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내겐 선택권이 없었다… 고향사람들을 파는 수밖에”

2013.12.04 22:22 입력 2013.12.06 14:13 수정

미얀마인 전직 브로커의 고백

“그땐 너무 가난했습니다. 내겐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지난달 18일 태국 마하차이의 한 노동자 인권보호 단체에서 경향신문과 만난 전 인신매매범 캬우(50대·가명·미얀마)는 “당시에 나는 죄책감을 느낄 여유도 없었다”고 말했다. 인신매매로 피해자가 겪을 고통에 대해 “미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내 탓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캬우에게 인신매매는 그저 ‘좋은 돈벌이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인신매매 시장, 미얀마 꼬따웅·양곤을 가다]“가난한 내겐 선택권이 없었다… 고향사람들을 파는 수밖에”

▲ 태국 공장 사장 요구로 시작
10년간 사람들 속여 돈벌이
도망치면 잡아오는 일도 해

▲ 경찰 블랙리스트에 올랐지만
뇌물 받은 경찰 되레 뒤 봐줘
마음 바꿔 인권단체에 헌신

캬우가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미얀마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캬우는 1993년 일자리를 찾아 태국으로 건너왔다. 새우양식장에서 일하고 낚싯배도 타고 상점에서 물건도 파는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러나 늘 밥을 굶지 않는 정도였다. 그해 고향에 방문한 캬우는 이주를 원하는 친척과 이웃 9명을 태국으로 이주시켰다. 친척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돈은 받지 않았다. 캬우가 일하던 수산물 가공공장에는 미얀마인들이 늘어났다. 공장도 점점 커졌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은 캬우에게 “일할 사람을 구해오라”고 했다. 캬우는 다시 미얀마를 찾았고 25명을 데려왔다. 사장은 캬우에게 한 사람당 500바트(약 1만6485원)를 수수료로 줬다. 그의 손에 쥐어진 1만2500바트(약 41만원). 그것이 악의 씨였다. ‘돈맛’을 알게 된 캬우는 이주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태국으로 이주시켰고, 그때마다 수수료 명목으로 돈을 챙겼다.

캬우는 점차 변해갔다. “좋은 일자리를 잡아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친절한 사장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거짓말로 한 달에 수십 명의 미얀마인들을 태국으로 데려왔다. 세 번째 미얀마에 방문했을 때는 50명의 미얀마인을 데려왔다. 캬우는 미얀마인들에게 1만바트가 넘는 돈을 요구했다. 경찰에 건네는 ‘뇌물’과 입국서류 등에 드는 비용의 2배를 요구한 뒤 절반을 챙기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좋은 일자리를 잡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부분 이주할 때 캬우에게 진 빚을 갚기도 어려웠다. 돈이 없는 미얀마인들은 이주에 필요한 돈을 이주 알선업자에게 빌린다. 이 빚에 묶여 평생을 일만 하게 된다. 일하다 도망치는 미얀마인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업주들은 돈을 받고 사람을 넘긴 캬우에게 책임을 물었다. 도망친 일꾼들을 잡아오는 것은 캬우의 업무 중 하나였다.

캬우는 그렇게 약 10년간 인신매매범으로 살았다. 미얀마 경찰의 ‘인신매매범 블랙리스트’에 올라 미얀마 입국이 금지되기도 했다. 캬우는 자신이 하는 일이 ‘위험한 일’이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뇌물을 받은 경찰들이 항상 내 뒤를 봐줬다”며 “그들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다 알고 있었고, 서로 정보를 공유했다”고 말했다.

캬우는 지금 태국의 노동자 인권보호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노동자 인권보호 단체 대표의 수개월에 걸친 끈질긴 설득으로 이주노동자들을 돕고, 인신매매를 방지하는 일을 하게 됐다. 캬우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지금이 돈을 많이 벌었을 때보다 행복하다”고 했다. “태국에 오는 미얀마인들은 나처럼 거의 배우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인신매매범과 뒷돈을 받는 부패한 태국 정부 관계자들의 먹잇감일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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