일은 새우나 생선 등을 손질하거나 고무농장에서 고무를 채집하는 일 등이다. 일하는 시간은 많고 고되지만, 임금은 턱없이 적은 일들이다. 태국 사람들이 원치 않는 일터를 미얀마 사람들이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2일 미얀마 꼬따웅 아웅뚜카 마을의 한 가정집에서 부모가 태국 등 해외로 이주노동을 떠난 아이들이 인신매매에 대한 공포와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설명하고 있다(위쪽 사진). 자식을 태국 등 해외로 이주노동 보낸 부모들은 자식들이 인신매매 당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과 마을에 젊은이가 빠져나간 현실을 말하고 있다(아래쪽). | 월드비전 제공

지난달 22일 미얀마 꼬따웅 아웅뚜카 마을의 한 가정집에서 부모가 태국 등 해외로 이주노동을 떠난 아이들이 인신매매에 대한 공포와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설명하고 있다(위쪽 사진). 자식을 태국 등 해외로 이주노동 보낸 부모들은 자식들이 인신매매 당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과 마을에 젊은이가 빠져나간 현실을 말하고 있다(아래쪽). | 월드비전 제공

▲ 발전 더딘 아웅뚜카, 매년 아이들 10% 인신매매 추정
월드비전 교육 통해 주민들 ‘감시단’ 만들어 피해 예방

이런 일자리에서는 대부분 부부가 하루종일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식들을 돌볼 수 없다. 미얀마의 부족한 일자리는 자연스럽게 조부모와 손자·녀 가정을 만들었다.

아웅뚜카처럼 미얀마에서도 발전이 늦은 지역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조부모와 아이들은 태국으로 일하기 위해 떠난 가족이 보낸 돈으로 생활한다. 태국에서 임금을 착취당한다는 소식도 듣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일자리를 찾기조차 힘들다.

아웅뚜카에 사는 도샴미(73)는 “딸과 사위가 태국으로 이주해 바느질과 아기 옷 파는 일을 하며 한 달에 500~1000바트(약 1만6500~3만3000원)를 생활비로 보내준다”며 “자식들이 보내주는 돈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어 지금은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젠가 이곳에 일자리가 생기고 살기 좋아져 가족들이 함께 살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모와 아이들을 위해 마을을 떠나 해외 이주노동을 하는 청년들이 많아 아웅뚜카 마을의 인구는 해마다 줄어왔다. 아웅뚜카 마을 주민 우바쉐이(73)는 “지난 10년간 1만명 정도였던 마을의 인구가 절반인 5000명 정도로 줄었다”며 “특히 2009년 미얀마·태국 간 4년6개월을 머물 수 있는 비자 협정이 맺어지면서 더 극심해졌다. 젊은이들이 빠져나가고 늙은 사람들이 손자를 돌보는 일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태국으로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들은 인신매매가 걱정이다. 아웅뚜카의 한 가정집에서 만난 도케유(73)는 “2년 전부터 태국으로 이주노동을 떠난 막내아들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 인신매매당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며 “다른 6명의 자녀들은 연락이 되고 있지만 막내아들처럼 또 언제 연락이 끊길지 몰라 두렵다”고 말했다. 이어 “막내아들은 미얀마에서 살아보려고 18년 동안 미얀마를 돌아다니며 고무농장 등에서 가리지 않고 일했다. 하지만 살길이 보이지 않아 결국 태국으로 떠났다”며 “그런데 연락이 되지 않고, 낚싯배에 인신매매돼 죽었다 등의 흉흉한 소문만 들려 매일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도케유는 아들 2명과 딸 5명을 모두 태국으로 떠나보냈다.

[인신매매 시장, 미얀마 꼬따웅·양곤을 가다]청장년층 이주노동 떠나 대부분 조손가정… 마을 인구 해마다 줄어

이주를 희망하는 사람이 많은 아웅뚜카는 인신매매범이 노리는 지역 중 하나다. 인신매매 피해 때문에 마을에는 자율감시단도 생겼다. 국제구호단체인 ‘월드비전’으로부터 교육을 받은 마을 주민들이 역할을 맡았다.

마을의 한 자율감시단원은 “매년 아이들의 10% 정도가 사라지는데 인신매매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인신매매범들이 9~14살 정도 되는 아이들을 태국으로 데려가 꽃을 팔거나 구걸을 하도록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남겨진 아이들은 미얀마에서 직업을 갖고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것이 꿈이다. 인신매매의 공포와 부모가 없는 허전함 때문이다.

조꾸꾸(15)는 “이웃 어른에게 ‘꼬따웅 길에서 미얀마 전통음식을 팔던 가족이 장사가 안돼 태국으로 건너갔다가 고무농장으로 끌려가 임금을 받지 못했다. 도망치려다 가족이 모두 안 좋은 일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부모님이 모두 태국에 있어 걱정이 많이 된다. 유명한 가수가 돼 돈을 벌어 부모님을 고향으로 돌아오시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뗀사소(14)는 “의사가 돼 미얀마에서 가난하고 돈이 없는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싶다”며 “월드비전에서 인신매매 예방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사람을 팔고 일을 해도 돈을 안 준다고 들었다. 왜 사람들이 사람을 팔아서 돈을 벌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